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민심은 정권교체다, 인사차별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다

4·13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12일 오후 광주 서구 금호동 풍금4거리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양향자(서구 을)·정준호(북구 갑)·이용빈(광산구 갑)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2016.04.12.ⓒ뉴시스

이번 총선 기간 중 더민주의 문재인 前대표는 호남민심 이반에 시달렸다. 오죽하면 김종인 당대표로부터 호남방문을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기까지 했을까. 그러나 신명식 前내일신문 편집국장, 조국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등 문 前대표를 변호하는 지식인들이 참여정부 ‘호남홀대론’과 ‘호남차별론’은 실체가 없다며 공개 반박하고 나섰다. 이에 이병완 前 청와대 비서실장이 SNS에 글을 올려 그 근거를 뒷받침 했고 양민호 前청와대 민원비서관 등도 호남출신 인물들의 균형인사 발탁현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내용은 SNS를 통해 꽤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녹색바람은 호남을 휩쓸었고 호남선을 타고 북상해 수도권 3개 시도에서 더민주를 약 17만표 가량 눌러버렸다. 국민의당은 대구·경북 비례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더민주를 28만표가량 앞서며 야권의 이니셔티브까지 확실히 갖게 됐다. 문재인 前대표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사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세게 나타난 이 녹색돌풍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이른바 진보지식인들, 진보언론인들, 깨시민들은 박지원, 천정배, 박주선, 정동영 등 호남지역 다선정치인들의 선동에 호남인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다고 분개해 했다.

그러나 역지사지로 한번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반도 저 반대편 영남에서 30년 동안 주구장창 1번 당만을 찍어온 영남인들에게도 똑같은 크기의 모독이 된다. 영남인들이 왜 그동안 ‘민주’적인 2번 당을 거의 선택하지 않았겠는가? 영남인들이 우매해서 또는 비합리적이어서 죽어라고 1번 당만 찍어왔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참여정부 5년 기간 동안 총리부터 장차관(급)에 이르기까지, 아니 심지어 중앙부처 3~4급 공통직렬이자 요직인 총무과장 자리까지 호남출신이 얼마나 많이 기용됐는지 세세하게 통계를 한 번 쭉 내보자. 그리고 그 도표를 호남인들에게 들이대 보시라! 그러면 그들이 "예 그렇군요!" 라고 쉽사리 납득할 것인가? ‘호남홀대론’은, 아니 ‘호남차별론’은 결코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2.33%라는 근소한 득표율 차이로 당선된 노무현 前대통령은 선거인수가 아주 적은 호남지역에서만 무려 10.6%의 득표율 격차를 벌렸다. 표수로는 260만표이다. 호남인들이 압도적인 93.2%의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논리’로만 얘기하면 노무현 정부는 호남 인물을 90% 이상 발탁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인사 4원칙의 하나인 ‘지역균형’에 따라 장차관(급)과 공기업 임원 인사는 그들의 출생연도인 1949년 인구센서스를 기준으로 영남 31.4%, 호남 25.2%, 충청 15.7%, 수도권 20.7% 등에 대체적으로 맞추었다.

총리도 2명, 대법원장과 국정원장,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최초의 기획예산처장관 등등... 좋은 자리에 호남인물을 충분하게 배려했으니까 된 것이 아니냐고? 그것은 지식인들과의 토론에서 또는 신문칼럼에서 독자들을 설득하는데 사용하시라! 호남 인사를 등용한 것은 서울 가서 출세한 출향 호남인들이지 호남에서 자라 호남을 지키고 있는 호남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짜 호남인들이 서운해 하는 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다. 그것이 바로 본질이다.

노 前대통령에 대한 93.2%의 압도적 지지는 김대중 前대통령의 3전4기와 합쳐도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이었다. 그만큼 호남인들은 서민 대통령 노무현을 원했다. 그만큼 호남인들은 개혁대통령 노무현으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노무현 前대통령, 그가 보여준 결과가 무엇인가? 평화적 남북관계를 파탄 낸 대북송북특검, 더구나 호남인들에게는 ‘선생님’으로 추앙되는 김대중 前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켜준 새천년민주당이 지역주의 정당이라는 이유로 끝내 분당돼버렸는데 수석당원으로서 이를 방조한 점도 호남인들은 크게 실망했다.

