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일화로 가는 한국과 미국, 베네수엘라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야

「베네수엘라의 경기 몰락은 잘못된 경제정책 운용 탓」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부터 국경 일부를 열기로 합의했다.

▲ 회담 중인 산토스 대통령과 마두로 대통령(8/11) ⓒvtv.gob.ve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양국 대통령은 지난 11일 정상회담을 갖고 총 2,200km 구간 5개 지역의 통행을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 허용하기로 했다. 또한 상업 부문, 에너지 부문 등에 대한 협약을 맺은 후 점진적인 국경 개방에 임하는 데도 합의했다.

원유 매장량 세계 1위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기도 한 자원부국, 지금까지 확인된 가채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은 3,000억 배럴이고, 미 국립지질조사국 추정치는 5,000억 배럴을 능가하는 나라. 중남미 좌파 국가의 맹주인 베네수엘라가 망해가고 있다.

1997년 9월, 동남아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한 한국에 미국이 IMF를 앞세워 밀고 들어온 사례를 우리 국민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일이 베네수엘라에서도 벌어질까?

▲ 한국의 IMF 위기를 다룬 비즈니스 위크誌(1997/11/24) ⓒnews-us.jp

사실 베네수엘라만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미국의 세계경영은 새로운 구도를 짤 수도 있다. 그만큼 베네수엘라가 보유하고 있는 원유의 가치는 막강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풍부한 자원이 오히려 베네수엘라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무기로 돌변해 있는 상황이다. 왜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찬찬히 따져보자.

엉터리 외환정책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 좌파 인사들의 호평을 받아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정권이 2기에 접어든 지난 2003년, 차베스 대통령은 외환보유고를 확보하기 위해 특단의 정책을 내놓았다. 환전, 즉 외환거래를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정책이었다.

물론 외환거래를 중단한다 해도 완전한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차베스 정권은 고정환율제를 도입해 달러의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수입품에 한해 고율을 적용하는 이중환율제까지 도입했다.

그 결과, 생필품 편중현상이 심화되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물가안정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 차베스 정권이 택한 정책은 국내 기름값 인하였다. 그러나 기름값의 지속적인 인하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잡히지 않았다.

▲ 58세로 사망한 우고 차베스Hugo chavez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people.com

이런 정책으로 인해 덕을 본 쪽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콜롬비아였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싼 기름을 국경에서 내다파는 석유밀수출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석유밀수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콜롬비아 당국은 석유를 승용차에 싣고 입국하는 베네수엘라인들을 전혀 제지하지 않고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 내 기름값은 리터 당 10원 수준, 50리터를 주유해도 50원이면 승용차 기름 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다.

잘못된 가격 통제 및 생산 통제 정책

2013년 기준,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은 56%로 세계 3위를 기록했으며, 2015년에는 141.5%였다. IMF 보고서에 의하면, 2016년 현재 인플레이션율은 481%에 달해 있고, 오는 2017년이면 1,642%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승 속도라면 베네수엘라 경제가 도달할 곳은 딱 한 곳, 짐바브웨뿐이다.

인플레이션율이 이렇게 높아진 배경에는 잘못된 외환정책에 이은 일부 품목 배급제 및 식료품, 화장품 등 50여 개 품목에 가격 상한선을 설정하는 강력한 가격 통제 정책이 있다. 잘못된 경제정책 운용 탓에, 결국 베네수엘라 국회는 2013년 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경제를 제어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 밀수한 기름을 모으는 콜롬비아 상인 ⓒelpais.com

마두로 정권은 2013년 말경부터 쇼핑센터와 전자상가 등에 대규모 세일을 지시하는 등 전자제품을 반값에 판매하도록 강제했다. 이러한 표퓰리즘 정책은 2013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한 바탕이 되었다. 현재 생산을 중단하는 공장은 업주를 구속하는 생산 통제 정책도 시행 중이다.

그릇된 현실 인식

지난해 말, 생방송을 진행 중이던 베네수엘라 국영방송 앵커가 돌연 사직을 선언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사직의 변으로 담배 한 갑밖에 살 수 없는 월급을 들었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한 달에 두어 번 국경으로 가서 기름을 밀수출하는 택시운전기사가 아나운서, 변호사 등 화이트칼라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실정이다.

