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공무원으로부터 배우는 교훈

스위스는 작지만 강한 나라다. 인구가 812만명에 불과해도 알프스의 풍부한 자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관광산업이 주업이다. 수많은 자연호수에서 얻는 수력자원을 이용해 일찍부터 기계·화학·금속·약품공업을 발전시켜왔다. 한국인조차 이민가고 싶은 나라 9위에 꼽을 정도인 스위스는 2014년 현재 주당 근로시간 30시간 미만인 시간제근로자 비중이 무려 26.9%로 여유를 즐기지만, 1인당 국민소득(GNI)은 88,120달러로 우리 대한민국(28,071달러)과 비교해도 3배가 넘는다.

스위스는 중산층의 나라다. 2013년을 기준으로 중위임금(전체 산업근로자임금의 중간 값) 3분의 2 미만인 ‘저임금근로자’ 비중은 9.2%로 OECD 평균(16.3%)보다 7.1%P가 낮다. 중위임금의 150% 이상인 ‘고임금근로자’ 또한 19.8%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연 중산층이 두텁다.

스위스는 공무원의 나라다.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싱가포르, 독일, 일본, 프랑스 공무원 등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스위스 공무원은 평균적으로 일반 근로자에 비해 형편이 나은 편이다. 스위스연방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2014년 당시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한 스위스 공무원들의 중위임금은 월 7,665CHF(스위스프랑·약 905만원)이다. 이는 전체 정규직(월 6,825프랑·약 805만원)근로자의 1.12배가량이다. 교사가 8,391CHF(약 990만원)이며 가장 숫자가 많은 건강관리·사회복지직도 6,901CHF(약 815만원)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와 같은 공무원 보수는 다국적기업이 즐비해 민간분야 최고수준인 제약제조업종(9,694CHF·약 1,145만원)과 금융보험(9,208CHF·1,090만원) 등에 비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스위스는 국가경쟁력 으뜸인 나라다. 낮은 법인세를 바탕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안정된 연금재정과 튼튼한 사회안전망 등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배경에는 약 64만명가량(2013년 기준)의 이들 공무원이 자리하고 있다.

스위스는 국민투표의 나라다. 1848년 첫 도입 이후 무려 600 차례 이상 국민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보았다. 금년에도 이미 지난 2월 28일(기혼자 세금우대 등)과 6월 10일(기본소득제) 등 두 번이나 실시했다. 이 궂은 일을 꿋꿋이 170년 동안 해낸 이들은 바로 인구의 8%밖에 안 되는 공무원들이다. OECD 평균이 16.5%, 세계 최고가 노르웨이(30.5%)이므로 스위스 공무원들의 노동생산성은 매우 놀랍기만 하다.

스위스는 기본소득과 최저임금제도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나라다. 지난 6월 10일 2,500CHF(약 300만원) 기본소득 도입(안)을 압도적으로 거부한 스위스 국민은 2년 전인 2014년 5월 18일에도 월 최저임금 4000CHF(약 472만원)을 보장하자는 국민투표에 대해 역시 76.3%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켜버렸다. 이유는 최저임금미만 근로자가 현실적으로 많지 않아 그만큼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간제 근로자들 중에서도 20%가 월급을 4000CHF 이상 받았으며, 정규직만 한정하면 4000CHF 미만은 11.3%밖에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을 법으로 정하지 않는 스위스에서 집단노동협약을 통해 근로자가 실제로 받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평균 17CHF(월 420만원)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대한민국은 소리만 요란한 나라다. 무역규모 8위, GDP 순위 11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빈 수레에 불과하다. 연간 평균 OECD회원국(1,706시간·2014년 기준)보다 무려 351시간 많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근로자들 때문에 그나마 1인당 GDP는 세계 28위다.

