신세계와 롯데 등 주요 유통기업들이 이번주 정기주주총회를 연이어 진행한다.(그래픽=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대한항공·우리금융·한국타이어·금호석유화학’. 이 기업들은 국민연금공단이 지분을 보유해 주주총회 안건에 찬성 혹은 반대 의견을 명확히 피력한 곳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국민연금은 75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을 바탕으로 수익을 내는 것과 동시에 투자 조건으로 기업의 ESG경영 현황을 중요시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됐다는 점에서 국민이나 투자자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기업들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연금이 의견을 피력한 기업들의 주총 결과에 큰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해당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의견을 무시한 채 사측의 입장이 들어간 안건을 모두 통과시켰다.

국민연금은 조원태 대한항공 사내이사 선임, 우리금융의 사외이사 재선임안, 한국타이어 조현범 사장 사내이사 선임에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조카의 난’으로 불린 금호석유화학 주주총회에서는 국민연금이 박찬구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찬성했으나 찬성률 52.7%에 그치며 이사회 진입에 실패했다.

언급된 기업 모두 투자자에 피해를 끼치거나 사회적 감시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국민연금 스스로 제기했다. 하지만 주총 결과는 국민연금의 의견 피력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해당 안건들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다루는 기구인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국민연금은 주총 후 14일 이내에 사후적으로 의결권 행사내역을 밝히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복지부 산하의 수탁위 결정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고 이를 사전공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도입을 선언하고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으로 국민의 소중한 자산에 피해를 입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수탁자로서 주주가치 제고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문제는 국민연금이 단순히 이번 3월 주총에서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아니란 점이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지난해(1~11월)까지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 전체 중 실제로 부결된 안건의 비중은 1~3% 수준에 그친다.

지난해에도 국민연금은 1~11월 중 830건의 주총에서 3356건에 대한 안건에 대해 533건(약 16%)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해 왔지만 실제 부결된 건은 9건(약 1.7%)에 불과했다.

물론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1주 1표’ 원칙이라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다만 기업들도 최근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ESG 경영을 통해 투자를 더욱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연금은 사실상 기관투자자를 대표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민연금도 주총에서 확실한 역할을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주총 등에서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으나 기업의 변화가 없다면 중점 관리사안 대상기업으로 지정하는 등 감시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중점 관리사안 대상 기업으로 지정되면 단순히 주총 사안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주주제안을 비롯한 경영 참여가 가능해진다.

여기에 더해 투자자와 국민의 신뢰를 더욱 높이기 위한 수탁자 책임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수탁자책임활동에 대한 개선과 기업들의 ESG 정보공개 의무 공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민연금이 ‘종이호랑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수탁자 책임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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