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껴보는 지진 공포에 놀라서 계단을 통해 아파트를 내려갔어요. 저층이나 단독주택으로 이사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습니다."

부산 35층 아파트의 11층에 거주하는 서모(62)씨는 경북 경주에서 연이어 발생한 규모 5.1과 5.9의 지진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처럼 한반도에서 지진 관측사상 최강 규모인 5.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내진설계가 안된 건축물이 자칫 붕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건축물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의 비율이 30%대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의 우려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전국 지자체별 내진설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건축물 698만6913동 중 내진확보가 된 건축물은 47만5335동으로 6.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에 따른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도 143만9549동 중 47만5335동만 내진확보가 돼있는 것으로 나타나 내진율은 33%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내진율은 83%가 넘지만 중소규모 건축물 가운데 내진설계가 반영된 건물은 극소수로 밝혀졌다. 

전국 지자체별 내진설계 현황을 살펴보면 내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세종(50.8%), 울산(41%), 경남(40.8%)으로 집계됐다. 내진율이 가장 저조한 곳은 부산(25.8%), 대구(27.2%), 서울(27.2%)순이었다. 

전 의원은 "이번 지진을 통해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라고 할 수 없게 됐다"며 "내진설계 대상이 아닌 건축물의 내진확보를 유도하기 위해 국세와 지방세를 감면하는 등 법률안 개정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건축물 내진율도 17.27%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새누리당 김현아 의원이 국민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도 공공시설물 내진보강대책'을 보면 내진설계 기준 대상 시설물 12만7306개의 내진율은 40.93%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진이 잦은 일본(88.3%)의 절반 수준이다.

원자력시설(100%)과 댐(100%), 도시철도(79.7%) 등의 내진율은 비교적 높다. 하지만 병원(82.2%), 소방서(38.6%), 학교(22.6%) 등 공공건축물의 내진율은 20.7%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도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국민안전처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내진 보강에 총 3조251억원을 사용하고 올해부턴 5년 단위로 4단계에 걸쳐 24조원을 투입한다. 하지만 정작 지난해 사용한 예산은 1129억원으로 연평균 투자액(6050억원)의 19% 수준에 불과했다.

국내 건축물 내진설계는 1988년 건축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적용대상을 소규모 건축물까지 지속적으로 확대했고, 2008년 '지진재해대책법' 제정을 계기로 기존 시설에 대한 내진보강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진설계가 의무화된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들의 내진설계가 제대로 돼 있는지 의문이다. 원전시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원전이 6.5∼7.0 규모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지만 이번 울산 LNG발전소처럼 가동을 멈추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규모 5.1 정도 지진이면 큰 피해는 없지만 자주 일어나면 문제고, 5.5가 넘을 경우 내진 설계가 안 된 건물은 무너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지진의 발생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국내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2016년까지 지진 발생 추이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978년부터 1998년까지 21년 동안 발생한 지진 횟수는 19.2회였지만 1999년부터 2015년까지의 지진 발생 횟수는 평균 47.6회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 2013년에는 지진 발생 횟수 93회로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내 건축 상황은 지진 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규모 5.8의 지진이면 진앙지의 낡은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당장 지진 대비 착수해야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최근에 규정이 만들어진 다음에 만들어진 것은 상당히 내진 설계가 됐다고 보고 있으나 국내에는 30년, 40년 넘은 건물이 많아 우려가 크다"면서 "내진 설계는 비용이 많이 들고 작은 집을 짓더라도 건물 구조마다 내진 설계 방법이 모두 다르다"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 5월 '지진방재 개선대책'에서 내진설계 의무대상을 현행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에서 2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으로 확대했다. 

또 지진에 취약한 민간건축물의 내진보강을 유도하기 위해 재산세·취득세 감면대상을 현행 연면적 500㎡ 미만 1∼2층 건축물에서 건축 당시 내진설계 의무대상이 아닌 기존 건축물 전체로 넓혔다. 이어 건폐율·용적률도 완화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최근 '건축구조기준'을 개정해 칸막이 벽체와 유리 등 하중을 받지 않는 비구조요소에 대한 내진설계 기준도 추가했다. 이어 병원과 학교, 도서관 등 복도의 사용하중을 1㎡당 300㎏에서 400㎏으로 강화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숫자적인 규제와 정책이 오히려 행정 편의만 반영한 잘못된 정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구조적, 역학적인 것을 따져서 나눈 게 아니고 행정 편의로 했기 때문에 규정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 규정은 몇 층 이상, 몇 미터 이상만 하게 돼 있는데 10층 이상 하도록 했을때 9층은 안 해도 되는 것이냐"면서 "앞으로 모든 건물은 크든 적든 간에 내진 설계를 하도록 하고 내진 설계 전문가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일 오후 7시44분 32초에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9km 지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하고, 이후 약 50분이 지난 오후 8시 32분 54초에 남남서쪽 8km 지역에 다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해 인근 지역에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지진의 여파는 부산ㆍ울산ㆍ대구ㆍ김해 일대를 넘어 대전, 평택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은 이날 오후 경남 김해시 김해대로 시청 앞 한 건물 기둥이 어긋난 모습. 2016.09.12.(사진=고충진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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