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으로부터 출발하는 새판짜기의 의미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가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강진생활을 마무리하고 정계복귀 선언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16.10.20.

손학규 전대표가 지난 20일 제7공화국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강진칩거 2년 2개월 만에 다산 정약용의 정신을 계승하는 ‘강진일기-나의 목민심서’를 출간하면서 정치 복귀를 선언한 것이다. 그는 다산에게 묻고, 다산에게 답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왜 다산이었을까? 그가 들고 나온 제7공화국의 기치와 다산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는 왜 정치·경제의 새판짜기를 선언하면서 다산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했을까?

다산의 개혁과 손학규의 새판짜기

손 전 대표는 87년 체제로부터 시작한 6공화국은 그 운명을 다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0년 전 다산이 이야기 했던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아니한 데가 없다.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다”라는 말로 대신하여 오늘의 우리사회를 진단했다. 6공화국 체제는 더 이상 새로운 국가 발전 비전을 추구하고, 변화하는 세계를 감당하는데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6공화국은 87년 체제에 기반한다. 반독재 투쟁의 승리로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고, 권위주의와 일재잔재 청산, 역사왜곡, 개발독재로부터 민주적 경제 체제로의 이행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대통령 단임제를 제도화하고 권력분립과 국민주권을 정립한 최초의 헌법체계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날 이 헌법은 많은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고, 그 가치를 상실했다. 무엇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헌법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공권력의 반 헌법적 행위가 일상화되었고, 민주주의의 역행이 세계화의 야만적 경쟁 속에 정당화되었다.

그 와중에 정치세력들은 국가 공동체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였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이들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과잉정치로 국민들의 정치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또한 87년이 양산한 이데올로기 과잉으로 사회는 분열을 넘어서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와 있다. 정치·경제적 통치 체제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떠밀려가면서 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 경제적 위기에 대한 아무 해결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욱이 제4차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시대사적 대 격변 앞에서 우리사회는 무기력과 무능으로 갈 바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마치 다산이 시대적 변화를 예고하면서 고민하고 걱정하던 당 시대와도 유사한 상황이다.

다산이 활동하던 18세기는 서구에서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이 꽃 피고 있었고, 한반도에서는 봉건제도가 붕괴하기 시작하던 시기로 정치 및 경제체제의 모순이 격화되면서 새로운 사회발전 방향이 요구되던 시기다. 이 속에서 다산은 실용주의, 민주·민권 사상의 맹아가 싹 트고 혁명적 사회 개혁을 강조했다. “백성들이 목(牧)을 위해서 태어난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목(牧)이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원목 중에서).” 또한 그의 애민(愛民), 위민(爲民), 균민(均民) 사상은 봉건왕조사회를 뒤집는 혁명적 사상이다.

손학규 대표의 ‘제7공화국’은 이러한 차원에서 국가적 프레임의 완전한 새판짜기에 대한 열망이 담겨져 있다. 그는 지금 고통스러워도 정치와 경제 페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판짜기를 위해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새집짓기와 새단장하기

안철수 의원이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개헌론자의 지향점은 분권이다. 양당에 극도로 유리한 선거제도는 그대로 놔두고 개헌하자는 건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거다. 선거제도 합의에 성공해야 그 다음 단계인 개헌도 논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더 쉬운 일 부터 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물론 일정부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안의원의 문제의식은 국민이 빠져있는 정치공학의 틀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손 전 대표가 이야기하는 개헌이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눠먹기 위함이나 단순히 집권을 위한 목적이라면, 6공화국의 종말이나, 자신을 던지고 새판짜기를 하겠다는 공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개헌은 민주적 국가체계의 새로운 터를 다지는 행위다. 헌법체계가 새로이 정립된 후에야 선거법도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 그러므로 손 전 대표는 집터를 새로 다져서 새집을 짓고 나서 단장하자는 의견이라면, 안의원은 집을 단장하고 나서 집을 고치자는 의견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무너진 국가체계를 바로잡고, 새로운 국가 비전 패러다임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역량을 갖춘 민주 정부가 최소한 10년은 국가를 운영해야 할 것이다. 손 전 대표가 주장하는 개헌은 단순히 대통령을 뽑는 원 포인트 개헌이 아니다. 6공화국의 총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통치구조의 개혁, 국민 기본권, 사회권, 정치권 등을 강화함으로써 국민주권을 보다 현실적으로 개혁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손 전 대표는 6공화국의 대통령은 자신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손 전 대표의 역사적 사명은 6공화국의 마지막 지도자로서 과거 역사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비전을 넘겨주는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구시대를 마감하는 그의 마지막 역할은 새판의 기초를 다지는 일일 것이다. 제7공화국의 문을 여는 역할, 그것이 손 전 대표에게 맡겨진 역사적 사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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