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N포 세대, 살찐 정규직을 응징하다

현대판 양반들만 배 터지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기업 삼성전자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2014년 단 한 차례만 제외하고 꾸준한 영업실적 신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영업이익은 또 다시 전년 대비 5.5% 증가한 26조 4천억원이었다. 98,895명 직원들의 평균연봉도 1억 100만원으로 3년째 1억원대를 돌파했다. 그렇지만 5년 전과 비교하면 평균임금(8640만원)은 16.9% 상승률이지만, 고용인원(91,465명)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8.1% 증가에 그치고 있으니 성장의 과실을 고스란히 기존 정규직들이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장인 SK텔레콤 역시 최근 5년간 연평균 1조 92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알짜기업이다. 이 회사의 4,124명 직원들의 2015년 평균연봉도 1억 100만원이었으며 역시 3년째 1억원대이다. 이는 5년(6400만원) 전과 비교하면 무려 57.8%가 증가한 금액이지만 고용인원(4,421명)은 외주 등으로 오히려 297명이 줄어버렸다. 더구나 통신료 인하요구 등 영업환경 악화로 최근 2년 사이에는 각각 9.2%와 6.4% 정도의 영업이익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억대 정규직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배 불리기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완성차 업계에서 최고 대우인 기아자동차 직원들의 2015년 평균연봉은 9800만원이었다. 이중 상당수는 억대 연봉으로 짐작된다. 5년 전(8200만원)과 비교하면 약 19.5% 상승이다. 이 사이에 고용인원은 1,522명 늘었으나 비정규직을 제외하면 겨우 1,139명에 불과하다. 2006~07년 사이 영업손실을 기록한 기아차는 이후 2008년부터 영업이익으로 돌아서며 완만한 성장세를 기록해왔다. 그러나 세계경제 불황과 수출부진이 겹쳐 2013년부터는 영업이익이 계속해서 전년 대비 각각 9.8%, 19%, 8.5% 가량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실적이 하향세로 돌아선 첫해인 2013년에도 기아차 직원들은 배짱(?) 좋게 성과상여금 등 명목으로 평균연봉을 전년 대비 300만원 인상시켰다. 그 다음 해에도 또 다시 300만원을 인상시켰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내하청과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전가되었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의 평균연봉은 5000만원, 1차 협력사는 4700만원, 그 사내하청은 3000만원, 2차 협력사는 2800만원, 그 사내하청은 2200만원이었다.

주식·채권 등의 유가증권 관리를 독점하는 한국예탁결제원은 323개 국내 공공기관 중에서 직원들 평균연봉이 가장 높은 곳이다. 2012년 이미 1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466명 직원들은 1억 490만원을 받아서 연봉 킹으로 올라섰다. 금년에도 인건비 예산으로 최고액인 1인당 1억 700만원을 편성하고 있다.

이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회사들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사회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13∼19세 청소년이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직업)은 공무원(23.7%), 공기업(19.5%), 대기업(18.7%) 등 순이었다. 공무원은 정년보장 및 퇴직 이후의 연금소득, 대기업과 공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 때문이다.

