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극복하고 첫 여성 대통령, 첫 부부 출신 대통령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지난 9일(현지시각)의 2차 TV 토론의 주요 장면을 보도하면서 제목을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라고 붙였다. 1989년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미국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거짓말로 점철되어진 부부생활에 관한 이야기이다.

BBC는 10일(현지시각)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가 악의에 가득 찬 토론을 벌이면서 서로에게 엄청난 모욕감을 안겨주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토론'이었다고 공통적인 평가를 할 만큼 90분 내내 인신공격만 난무한 진흙탕 싸움이 돼 버린 이번 2차 TV토론의 모습은 1차 토론 이후 어느 정도 예견됐다.

지난 9월 말 1차 TV 토론에서 클린턴 후보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토론 직후에 "클린턴 후보의 딸 첼시가 지켜보고 있어 빌 클린턴의 성 추문을 거론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클린턴 후보를 더 강하게 공격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TV토론 이후에도 여전히 불안한 승리를 자신하고 있는 민주당의 유력 대권 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는 이메일 스캔들 파문, 클린턴 재단과 미 국무부의 유착 의혹 등 불리한 악재들이 승세를 굳히려는 힐러리 클린턴의 아킬레스건인 것이다.

특히 공화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같은 후보를 경쟁자로 삼고 미국 주요 언론의 대놓고 몰아주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격을 고비고비 힘겹게 따돌리는 모습이 거의 안쓰러운 지경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올초 벵가지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13시간: 벵가지의 비밀전사들(13 hours: The Secret Soldiers of Benghazi)'이 미국 전역에서 개봉되었고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앙코르 재상영에 들어가기도 하며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트랜스 포머 시리즈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 감독(51)이 뱅가지 사태 영화 '13 아워즈‘를 만들었을 때 트럼프 후보는 그를 부통령으로 지명할 것이라는 우스겟소리를 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11일 일어난 뱅가지 사건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실패 사례로 꼽힌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면서 준동한 무장세력들이 미 영사관 등을 공격하는 폭동으로 번졌고 이 사건으로 당시 문화센터 신축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던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 등 미국인 4명이 사망했다. 공화당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가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안전요원을 더 보내달라는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공격하며 미 연방하원은 특별조사위원회까지 만들었다.

게다가 벵가지 사건 당일 힐러리 국무장관이 측근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숨진 스티븐스 대사의 성을 '스미스'라고 적은 것을 문제 삼아 "폭도에게 살해당한 대사 이름조차 국무장관이 몰랐다"며 비난받았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정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영화 대사 중에 "우리를 지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무것도!"같이 민감하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최대 악수로 꼽히는 이메일 스캔들은 지난 7월 5일 미국 연방 수사국(FBI)이 클린턴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함으로써 법적인 면죄부를 줬다. 이메일 스캔들은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2009년부터 4년간 국무장관으로 재직당시 국무부 관용 이메일 계정 대신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해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는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다.

FBI 조사 결과 힐러리 클린턴이 삭제한 메일에 비밀이 포함돼 있었고 자신의 집에 설치된 개인 서버 이외에도 여러 개의 개인 서버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특히 FBI가 힐러리 클린턴의 행위를 국가 안보를 위협한 '극도로 부주의한'것으로 규정함으로써 클린턴 진영을 곤혹스럽게 했다. 미 국무부도 최근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때 사용했던 '사설 이메일'에서 2012년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 테러사건과 관련한 클린턴의 당시 이메일 30여 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난 민주당 내 경선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그 놈의 이메일(damn emails)”라며 이 문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CBS에서 인터뷰 했지만 결국 ‘그 놈의 이메일 스캔들’은 클린턴이 대선 운동 내내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로 남았다.

또 다른 변수인 클린턴 재단과 미 국무부의 유착 의혹은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한 민간 이익단체 인사 154명 가운데 최소 85명 이상이 총 1억 5천600만 달러(1천750억 원)을 클린턴 재단에 기부한 사람으로 확인된 내용이 보도되며 불거졌다.

AP 통신은 클린턴재단 후원자와 클린턴의 만남 자체가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재단에 기부한 돈이 클린턴과의 만남을 위한 대가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클린턴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어느 국무부 장관처럼 업무와 관련해 도움을 받기 위해 외부 사람들을 만났으며 후원 여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부 장관의 직위를 이용해 가족 재단인 클린턴 재단을 키웠다는 세간의 의혹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도널드 후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힐러리 후보에 대한 건강 이상설은 지난 2012년 미 국무부 장관 시절에 뇌진탕을 앓고부터 제기 되었다. 20여 년 동안 오바마의 주치의를 지낸 데이비드 샤이너 박사는 CNN에 출연해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뇌진탕을 겪은 일과 관련해 신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난 9.11추모식에서 실신한 사건과 남편 빌 클린턴 후보가 인터뷰에서 단순 탈수 증상이었다고 해명하면서 과거에도 탈수 증상을 겪어 여러 차례 쓰러진 적이 있다고 발언해 건강이상설을 더욱 부추긴 셈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힐러리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악수는 바로 국민들의 피로감이다. 사는 건 나아진 게 없는데 지겹도록 너무 오래 봐 온 얼굴과 또 대면하기 싫은 클린턴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아마 가장 넘어서기 힘든 문제일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이런 악재들을 모두 극복하고 첫 여성 대통령, 첫 부부 출신 대통령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까?

2차 TV 토론의 주제는 '미국의 더 나은 미래'였다. 하지만 두 후보는 '더 나은 미래'는 안중도 없고 결국 누가 '더 나쁜 과거'를 갖고 있느냐를 놓고 서로를 비난하는 데만 온 힘을 쏟았다. 대선 후보들 간의 마지막 토론은 19일로 잡혀있다.  

@ AFP/Getty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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