2015년 말 기준, 베네수엘라의 엥겔계수는 75%를 넘어섰다. 이는 버는 돈의 75% 이상을 먹는 데만 쓴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조차 과거 얘기. 지난 5월에 들어서면서 중산층조차 먹거리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으며, 쓰레기통에서 먹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 비둘기 사냥에 나서고 있다.

그뿐인가. 학생들과 교사들은 생활고 때문에 학교에 갈 수가 없다. 간다 해도 교재며 분필이 없다. 교사들 월급으로는 담배 한 갑도 제대로 살 수 없다. 공교육이 파산하고 있다. 전기가 끊겨 X선 촬영을 못하고, 암시장에 가야만 항암제를 구할 수 있으며, 엠뷸런스에 산소통이 없어 응급환자가 사망하고, 피가 엉겨 붙어 불결하기 짝이 없는 수술실에서 수술을 감행하고 있다. 의료서비스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 참상 ⓒcronicasvenezuela.com

마두로 정권이 식량 생산을 위해 전 국민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기로 했지만, 농기계는 이미 녹이 날 대로 나 있고 비료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지경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5월 30일,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가 베네수엘라 취항 중단을 선언했다. 이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자본 유출 통제로 인해 수익금을 가지고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묶어놓은 해외업체의 자산이 무려 35억 달러에 이른다. 루프트한자의 취항 중단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사태는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경제의 참담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IMF는 지난 2011년 베네수엘라 1인당 GDP를 10,238달러라고 보고했다. 2016년 현재 GDP는 4,000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하루 4시간 전력이 중단되고 있으며, 주 2일 근무제가 시행되고 있다. 세상에 주 2일 근무라니! 이러한 모든 사태에 대해, 마두로 정권이 내놓은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엘니뇨에 따른 지구온난화이고, 다른 하나는 미 제국주의의 침공이다.

베넬롬비아와 코메리카

이 글은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려고 쓰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좌파 국가들의 경제정책이 모두 그릇되었음을 지적하려는 것도 아니다. 투자위험지수 세계 2위라는 숫자, 400%가 넘은 인플레이션율에 세계 최하위 수준의 국가경쟁력 지수, 이런 현실을 초래한 원인에 대한 올바른 지적이 없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양쪽의 장점들을 두루 섭렵하고 단점은 배제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몰락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균형 재정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 요구되는 유가는 배럴 당 160달러. 고유가 시절 무분별하게 늘린 재정지출과 통제장치 없는 수입장려책, 그리고 대책 없는 식량주권의 포기가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낸 주범들이다.

▲ 침몰하는 미스 유니버스의 나라 ⓒpinterest.com

국제유가가 30-5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는 현재, 셰일가스, 수소, 전기, 바이오 등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대체에너지 개발 붐은 베네수엘라로 하여금 시급한 경제체질 개선에 나서도록 밀어 붙이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경제시스템 하에서, 타국과의 협력 없이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최소한이나마 인지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땅 밑에 넘쳐나는 원유 때문에 유증기를 수시로 빼주지 않으면 마을 한가운데에서 느닷없는 폭발이 일어나는 나라, 이런 나라에 항생제가 없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리터 당 10원짜리 석유를 사서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20원에 팔고 있다.

향후 상품, 서비스, 보안, 에너지 부문과 관련, 콜롬비아와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어쩌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가 하나로 합쳐진 ‘베넬롬비아’ 또는 ‘콜롬수엘라’라는 국가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 탄생할 국호로 베넬롬비아가 좋아 보이는가, 콜롬수엘라가 좋아 보이는가? 아참, 남의 나라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우리 코리아는 장점 단점 불문하고 무조건 받아들여 온 탓에, 아메리카와 경제로 하나가 될지도 모르는 시절을 살고 있다. 그렇게 하나 되는 나라의 이름으로 ‘코메리카’가 좋아 보이는지, ‘아메리아’가 좋아 보이는지 자문부터 해봐야 할 일이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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