결정적으로 노 前대통령과 참여정부가 호남인들로부터 외면 받은 건 反서민, 反개혁정책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을 추진하며 보상비로만 무려 100조원가량을 풀었다. 수도권 버블세븐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국을 땅 투기장화를 만든 계기다. 공시지가를 기준으로만 해도 무려 1872조원의 땅값이 이때 올랐다. 김근태 前의장이 계급장 떼고 분양원가 공개토론을 붙자고 했지만, 노 前대통령은 끝까지 재벌 편을 들었다. 2006년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참패는 바로 이 부동산 폭등이 결정적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불평등은 소득불평등이 가장 큰 문제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첫해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60만원 수준,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64.1%의 임금을 받았다. 2014년 현재는 123만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사정은 이렇다. 2006년 11월 말 청와대의 요청으로 임채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 비정규직 3법을 통과시켰고 이듬해 7월 1일부터 기간제법, 파견제법 등이 정식 발효됐다. 그러자 2008년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은 60.9%로, 2009년부터는 50%대로 하락했고 마침내 2014년에는 54.4%까지 뚝 떨어졌다. 이명박근혜정권의 책임도 없진 않지만 지금의 1천만명 비정규직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최초의 원인 제공자이고 그래서 2007년 대선 참패의 한 원인이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두려움 없이 싸웠고 김영삼 정부(632명)보다, 이명박 정부(449명)보다 훨씬 많은 노동자(1037명)들이 감옥에 갔다.

노무현 前대통령은 임기 초반 한총련, 전교조와의 갈등 중 "대통령직 못해먹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조중동은 이를 1면 제목으로 뽑아 문제발언만 쟁점이 됐다. 이후 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노 前대통령의 염장을 질렀다. 그런데 그 중 한 곳인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2005년 주미대사로 발탁했다. 홍 회장은 1999년 김대중 정부시절 조세포탈과 배임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와 같이 열린우리당 정권은 한때 단독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었으면서 제대로 된 ‘언론개혁’을 실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의 기대감만 부풀게 했다. 취재선진화 제도를 도입한다, 합리적인 갖은 언론개혁에 힘을 쏟는다 했지만 돌아온 것은 결국 독과점신문들이 “언론탄압”이라고 나팔을 불고 북을 치게 했었다.

열린우리당은 국민이 만들어준 과반의석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실패한 여당이었다. 2004년 정기국회 개원 당시 핵심 과제로 제출한 4대 개혁입법 - 국가보안법, 언론 관계법, 사립학교법, 과거사 규명법 중 과거사 규명법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로도 개혁이든 실용이든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할 정도로 동력을 상실해버린 것은 크나 큰 패착이다.

문재인 前대표는 지난 8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호남홀대, 호남차별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고 아픔이다."라고 주장했다. ”지역정당이 신성한 호남 땅에서 더 이상은 발붙이지 못하도록 싸우겠다.”고 국민의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호남인들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88.96%의 몰표를 안겨주었다. 표수로는 박근혜 당선자와 약 250만표 차이였다. 호남을 고향으로 둔 김대중 후보가 88.4%(1987년), 정동영 후보가 80.3%(2007년)를 득표한 것보다도 더 높은 수치였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호남과 서울 이외에서는 단 한군데도 승리하지 못하고 전국을 온통 새누리당의 빨간 색으로 물들여버렸다. 그나마 서울조차도 격차는 고작 5만7천표뿐이었다. 1971년 이후 41년 만에 찾아온 여야 1 대 1 대 구도에서, 한때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안철수 후보가 양보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를 하지 못한 충격은 그 누구보다 호남인들에게 컸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서운함을 딛고 두 번째 영남후보를 밀었지만 실패의 충격은 작지 않았다.

지난해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2·8 전당대회에서 호남인들은 당권과 대권 분리를 강력하게 원해 문재인 의원을 당대표로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은 기어코 당대표를 맡더니 재보선을 지휘했다. 성완종 前회장 스캔들도 터지고 선거환경이 매우 유리했으나 호남을 제외한 수도권 3석 전석을 새누리당에게 또 다시 갖다 바쳤다. 이에 반해 김한길 안철수 지도부는 바로 한 해 전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를 9 대 8석으로 선방을 했고, 이어진 7·30 국회의원 재보선의 경우에도 그나마 수도권 6곳 중 1곳은 건졌다. 이와 같이 지금 호남에서 폭넓게 형성된 反문재인 정서는 '호남홀대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문재인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라는 사례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호남인들의 ‘정서’를 자극해왔는데 그것을 논리로 설득한다고 과연 설득되어질까?

反문재인 정서는 '호남홀대론'(과거) 때문이 아니라 '정권교체 가능성'(미래)의 회의감 때문이다. 호남차별론을 골백번을 변호해봐라.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정권교체 가능성을 보여주고 호남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호남인들이 선택한 국민의당을 ‘지역정당’으로 폄훼한다면 호남인들은 또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위와 같이 호남인들의 ‘호남홀대론’, ‘호남차별론’은 논리가 아니라 바로 감정이고 정서다.

미국 에모리대 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2004년 미국 대선을 관찰했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유권자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한 확증편향(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 나타나고 있음을 똑똑하게 확인했다. 그는 이 사실을 2년 후 논문으로 발표했다. 2007년에는 이성보다 감정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더 강력하다는 주장이 담긴 책자 - ‘정치적 뇌(The Political Brain)’ -로 업그레이드하여 출간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레이코프는 유명한 인지언어학의 창시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2008년 버락 오바마의 승리 원인을 감정이입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이상의 글을 읽고 나서도 호남민심을 정서가 아닌 논리로만 접근할 것인가?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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