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부족장의 나라, 한국

「국익은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국내 지배연합의 이익」
 

국익이란 무엇일까? 시민들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협상을 잘해 국가가 얻는 이득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정치경제 분야 학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국제적인 압력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의 대외정책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펴보자.

국제정치의 국내 작동기제

세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정치시스템 상의 변수를 국제체제변수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경로로 우리나라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 국제체제변수의 압력과 대외정책 간의 순환 ⓒ돌직구뉴스

먼저, 국제체제변수의 압력은 국내정치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국내정치구조는 순수한 국민과 제도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지배연합구조와 제도로 구성된다. 국내정치구조를 형성하는 지배연합은 때로 미국을 가장 큰 국제체제변수로 여길 수도 있고, 때로는 중국이나 유럽을 가장 큰 국제체제변수로 여길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이다.

다음으로, 국내정치구조를 통과한 국제체제변수의 압력은 대외정책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대외정책을 집행한 결과물이 좋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정책을 질타하는 화살은 ③과 같이 국내정치구조로 향하고, 지배연합구조와 제도가 개혁의 표적이 된다. 이 과정은 국가의 내부에서 일어나며,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는 등의 활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④와 같이 대외정책을 질타하는 화살이 국내정치구조가 아니라 국제체제변수로 직접 향할 수도 있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이 세계적인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경우, 또는 한 나라의 군사정책이 세계의 군사적 균형을 바꾸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좁게는 미국을 가장 큰 국제체제변수로 여겼던 어느 국가의 대외정책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과 같은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양면게임(Two-level Game)

국제 정치지형과 국내 정치지형은 별개가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로버트 퍼트남Robert D. Putnam은 국제협상과 국내정치를 하나로 연결된 게임으로 보고, 국제협상과 국내정치 사이에서 매개체로 작용하는 과정을 국내비준으로 보았다.

▲ 국내비준의 장

국내비준은 말 그대로 국내에서 발생하는 과정이지만, 국제협상에 임하는 협상가들, 특히 한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해외 협상가들은 그 국가의 국내비준에 큰 관심을 쏟는다. 지배연합을 아무리 구워삶아도 그들이 국내비준에 실패한다면 소위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압력을 행사하려는 해외 협상가들은 그 국가 내에 국내비준에서 이길 수 있는 지배연합을 구성하려 한다. 왜냐하면 국가로 하여금 협상가들의 압력을 수용하게끔 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아프리카 부시족을 시장개방의 표적으로 삼았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 협상가들은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족장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동안 족장의 힘에 눌려 있던 부족장의 힘을 키워준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을 거둔다면 지배연합구조가 바뀌고, 미국 협상가들은 부시족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로버트 퍼트남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반향 일으키기’라고 불렀다.

▲ 반향 일으키기의 제물 ⓒtimesunion.com

다시 질문해 보자. 국익이란 무엇일까? 위에 언급한 국제정치의 작동기제 및 양면게임은 국익을 국가가 얻는 이득이 아니라 그 국가 내 지배연합이 얻는 이득임을 강력히 지지한다.

국익은 지배연합의 이익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는 국제체제변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지배연합구조이다. 그들이 누구일까?

지배연합구조는 사안별로 달라진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생활 향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 부시족을 상대로 반향 일으키기를 할 때, 부시족 지배연합구조의 정점에 있는 자는 부족장이다. 그럴 때 부시족의 족익(?)은 부족장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의 이익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안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 한국을 상대로 반향 일으키기를 할 때, 한국 지배연합구조의 정점에 있는 자는 누구일까? 그가 누구건, 지배연합구조 내에 있는 그들이 누구건, 그들이 언급하는 국익이란, 자신들의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 풍성함의 역설 ⓒNEWSis

애국심이 사라질수록 게양되는 태극기의 수가 많아지는 것처럼, 새롭지 않을수록 새로움을 외치는 선거 후보도 많아진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국익이 사라질수록 국익을 외치는 정치인은 많아진다. 국부國富가 국민에게로 흐르지 않고 지배연합구조 내에 있는 이들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기력한 부족장의 나라, 한국

원론적으로 두 가지 수준에서 방법이 있다. 첫 그림 <국제체제변수의 압력과 대외정책 간의 순환>으로 돌아가자.

국제체제변수의 압력이 국내정치구조로 향하는 과정은 워낙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개입하기가 어렵다. 국내 지배연합이 제도를 악용해 대외정책을 발표하는 과정 역시 끼어들기가 만만치 않다. 따라서 방법은 대외정책의 결과물 또는 예상 결과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첫 번째 수준의 방법은 대외정책 결과물을 무기로 국내정치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현행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선거로 가능하다. 미국이나 스위스처럼 대의제 민주주의에 아래로부터의 국민투표(bottom-up), 국민발안과 같은 직접민주주의 요소들을 도입한다면 국내정치구조를 바꾸는 국민의 힘은 더욱 커진다.

물론 이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지배연합구조 내에 있는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의 그릇된 보도이다. 국민이 왜곡된 언론에 휘둘리지 않게 하려면, 나라 전체의 민주주의 의식을 높여야 한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 선진국들이 어릴 때부터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민주시민교육 과정에 참여 중인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theconversation.com

두 번째 수준의 방법은 국내정치구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대외정책 결과물을 무기로 국제체제변수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의 한국 배치를 예로 들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vs 미국’이라는 신 냉전 지향적 국제체제변수는 미국이 자국의 MD시스템을 조속히 완성하도록 종용한다. 그런 국제체제변수의 압박이 향한 곳은 한국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의 미국 측 협상가들이 가장 크게 우려했던 부분은 바로 국내비준.

미국 측 협상가들이 주목한 것은 ‘국내비준 비켜가기’였고, 그 도구로 활용된 것은 다름 아닌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 즉 주한미군지위협정이다. SOFA로 인해 국내비준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경북 성주 군민들의 일상은 국제체제변수의 압력을 몸으로 받아내는 모르모트로 전락했다. 그 대가로 국내 지배연합이 취한 또는 취할 이익은 무엇일까?

▲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돌직구뉴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국력이 두 번째 수준의 방법, 즉 미국 대신 중국을 택하거나 둘 다 버리거나 둘 모두 취하거나 하는 등의 국제체제변수 자체를 변화시킬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지배연합구조를 바꾸는 제도적 장치, 즉 민주주의의 요소가 지금보다 더 단단해지려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가의 수준이 높아지는 일 역시 단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지배연합이 장악하고 있는 SOFA 변경조차 어려운 지경이니, 국제체제변수 자체를 바꿀 만한 경쟁력은 아예 꿈도 꾸기 어렵다.

이래저래 무기력한 부시족 부족장의 나라다. 호연지기가 없으니 ‘대大’하지 않고, 국익이 ‘민民’에게 돌아가지 않으니, 우리나라 국호 대한민국에서 ‘대大’자와 ‘민民’자가 참으로 낯선 시절이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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