대한민국은 중산층이 점점 사라지는 양극화의 나라다. 2014년 연말정산을 실시한 1,619만명 의 중위임금은 연봉 2,465만원(월 205만원)이다. 그 3분의 2에 미달하는 저임금근로자는 무려 23.7%였고 고임금근로자는 3,547만원 초과자이지만 연봉 4,000만원으로 한정해도 무려 27.1%에 달한다. 따라서 중산층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최근 설문조사 답변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구경꾼인 나라다. 국가안보와 국민생명이 직결되는 중대사인 사드 배치 결정을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조차 신문기사를 통해서 알게 되는 나라다. 영남권 신공항 등 수많은 국책사업도 얼렁뚱땅 대부분은 국민의견 따위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대한민국은 공무원이 갑(甲)인 나라다. 2013년 공무원 총조사 당시 공무원들의 평균 재직기간은 16.8년으로 공공기관 정규직(14.8년)보다 길었고 민간 기업(5.6년)의 3배였다. 이는 20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 비율이 42%로 비교적 높기 때문이다. 국회 국정감사자료로 제출된 바에 의하면 2014년 당시 퇴직하는 전국 17개 시·도 공무원들의 평균 재직연수는 27.8년으로 민간 기업(16.3년) 대비 10년 이상 차이가 났다. 이는 기존 직장인과 SKY출신, 그리고 외국 유학생까지 가세해 9급 지방직 공채시험에 문을 두드리는 주된 까닭이다. 지난 4월 필기시험을 치른 9급 국가직 합격자 중에는 40대가 228명으로 4%를 차지했고 50대도 32명이나 됐다. 최근 광주시 9급 지방직 행정공무원에 변호사 출신이 응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SNS에는 온통 변호사 값이 떨어졌다고 호들갑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취업준비생의 57%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거나 공시족이었다. 여기에 OECD가 공무원으로 분류하는 교사와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비율을 더하면 20대 청년의 무려 70% 이상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고시의 나라다. 약 1,500명가량의 고위공무원단으로 승진하는데 5급 공채(행정고시) 출신은 21.2년이 걸리는데 9급 공채 출신은 무려 32.9년이 걸린다. 이는 고시 출신은 5년 전보다 2.6년 단축됐지만 9급 출신은 겨우 0.7년 단축된 것이다. 그래서 77.2%가 행정고시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9급 공채로 시작한 공무원은 겨우 5.6%에 불과하다.

지난 7일 한 일간지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 99%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나는 나머지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교육부 나향욱 前정책기획관은 행정고시 36회 출신이다. 1993년 사무관으로 임용돼 지난 3월 고위공무원(나급)으로 승진했다. 연봉제인 그의 월봉은 796만 8천원이다. 여기에 직급보조비(월 65만원), 교통보조비 및 정액급식비(월 33만원)을 더하면 연봉이 약 1억 770만원이다. 여기에는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수당, 복지포인트 등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이 정도면 소득상위 1.3% 수준으로 1%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은 국가경쟁력 제로(0)에 가까운 나라다. 정치권과 관료들은 틈만 나면 각종 새로운 규제를 통해 안 그래도 힘든 기업을 더욱 못살게 만든다. 공공부문조차 이행률 70%에 불과한 청년의무고용할당제를 민간 대기업에까지 확대·적용하여 최대 25만명이나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지난해에는 반대 입장이 분명했던 정부 관료들도 이제는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자 입장을 바꿔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공개한 한국의 국가경쟁력 종합순위는 지난해보다 4단계나 하락한 29위에 그쳤다. 이는 2008년 31위 이후 8년 만에 가장 낮은 성적이다. 특히 올해는 중국(25위)보다도 뒤처졌다. 공공부문 개혁 추진 등으로 정부의 효율성 순위가 3년 만에 올랐지만 그래도 38위다. 김영란법 도입의 계기가 된 부패지수는 OECD 34개국 가운데 27위로 특히 부끄럽다

지금 헬 조선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무원시험뿐이다. 수십만명에 이르는 공시족들이 해마다 4만여장 정도의 합격증을 놓고 사투를 벌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와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까지 공무원에 대한 직업 선호도가 매우 뚜렷해졌다. 제발이지 공무원은 갑(甲)이 아니다. 봉사하는 을(乙)이다.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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