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대폭 낮추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뒀다. 연합뉴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 전환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탄소중립위원회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18일 사실상 확정되면서 산업계는 현실적인 부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탄소중립위는 산업 부문의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79.6% 감축한다는 내용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특히 이번 확정안에 석탄발전을 중단하는 내용이 담김에 따라 발전사 등 에너지 업계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원가가 저렴한 석탄발전이 사라진다면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도 탄소 감축 목표 달성에 대한 부담이 크게 늘었다.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 가운데 2개 시나리오는 공통으로 석탄발전을 중단하는 내용이 골자다. 종전 3개 안 가운데 2050년에도 석탄발전소 7기를 운영토록 한 나머지 1개 안을 폐기했다.

에너지 업계와 전문가들은 기저 전원 역할을 하는 석탄발전을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등 문제점과 기술 발전 수준을 고려하면 석탄발전이 어느 정도 유지돼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화석연료의 전면 중단보다는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포집·활용·저장(CCUS)하는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공기업들도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희의적인 모습이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이 에너지 공기업들로부터 받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의견' 자료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는 화력발전(석탄+LNG)을 전면 중단하는 안에 대해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봐야 할 사항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저장·간헐성) 고려 시 전력 계통 문제점과 LNG의 저탄소 에너지로서 탄소중립 역할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미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는 퇴출을 위한 보상 방안이 향후 쟁점으로 불거질 전망이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라 석탄발전을 중단하다면 '좌초자산'에 대한 합리적 보상을 통해 원활한 퇴장이 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업계의 주장이다.

현재 민간 석탄발전소로는 강릉에코파워와 삼척블루파워가 각각 공정률 80%와 50%로 공사를 진행 중이며, 고성그린파워 2호기는 준공을 앞뒀다. 발전원가가 저렴한 석탄발전을 폐지하고 가격이 비싼 재생에너지 발전이 늘면서 연료비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발표된 지난 23일 오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있다. (제공=연합뉴스)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발표된 지난 9월 23일 서울 한 건물의 전기계량기가 설치모습. 연합뉴스

기후환경 비용 증가에 따른 요금 인상 요인도 관심사다. 탄소중립위는 유상할당 비율을 상향해 배출권거래제를 강화하거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피해 비용을 발전원가에 100% 반영하는 방식으로 탄소비용을 가격에 반영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기후환경 비용으로 전기요금에 반영할 것을 주문한 셈이다.

또한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수송 부문에서 무공해차 보급률을 85%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했다. A안에는 도로 부문을 전면 전기·수소화(97% 이상)하는 방안이, B안에는 전기·수소차를 85% 이상 보급하는 방안이 각각 담겼다.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서는 전기·수소차를 450만대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자동차 업계는 우려를 표했다.

자동차 업계는 2030년까지 최대한으로 보급할 수 있는 전기차가 300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정부는 450만대를 목표로 하고 있어 150만대의 간극이 수입 전기차로 모두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부품업계의 친환경차 전환 속도도 문제로 꼽힌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전환과 함께 국내 부품업체들의 내수와 수출이 모두 축소되면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상 산업 부분에서 철강은 수소환원제철로 100% 대체하고 철스크랩 전기로 조강을 확대해 배출량을 95% 감축하도록 했다. 시멘트와 석유화학·정유는 재생 연료와 원료를 100% 사용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배출량을 각각 53%, 73% 줄인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비용과 국민부담 등이 제시되지 않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R&D 등 기술개발과 시설투자에 대해서도 정부의 과감한 지원과 적극적인 세제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에너지 전문가들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고려하면 원자력 발전 비중을 유지하거나 지금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을 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에너지학회, 한국원자력학회 등 에너지 관련 학회 회원 116명을 대상으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시행한 결과, 조사에 응한 에너지 전문가의 69.0%는 탄소중립기본법에 명시된 2030 NDC가 과도하다고 답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탄소중립위가 지난 8월 공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산업부문 감축안에 대해서는 79.3%가 과도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2050 탄소중립 목표를 고려하면 원자력 발전 비중을 확대(79.3%)하거나 유지(15.5%)해야 한다는 응답은 94.8%였다.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는 '재생에너지, 원자력 등 무탄소 에너지원의 확대와 적절한 조합'이라는 응답이 40.8%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중립위가 제시한 전원믹스 목표대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56.6∼70.8%로 확대하고 원자력 발전을 6.1∼7.2%로 축소하면 전기 요금이 어느 정도 인상될지를 묻는 질문에는 '50% 이상'이라는 응답이 66.4%로 절반 이상을 기록했다.

2030 NDC의 상향 조정이 국가 경제 전반의 국제적인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묻는 항목에는 89.7%가 부정적인 영향을 예상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업종별로는 석유화학·정유업과 제조업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예상하는 전문가가 각각 92.2%로 가장 많았고 이어 시멘트(91.4%), 철강(89.7%), 자동차(68.1%), 반도체(67.2%) 

주요 탄소 감축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이었다. 철강 업종에서는 탄소 감축 기술이 2030년까지 상용화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75.9%가 '부정적'이라고 답했고 석유화학·정유 업종은 75.0%, 시멘트 업종은 72.4%였다.

탄소 감축을 위한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역시 69.8%가 상용화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을 남기면서도 전기차 보급 대수를 늘릴 수 있는 대량 생산체제를 현실적으로 언제쯤 구축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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