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다 끝났다"고 말하지 말자...패럴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있다

지난 8월 거의 한 달간의 리우 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역시 남미 최초로 페럴림픽이 8일 새 막을 올렸다. 우리 선수들은 양궁, 수영, 육상, 보치아, 휠체어 테니스 등 11개 종목에 출전했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이번 여름과 달리 정작 지난 리우 올림픽은 별다른 열풍을 일으키지 못한 채 비교적 조용히 막을 내렸다. IOC가 7년 전 리우 데 자네이루를 올림픽 개최지로 발표했을 때만 해도 룰라는“세계는 이제 브라질의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며 열광했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물론 더 이상 올림픽이 88년도 서울 올림픽과 같이 나라팔자가 뒤바뀌는‘국위선양’의 기회도 방법도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120년 올림픽 역사에서 최초로 남미의 브라질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에 브라질리언들은 적잖은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브라질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축구, 삼바, 팔등신의 늘씬한 브라질 미녀, 브라질리언 왁싱, 이과수 폭포 혹은 커피, 포르투갈 정도인 게 올림픽을 개최했어도 별반 달라진 건 없었을 것이다.

브라질과 한국을 비교하기도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브라질은 한때 BRICS국가의 선두 주자로 세계 투자자들을 유혹하던 남미 최대 부국 후보였다. 남미 대륙 전체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세계 5위의 면적과 인구를 가지고 있고, 그 국토의 반 이상은 임산자원과 철광석으로 깔려 있으며 이과수 폭포, 코파카바나 해변의 세계적인 관광자원까지 두루 갖춘 사실 가진 게 너무 많은 나라로, 브라질은 수 십년간 경제대국으로서의 잠재력이 엄청난 국가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지지부진한 경제 발전과 민주화 30년 이후에도 정치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불만이 가득한 시민들은 이번 올림픽에도 성화를 꺼뜨리려 하거나 봉송로를 막아서기도 했다.

올림픽 기간 올림픽만큼 이슈가 된 뉴스는 대통령 탄핵과 반정부 시위였다. 신문의 경제면에선 브라질 경제는 ‘100년간의 위기’로 불리며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보이는 브라질 미래의 청사진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남미 최대 부국이 되었을 브라질의 아이러니-삼바축제를 보러 가도 마음 편하게 축제를 즐길 수 없는 이 나라의 슬픈 운명은 또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무상 교육과 의료, 1년에 1개월 휴가와 13개월 치 월급을 받는다는, 1인당 국민소득에 걸맞지 않은 선진국 수준의 포플리즘 복지정책 뒤의 이 나라 정치인들이 가장 큰 문제일까? 이를 용인하고 방조하고 부추기기까지 하는 후진적 국민의식이 더 근본적일까? 항상 롤모델로 서유럽의 가치와 사례를 모방하기 좋아하는 우리에게 남미의 브라질은 ‘나쁜 예’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의 나라, 브라질’의 저자 스테판 츠바이크의 인식은 여기서 조금 다르다. 츠바이크는 브라질을 통해 오히려 유럽의 문제점, 곧 가장 "완벽한 조직"이었던 유럽의 국가들이 그 조직을 "오로지 야만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통해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말한다. 흔히 생각하는 물질문명의 진보 즉 정책이나 복지가 인간의 안락이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 문명의 핵심은 역시 인간의 사고방식’이라고 강조한다. 브라질의 과거와 현재의 포물선을 그려볼 때 이 저자의 브라질 미래에 대한 낙관이라는 것은 거의 눈을 감은 낭만에 불과한 것으로 들린다.

한편 그는 우리가 ‘헬’이라고 부르는 이 사회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이 나라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마치 로또를 바라는 허황되지만 그래도 나에게만은 일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주문같이 '한국은 그래도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한다. 한국은 과연 그런가? ‘츠바이크의 브라질과 현재 브라질 사이의 간극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헬'이 영원한 게 아니라는 희망을 주고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간보다 삶 자체가 더 중요하다", "국가든 개인이든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평화로운 삶이 과장되고 과열된 역동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와 같은 그의 말은 굳이 브라질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비록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말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의미 있는 말이다. 모든 것을 바꾸기를 원하는 조바심과 열망 혹은 맹목적인 불신만으로는 이 사회는 결코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올림픽이 다 끝났다"고 말하지 말자. 여전히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페럴림픽에 참가 중인 선수들이 있다. 현재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도 정말 중요한 건 이상을 실현한 지상낙원의 사례가 아니라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 혹은 신념 아니면 확신이 더 필요한 지도 모른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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