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중 교부금 7조 엔의 목표는 소비 진작
「브라질, 나미비아, 스위스에 이은 일본의 기본소득 실험」
28일,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그가 내놓은 경기부양책의 규모는 무려 28조 엔(300조 원)에 달한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까지 적극 거들고 나선 아베 총리의 이번 경기부양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왔으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를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보자.
300조 원 경기부양책의 탄생 과정
이번 대규모 경기부양책은 지난 7월 10일 열린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개헌 의석 과반수를 크게 웃도는 70석을 얻으면서 승리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자민당 총재인 아베 총리는 선거에 승리하자마자 디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내수를 떠받치기 위해 종합적이고 대담한 경제정책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2045년 개통 목표인 초고속 열차 ‘리니어 주오신칸센(中央新幹線)’의 도쿄-오사카 구간 공사 조기마감을 예로 들면서 “미래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성장 씨앗에 대담하게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공언에 일본 정치권 안팎에서는 경기부양책 규모가 최소 10조 엔(약 113조)에서 최대 20조 엔(약 226조)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이미 1천조 엔이 넘어선 상황이라,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지출이 대폭 확대된다면 시장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23일 청두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앙은행의 국채 직접 인수, 그리고 재정과 금융 정책을 하나로 운용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역사적 교훈에 따라 금하고 있다.”
이는 일본은행이 국채를 직접 인수하는 등 정부가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하는 ‘헬리콥터 머니’는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구로다 총재의 발언에 일본 내부에서는 경기부양책 규모가 많게는 30조 엔(322조 원)까지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8월 2일 열릴 각료회의(국무회의)에서 이 사안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일본 경제계에서는 이번에 발표된 경기부양책이 실제보다 부풀려졌으며, 따라서 실제 경기부양 효과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전체 사업규모인 28조 엔의 내실을 따져보면, 일반회계에 포함되지 않아 재정건전성 논란을 피해갈 수 있는 6조 엔가량의 재정투융자를 포함, 13조 엔이 재정조치이고, 재정조치를 제외한 15조 엔에는 정부 보조를 받는 기업이 사용할 자금 및 중소기업 등에 대한 융자금이 포함되어 있다.
경기부양책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실제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는 정부와 지방의 직접지출 사업규모가 6조 엔에 불과하다는 점, 3조 엔 규모의 리니어 주오신칸센에 대한 재정투융자가 10년 뒤에나 집행된다는 점, 그리고 경기가 침체한 마당에 기업들이 실제로 기대만큼 융자를 활용할지가 미지수라는 점 등에 기인한다.
여기까지는 300조 원이라는 경기부양책의 규모 외에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이번 경기부양책 중에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항목이 하나 있다.
7조 엔(75조 8,000억 원)의 기본소득 교부금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저소득층에 1인당 1만 5천 엔(16만 원)의 교부금을 일괄 지급하는 방안을 이번 경기부양책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혜택을 받는 저소득층의 규모는 주민세 비과세 대상인 2,200만 명에 이르며, 이를 위해 총 7조 엔(75조 8,000억 원)가량이 투입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많은 자금을 도로, 항만 등 인프라 건설이나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 등에 사용하지 않고 그저 국민들에게 현금으로 나눠주려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한 가지, 가계 지원을 통해 소비를 확대하고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함이다.
수출과 내수는 한 나라의 경제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라서, 내수가 어려울 때는 수출에 신경을 써야 하고, 수출이 어려울 때는 내수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경기침체로 디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되고, 자국의 통화 가치가 높아지는 등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대외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면서 우선적으로 내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해법이다. 아베 총리의 7조 엔 교부금 투입 계획은 헌법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서 한시적이다. 그럼에도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일정 금액의 교부금을 나눠주는 원리에 있어서는 ‘기본소득’과 맥이 닿아 있다. 이번 7조 엔 교부금을 헌법으로 규정하고 저소득층으로 한정된 수혜 대상을 전 국민으로까지 확대하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런 방식을 시도하거나 도입한 나라가 있을까?
기본소득 실험에 나선 국가들
브라질과 나미비아가 세계에서 최초로 기본소득을 실험했다. 양국이 자국민들에게 지급한 액수는 절대빈곤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는 소액에 불과했다.
선진국 중에도 기본소득을 시도한 국가가 있다. 매달 성인 2,500스위스 프랑(300만 원), 미성년자에게 625스위스 프랑(67만 원)을 지급하는 안을 두고 지난 6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스위스다.
