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乙들의 한비韓非동행同行”의 공저자 김효태

                               
돌직구뉴스에 처음으로 칼럼을 송고하게 되면서 필자는 첫 글의 내용을 놓고 고민을 했었다. 그러던 중에 고민의 방향이 다소 엉뚱한 상상의 공간으로 가게 됐다. ‘첫 칼럼을 단편 소설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필자의 굳어있는 머리를 최대한 굴려가며 소설 같은 얘기의 시놉시스를 그려나가 보았다.

대부분의 소설은 그 시작을 현실의 이야기나 혹은 과거에 특정한 사실을 토대로 진행된다. 필자의 이번 칼럼 내용인 ‘소설 같은 이야기’도 역시 현재와 과거의 내용을 토대로 시작된다. 이야기 시작은 최근 8~9년 동안에 있었던 우리나라 시국상황의 흐름을 전제로 했다.

필자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기 전에 나오는 현실 부분의 서막이다.

《MB정부 때부터 보수진영은 정치적 사건과 이슈를 극단화된 이념구도가 되도록 프레임을 구축해 놓았다. 과거에는 시위문화가 다소 과격한 방식이었지만 점차 ‘촛불집회’ 스타일로 변하면서 평화적이면서도 질서를 지키는 새로운 시위문화로 정착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은 시위대를 자극하고 그와 함께 폭력적인 강경진압을 시도한다.

공권력이 폭력시위를 유도하였고, 더불어 지능적이면서도 강력해진 진압방식 때문에 시위대 중에 극히 일부가 다소 폭력적인 시위를 하게 된다. 보수 언론은 이를 놓치지 않고 ‘이념 단체에 의한 과격한 시위’라며 부정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최대한 부각한다. 그러면서 소규모이지만 여러 종류의 보수 성향 단체로 평화시위에 맞불을 놓는다.

보수 단체의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지만 보수 언론에 할애된 분량과 편집은 실제보다 거대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찌되었든 보수 언론은 ‘소수의 진보 단체와 다수의 일반 시민’이 함께한 거리의 시위를 이념문제화 하며 이를 보는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아주 충분하게 전달해 준다. 그리고 얼마 가지 못해서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항의는 무력화 된다.

정부 권력과 보수 언론 및 보이지 않는 기득권 세력은 이렇게 준비된 프로세스를 통해 국민적 분노를 이념문제로 변질시켜서 ‘프레임’화에 성공한다. 그리고 무능한 야당은 이러한 프레임에 어김없이 빠져들며 정부여당과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득권 세력에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 세월호 사건, 교과서 국정화, 성완종 게이트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야기는 이제 현재에 도달했다. 박근혜-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유념하고 있어야 할 점이 있는데, ‘박근혜-게이트는 보수진영의 본류인 종편에서 주도하여 터진 정권차원의 스캔들’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벌어진 청와대와 조선일보 간의 갈등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그러므로 박근혜-게이트는 보수 진영 안에서 벌어진 새로운 주도권 게임인 것이다.》

여기까지가 서막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필자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임기 후반에 접어든 현재 정권. 그리고 거대한 언론 권력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기득권을 좌지우지하는 세력. 이 두 세력은 현재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제 정리를 할 때’임을 서로 공감한다. 피차 펀치를 한 방씩 나누어 날렸으니 이 쯤 해서 그만하고 다음 권력을 위한 암묵적 합의와 이해관계를 정리해야만 한다.

박근혜-게이트에 대해서 너나할 것 없이 경마식 보도를 날린 덕인지, 보수 언론을 포함한 숨어있는 거대한 기득권 세력의 본류가 한계 목표로 삼았던 우병우 전 수석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까지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같은 편이기도 한 현재의 권력을 더 이상 흔들어대면 차후에 매우 골치 아픈 상황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이미 광장에는 백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대통령 하야’를 외친다. 이대로 가면 보수 기득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게 된다. 목표였던 현 정부의 일부 실세들도 정리했으며 껍데기만 남은 청와대이니 힘도 떨어졌고 명분도 잃었다. 보수 진영 본류와 숨어있는 거대한 기득권 세력 입장에서는 다시 힘을 회복했으니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동안 단련해 놓은 소규모의 여러 보수 단체로 맞불시위를 서서히 띄운다. 불과 십여 명의 보수 단체 시위는 훌륭한 카메라 기술을 통해 꽉 채운 다수로 포장되며, 백만 명의 일반시민은 숫자 10으로 나누어서 십만 명 정도의 인파로 축소한다. 그러면서 이념단체의 선동으로 색을 입혀놓고 ‘쟤네들 또 그런다’라는 인식을 주며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다시 선사한다.

그리고 여태 껏 그래왔던 대로 또 다른 연출도 진행한다. 자제했던 강경진압을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폭력적 행동은 시위대에서 먼저 시작하도록 유도한다. 만약 시위대가 유도에 말려들지 않으면 공권력이 먼저 해도 상관없다. 메이저 언론의 대부분을 차지한 보수 언론을 통해 시위대가 먼저 했다고 크고 강하게 주장하면 된다. 어차피 빅 스피커는 그들 손 안에 있다.

이를 빌미로 폭력시위, 이념시위로 여론을 몰아가며 시민저항을 무력화 시킨다. 여당 대표는 보수 진영 본류의 힘을 인정한 대가로 꿋꿋이 자리를 지켜낸다. 그리고 숨어있는 거대한 기득권의 영향력에 협조하며 정권의 남아있는 임기를 유지하는데 이바지 역할을 해낸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반대 진영에 구축되어 있는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의 상황을 보자.

진보 및 야권 내에서 기득권을 차지한 세력은 대통령 퇴진에 대해서 계속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며 보수 진영이 마련한 일련의 프로세스에 암묵적 동의나 다름없는 침묵을 유지해 준다. 이들은 지금 상태라면 최소한 야권 내에 기득권만큼은 여전이 유지할 수 있으며, 잘만 하면 정권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의 완결판인 것이다.

분노해 있는 국민들은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앞선 얘기대로 흘러가면서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점차 가라앉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는 마치 대기해(준비돼)있었다는 듯이 ‘새로운 방식의 북풍이나, 야권이 연루된 스캔들 혹은 (유병언 사망소식 급으로)국민적 관심을 한 번에 몰아넣을 수 있는 엄청난 빅 이슈’ 하나가 나타나면서 일련의 상황이 종료돼간다.

이쯤 되면 박근혜-게이트는 6공화국 체제에서 으레 한 번 나오는 정권말기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된다. 보수 진영과 야권에 있는 각각의 기득권 세력은 상호 기득권에는 간섭하지 않고 기존 영향력을 큰 무리 없이 계속 유지한다. 이렇게 되면서 다음 권력은 누가 되든지 간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득권 세력 본류가 여전이 세상을 움직이며 소설의 내용이 끝난다.》

필자의 상상력에 의한 소설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도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한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든다. 명절 때 귀향길 도로의 막힘을 보도하는 방송순서가 우리 기억에 저장돼있듯이 보수 진영 본류가 즐겨서 사용하는 프레임의 흐름을 필자가 다시 각색해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필자의 소설일 뿐이다. 그런데 왠지 갑자기 슬퍼진다.


"한비"와 같은 이상주의자는 '한비자' 같은 훌륭한 책을 만들었지만
그 책으로 인해 자신의 명을 단축하였고,
"이사"와 "영정(시황제)" 같은 현실주의자는 '한비자'를 보고
천하통일을 이루고 자신들의 제국을 만들었다.

"선거 기획과 실행"의 저자 칼럼리스트 김 효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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