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혁명 완성을 향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1년이 지났다.

많은 시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고자 전라북도 정읍에 모여서 5월 7일, 8일 양일간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만민공동회에서는 이 역사적 사건을 추모하는 동시에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다양한 의제를 선정하여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3월에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 부패 척결의 기치를 내걸고 1차 봉기 후, 같은 해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고자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2차 봉기하면서 1년간 반봉건, 반외세를 향한 농민혁명으로 전개됐다.

박은식은 《한국통사》(1914)에서 양반 지배층의 압제와 관리의 탐욕에서 비롯되어 봉건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반봉건운동으로 기술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적 계급사회의 해체 과정에서 양반사회와 왕조 국가 체계에 대항한 사회개혁 운동이자 서구문물과 근대 서구사상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반외세를 통한 민족 정체성과 사상을 지키기 위한 농민과 서민층들이 중심이된 저항운동이었다.

이처럼 동학농민혁명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면서 프랑스의 대혁명과 견줄만한 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동학농민혁명이 14세기부터 시작한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일어났던 영주 권력과 농민 사이의 계급투쟁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1794년부터 100년간 지속되었던 유산자들에 의한 토지 사유화에 대항한 영국농민들의 반 인크로저(Anti enclosure) 운동과 같이 봉건주의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발흥 등의 유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한편 동학농민혁명은 프랑스 대혁명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미발전으로 인한 지식 부르주아지나 노동계급의 지도가 없는 농민들의 자생적 투쟁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가진 이 미완의 혁명은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이 미완의 혁명을 기리고 우리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코자 시민들이 전라북도 정읍에 모여 ‘신만민공동회’를 개최하고 있다. 신만민공동회는 ‘만민공동회’를 계승한다는 취지로 명명되었다.

ⓒ돌직구뉴스

1898년 독립협회(獨立協會)가 대중 집회 형태로 시작한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 혹은 ‘만민공동회’는 시민, 단체회원 뿐 만 아니라 정부 관료들까지 참여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출발이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사회적, 국가적 의제에 대한 국민적 논의의 장이 막혀있고, 국민들의 삶과 운명을 결정지을 정책적 사안과 국가 운영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이 소수 정치권력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신만민공동회’ 운동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신만민공동회는 만민공동회와는 달리 일반 시민들과 시민단체들만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1302년 필립 르벨(Philippe le Bel)왕이 귀족, 성직자, 평민 대표들을 노트르담 성당으로 ‘에따 제네로(Etats généraux, 일명 삼부회)’를 소집함으로써 우리가 이야기하는 만민공동회의 기원이 되었다. 이 에따 제네로를 ‘삼부회’로 번역해왔으나, 이 보다는 ‘평민국가’로 번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에따 제너로는 왕조국가(Etats providenciaux) 체제에 대응되어 시민 참여 거버넌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따 제너로 정치 및 경제적 위기, 전쟁 혹은 주요 외교적 문제와 같은 국가적 중대 사안이 발생할 경우 왕이 소집하여 개최되었으며, 토론을 통해서 정책방향을 결정하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후 왕조 국가가 무너지고 근대 국가가 형성되면서 주요 국가적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의회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법, 경제, 노동, 산업,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정책 사안과 관련하여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에따 제너로가 활동을 한다. 에따 제너로는 제기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고 각종 조사를 시행한 후 정부기관에 정책제안을 하거나 보고서를 제출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질적 민주주의를 향해

현재 우리 헌법에는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기본권이 최소한 정도로만 보장되어 있다. 선거권 이외에 헌법이 허용하고 있는 국민의 정치적 생존 조건으로서의 기본권을 보면, 헌법72조의 대통령이 발의한 국민투표권, 헌법 제130조의 국회 재적의원 2/3이상의 찬성으로 의결 후에 국민투표권이 대표적이며, 그 외 25조의 공무담임권, 26조의 문서청원권 정도이다.

이번 총선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시민사회의 건강성이 매우 높은 수준에 와 있음에도 정치적 기본권은 여전히 수동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제 국민의 의식수준에 맞는 정치적 권리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 특히 만민공동회와 같은 시민적 논의의 장은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과 사회적 합의를 이룩하는 기본적인 민주사회의 조건이다. 프랑스의 각 정부부처가 적절하게 에따 제네로를 소집하여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대 국가는 매우 복잡하게 조직화되어 있다. 탈 정부(extra-government)적 사회조직의 영향력이 커지고, 다양한 이익집단간의 대립이 심화되며, 다양한 인종과 다문화가 충돌하는 등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국가사회에서 소수 정치집단과 관료집단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시민들과의 협치(協治,governance)가 필수적이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협치는 정치 공학에 매몰되어 자신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정치인들 정치관행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오늘날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진정한 민의를 대의(代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신만민공동회에서 세월호, 협동조합, 헌법친화도시, 정치혁신, 지역언론개혁 등 다양한 의제들이 제시되고 논의되었다.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느끼고, 개선과 변화,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다양한 의제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제들이 실제 정책 결정과정에서 수용되고, 논의되며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제도화 될 필요가 있다. 이제 복면가왕 뽑듯이 때만 되면 강요되고 동원되는 선거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으로 나가야할 때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신만민공동회’를 통해서 또 다른 희망의 싹을 보게 되어 무척 다행이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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