매달 300만 원이라는 액수는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액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스위스의 물가와 경제 규모를 우리 식으로만 판단한 착각이다. 세계은행이 2014년 집계한 통계에 의하면,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무려 84,720달러이다. 스위스 국민들이 ‘입에 근근이 풀칠하고 사는’ 빈곤선 소득이 2,219스위스 프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300만 원은 그야말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자금일 뿐이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안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을 두고, 우리나라에서는 복지가 국가경제를 갉아먹느니 마느니 하는 정치적 논의가 주를 이루었지만, 스위스 경제 전문가들과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기본소득안을 정치가 아닌 복지, 그중 특히 예산의 문제로 접근했으며, 70억스위스 프랑이라는 예산상의 차이와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해 부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부결된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예산은 연간 2,080억스위스 프랑인데, 현재 시행 중인 사회보장 예산 620억스위스 프랑에 생활임금living wage 1,280억스위스 프랑을 합치면, 총 재원 중 91%가 이미 국민 개개인에게 지급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기본소득안을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소득세와 부가세를 인상하면 부족분인 180억 스위스 프랑을 채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스위스 정부의 계산으로는 현재 총 재원 중 80% 정도가 지급되고 있으니 부족분은 250억스위스 프랑이고, 이 금액은 국가재정에 압박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스위스에서의 기본소득안 국민투표 부결은 70억스위스 프랑의 차이와 영글지 못한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그리고 선거에 임하는 두 진영의 전략 차이에 기반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서울시와 성남시의 기본소득 실험
우리나라가 기본소득을 도입하기에는 아직은 복지예산의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복지예산의 수준은 총조세부담율 대비 공공사회지출로 판단할 수 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총조세부담율과 공공사회지출은 각각 34.1%와 21.7%(2013년 기준)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각각 24.3%와 10.2%에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해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한국의 총조세와 복지 지출액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상승하면,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앉아서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액이 높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성장과 경쟁 위주의 현 경제시스템 하에서는 복지 지출액의 대폭 상향은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간 복지 지출액의 성장세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두 곳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서울시와 성남시다. 서울시는 청년 3,000명에게 최장 6개월 간 매월 5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활동지원사업’을 추진 중이고, 성남시는 소득이나 직업, 보유재산에 상관없이 역내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이하 청년 모두에게 분기별로 1인당 25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배당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두 곳 모두 사업이 순탄치 않게 굴러가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중앙정부가 해당 사업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8월 초경 서울시가 대상자를 선정하자마자 시정명령 및 직권취소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서 그렇다. 물론 서울시는 그 처분에 대해 대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사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 시작해 1/4분기에 10,574명, 2/4분기에 10,451명의 청년이 수혜를 본 성남시의 청년배당사업 역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 놓은 상황이라 분기별 1인당 지급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12만 5천 원만 지급해오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60)은 오는 8월 2일 개최되는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악인 현 상황에서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이 왜 필요한지, 청년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며 소비 진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 사업의 취지를 직접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예정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정부를 상대로 한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결과를 기다리겠지만, 성남형 주민복지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지방정부 차원의 기본소득 정책을 계속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일본 보기가 부끄러운 한국
복지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특히 분배의 문제이고, 정치는 경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일 뿐이다. 엄연히 경제 문제인 복지를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조차 국회 연설에서 “더 나은 성장을 위해 분배를 고려해야 할 때”라고 말한 작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안을 어떤 시각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정부 한쪽의 거버넌스로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정부는 물론이고 노동조합과 각종 시민사회단체, 비정부기구NGO 등을 포함하는 국내적 수준뿐 아니라 세계적 수준까지 아우르는, 그래서 글로벌 거버넌스에 기초한 정치경제적 판단을 내릴 때, 민주주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는 8월 2일,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국무회의가 개최된다. 일본 아베 총리는 저소득층 2,200만 명에게 거금 7조 엔(75조 8,000억 원)의 교부금을 지급하는 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유는 단 하나, 침체된 국내 소비를 살리기 위함이다.
서울시 박원순 시장은 1회 시행에 100억 원이 채 들지 않는 지방자치단체 복지정책의 당위를 설명할 예정이다. 사업의 명분은 아베 총리가 내건 명분과 동일한 ‘소비 진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라도 복지 문제를 정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글로벌 거버넌스에 기초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아니, 헌법에 명시하자는 것도 아니고, 전액을 다 지원해달라며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는 것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기본소득 실험 좀 해보겠다는데, 그걸 그렇게 말리고 나서나 그래!
민주주의는 실험의 장이어야 한다. 실험도 못하게 하고 무슨 정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본의 행태, 특히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의 정략적인 행태에 날만 새면 욕을 해댄다. 그런 일본이 비록 단기적이나마 75조 8천억 원이라는 거금을 기본소득으로 쓰려 하고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 말이다.
대단한 대한민국, 그렇게 욕을 해대는 일본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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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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