지난 6월 25일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진 금년도 서울시 지방직 9급 필기시험은 최종경쟁률이 78.5 대 1이었다. 전산9급이 가장 높아서 135.7 대 1을 기록했다. 평균 재직연수 16.8년(2013년 기준)의 공무원은 엄청난 취업난 속에서 안정성과 함께 이제는 적지 않은 연봉까지 더해져 갈수록 인기 있는 직업군이다. 인사혁신처가 고시한 2016년 전체 공무원의 기준연봉은 5892만원이다. 여기에 정액급식비, 직급보조비, 복지포인트 등 각종 인건비성 경비 등을 모두 합하면 평균 6천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9급 초임은 월봉 200만원 정도로 시작하지만 해마다 호봉인상 등 6~8만원씩 기본급이 올라 10년 차에는 300만원까지 오르게 된다. 거기에 20년 이상을 근무하면 공무원연금 평균수령액이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높은 월 235만원(2014년 기준)이다. 그래서 노량진 등을 점령한 공시족이 무려 45만명이나 되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3년 대졸자이동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대 취업자의 51.2%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거나 공시족이었다. 그중 절반 이상(53.1%)이 9급 공무원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또한 취업경험이 전혀 없는 공시족도 33.3%였다. 취업난을 반영하는 단적인 지표이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정규직이면서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금융·보험업종 등에 속하는 청년층 선호일자리는 약 300만개 남짓이다. 전체 취업자수 2,580만명의 겨우 11.6% 수준에 불과하다. 금년 2월에도 56만명이 대학과 전문대학 교정을 힘차게 나섰지만 이들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은 공무원 및 공공기관은 신규채용이 4만명에 불과하다. 주요 30대 그룹 역시 전년보다 5%가량 줄인 12만 5천명 정도만을 채용할 계획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등장 이후 3년째 1만명 이상 감소 추세다. 그래서 2015년 말 현재 한국고용정보원이 파악한 청년실질실업률은 21.8%로 정부 발표와는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2014년 국세청 연말정산 자료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30세 미만(주로 20대)의 평균연봉은 겨우 1840만원(월 153만원)에 불과했다. 40대(4007만원)와 50대(3993만원)의 46% 수준이다. 임금연공성(1년 미만 근속자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격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세대격차가 심화된 탓도 있으나 20대의 경우 공기업 및 대기업 정규직 등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음식·숙박업 등 단기 시간제에 주로 종사했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살펴봐도 청년고용의 심각성은 확인된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청년층(15~29세)은 2010년 당시 223만 3천명이었으나 2014년 221만 3천명으로 4년 만에 20만명, 약 9%가 감소했다. 전체 피보험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2%에서 18.5%로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2015년 국세통계연보’ 통계에 의하면 억대 연봉 근로자는 2014년 사상 처음 50만명(52만 6천명)을 돌파했다. 5년 전(19만 6천명)인 2009년과 비교하면 2.68배, 무려 33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거기다 월급 기준으로 500만원을 넘게 받는 근로자는 2009년 당시 107만명이었으나 5년이 흐른 2014년에는 222만명으로 증가해 인원비중도 7.5%에서 13.3%로 대폭 늘어났다. 이에 따라 전체 근로자들의 2014년 평균연봉도 3172만원(월 264만원)으로 5년 전(2222만원)보다 42.7%나 급증했다. 이는 바로 억대 연봉자 및 월급 500만원 초과 중상층 정규직들의 숫자와 임금액수 증가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억대 연봉자들은 높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세금 납부에는 매우 인색했다. 1억원 초과소득자들은 2009년 당시 5조 1820억원 가량의 세금을 납부해 실효세율(세법에 정해진 세율이 아닌 납세자가 현실적으로 부담하는 세금 비율)이 16.1%였다. 하지만 억대 연봉자가 급증한 2014년에도 억대 연봉자들의 실효세율은 고작 16.5%, 이들이 납부한 세금은 인원수 증가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13조 1146억원에 머물렀다. 특히 이중에는 아예 세금을 한 푼도 안 낸 경우도 1,441명이나 있었다.

소득 구간 6000만원(월 500만원) 초과부터 1억원 이하 구간을 살펴보면 더욱 심각하다. 이 구간 소득근로자들의 실효세율은 2009년 5.6%에서 2014년 6.2%로 0.6%P 늘면서 무려 7조 9330억원의 세금을 부담하게 되었는데, 1억원 초과 고소득근로자들의 실효세율 증가세(0.4%)가 오히려 둔화된 것이다.  

정부는 2012년 재정건전성 제고와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 과표 3억원 초과구간을 새롭게 설정했고 최고 소득세율도 35%에서 38%로 인상했다. 2014년에는 최고세율 적용 소득구간을 또 다시 ‘3억원 초과’에서 ‘1억 5000만원 초과’로 하향·조정했다. 고액 소득자의 절세를 막기 위해 소득공제 제도에서 세액공제 제도로 전환했다.

그러나 2014년 근로소득에 대한 연말정산을 실시한 지난해 초 세금폭탄 논란으로 전국이 술렁거렸다. 정부가 보완대책을 내놓으면서 근로소득세의 실효세율은 떨어졌다. 당초 세법개정을 통해 실효세율을 0.34%가량 끌어올렸지만 자녀세액공제 확대, 출산·입양세액공제 등을 신설하며 다시 0.08%가 후퇴했다. 실효세율은 모든 소득구간에서 내려갔다. 2013년 근로소득 연말정산 후 세금면제자는 524만명으로 집계됐다. 연말정산 파동을 겪으면서 1년 사이에 면세자는 802만명, 48.1%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에는 월급 500만원 초과근로자 16,703명도 포함됐다.

그러나 같은 사업장에 근무하며 최저임금 수준인 연봉 1500만원 미만을 받은 26만 6천명은 그나마 작은 액수라도 세금을 냈다. 이들은 편의점과 치킨집, 카페 등에서 힘겹게 시간제 일자리를 하고 있는 청년들이 많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지난 4월 13일 총선이 실시되었다. 그러니 20대의 ‘분노 투표(angry young vote)’는 예견된 일이었다.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13총선 투표율 조사·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5월 16일부터 6월 7일 사이에 전체 유권자의 10.4%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해 비교적 신뢰도(표본오차 ±0.05%p)를 높인 자료이다.

이미 투표 당일 지상파 방송국이 실시한 출구조사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이번 4·13총선은 20대 청년유권자의 반란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대는 N포 세대라는 자조 섞인 그들만의 언어 속에 종종 투표 포기세대라는 의미까지 내포돼있다. 그들은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이후 총 7번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6번이나 투표 참가율 50%를 밑돌았다. 이 같은 저조한 투표율로 인해 한동안 ‘20대 개××론’이라는 신조어까지 낳기도 했다. 그만큼 20대는 정치적 무관심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이 단단히 화가 났으니 19세~20대의 투표율은 무려 52.9%로 지난 2012년 대선을 제외하면 전국단위 선거로는 10년 이래 최고 기록이다.

19대 총선과 비교해보면, 20대 전반(20~24세)은 45.4%에서 55.3%로, 20대 후반(25~29세)은 37.9%에서 49.8%로 크게 증가했다. 성별 자료를 함께 살펴보면, 20대 후반 남성은 36.3%에서 47.3%로, 20대 전반 여성은 40.4%에서 54.2%로, 20대 후반 여성은 39.5%에서 52.6%로 각각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전체 투표율 증가(54.2% → 58%)와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새누리당 참패의 주된 근거는 분노한 20대 유권자이었다.

<표> 19~20대 총선 연령대별 투표율 비교

ⓒ돌직구뉴스

그렇지만 이와 반면에 전통적 여당 지지기반이며 적극 투표 참여층인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전반적인 투표율 증가 속에도 투표율 하락 또는 정체가 나타났다. 50대는 19대 총선 때보다 1.6%P 하락한 60.8%를 기록했으며, 60대 이상은 68.7%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5년 6월 기준 1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74만원이었다. 지난해 주민등록상 평균가구가 2.45명이므로 가구당 평균 소득이 671만원쯤 되는 것이다. 기업들은 낮은 경제성장률로 인해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엄살을 떨지만 나눌 수 있는 파이는 벌써 넘치고도 남는다. 공무원, 공기업·대기업 등 종사자는 이미 가진 게 너무 많은 현대판 양반이 되어버려 스스로는 나눌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들은 살찐 고양이가 아니라 살찐 정규직들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 청년층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수많은 공약을 남발한 두 야당이 최근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제 기간을 연장하고 할당율도 기존 3%에서 5%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민간 대기업까지 매년 정원의 3% 이상 청년고용을 의무화한다. 그렇지만 공공기관조차 지난해 의무비율 준수율이 70.1%에 불과했고 특히 지방 공공기관은 57.6%에 그쳤으니 그 실효성이 의문이다.

지속적으로 여의도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로 알아서 챙겨주지 않는다. 이번에 평균 10%가 넘게 증가한 투표율에 놀라서라도 정치권은 이제 20대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대선도 1년여 앞으로 다가오는데 청년들아,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자리와 격차해소를 요구하라. 살찐 정규직들의 양보를 받아내라.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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