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불평등 공화국 中

<사진=뉴시스>제 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당선.

트럼프 당선이 결코 아니다. 기득권의 화신인 힐러리 낙선이요 오바마 경제실정 8년에 대한 심판이다. 아무리 낙수효과를 부인해도 경제성장이 멈춰버리면 가장 먼저 타격받는 건 근로자와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민들이다. 정리해고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줄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아버린다. 결국 그 책임은 정부를 맡고 있는 집권여당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마련이다.

우리 한국의 경우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의 단초를 제공한 건 IMF구제금융 위기였다. 1995년 1인당 GNP 1만 달러를 넘어선 문민정부는 무리하게 OECD에 가입하는 등 세계화를 추진하고 高환율정책을 고수한 것이 발단이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 7.4%와 실업률 3.1%라는 비교적 高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경제는 구제금융 발표 겨우 한 달 만에 3000개 이상의 기업이 줄도산을 맞았으며 실업률도 4.5%로 급등한다. 1998년 마이너스 5.7%까지 추락한 성장률은 역설적으로 김대중 前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었다.

미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통적으로 경기가 안정되면 여당이 재집권하고 불황이면 정권이 교체되는 경향이 강했다. 감세정책을 내세운 2차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연평균 GDP 실질성장률(3.5%)을 유지했으며 최고 9.7%에 달하던 실업률도 5.5%로 낮추며 본인의 재선과 정권재창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조지 부시는 불과 4년 만에 연방 재정적자를 950억 달러까지 새로 불리며 전임자가 8년 동안 남긴 규모(1340억 달러)에 근접해버렸다. 연평균 성장률 또한 겨우 2.3%에 머물렀고 실업률도 다시 7.5%까지 급등했다. ‘경제 대통령’ 전략을 구사한 빌 클린턴은 그 유명한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구호를 내세웠고 마침내 12년 공화당 정권을 종식시켰다.

부시 2세는 집권 1기 성장률이 연평균 2.4%에 재선 도전 당시는 21세기 최고 기록인 3.8%였다. 그런데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불러온 2008년에는 마이너스 성장(-0.3%)이라는 불명예까지 남겼다. 결국 정권은 빼앗겼고 최초의 아프리카계 대통령 탄생으로 이어졌다.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까지 실질성장률 연평균 2.2%를 기록했다. 이번 대선 직전 발표된 금년 3분기 성장률도 2.9%로 힐러리 당선에 청신호가 켜졌다. 게다가 2009년 4분기 한때 9.9%까지 치솟았던 실업률도 금년 1분기에 들어서자 4.9%로 하락한 후 3분기째 5% 미만을 유지한 채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치를 유지했다. 이는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4분기 실업률과 엇비슷한 수준(4.8%)이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 ‘더 엑스파일’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미국이 빈부격차의 상징국가처럼 낙인찍힌 건 엄청나게 불어나 있는 저임금근로자들 때문이다. 2015년 현재 중위임금(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금액 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한 가운데에 있는 임금) 3분의 2 미만인 저임금근로자 비중은 OECD 34개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25%로 우리 한국(23.5%)과 1, 2위를 다툰다. 숫자로는 무려 3597만명이다. 오바마 취임 첫 해에 3340만명(24.8%)으로 출발했으니 그 사이 257만명이 늘었다. 바로 이 지점이 오바마 경제의 겉과 속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며 힐러리가 패배한 첫 번째 배경이다.

오바마 집권 이후 중위임금 주급은 풀타임 근로자의 경우 평균 87달러, 파트타임은 27달러가 올랐다. 그렇지만 인플레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조정하면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다. 전체 근로자들은 지난 7년 사이 풀타임은 9달러, 파트타임은 3달러 인상됐다. 남성근로자 중 인종별로 살펴보면 그나마 아시아계는 각각 57달러와 22달러(풀타임 및 파트타임 순, 이하 같음)가 올랐는데 그 숫자가 가장 많은 백인 남성(41.4%)은 겨우 6달러와 12달러 오르는데 그쳤다. 이는 비중(9.5%)은 작으면서도 저임금 공세를 펼치는 히스패닉 남성 근로자들 때문이다.
 


제 아무리 실업률을 5% 미만으로 유지해도 인구 3억명이 넘는 미국의 절대 실업자 수는 오바마 집권 7년 동안 연평균 1200만명에 달했다. 그중 무려 41%에 이르는 495만명이 백인 남자들이다. 연방 노동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시간급을 받는 근로 빈곤층은 무려 1045만명(7%)나 된다. 이중 70%인 728만명이 백인들이다. 4인 가구 기준으로 연간 2만 3834 달러(약 2516만원)를 벌어들이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오바마 집권 7년 사이 백인 남성 일자리는 790만개가 줄었으나 히스패닉 여성 일자리는 480만개가 늘었다. 결국 이 ‘화이트 맨(Angry White Man)’이 민주당 정권에 ‘분노(Angry)’한 두 번째 이유이다. 이를 집요하게 파고든 트럼프는 불법이민 철폐, 멕시코 국경 장벽설치 등 무리한 공약들을 거침없이 내걸었고 고졸 이하 백인 남성표를 싹쓸이했다.

오바마는 재임 7년 기간 중 근로 빈곤층을 연평균 1047만명(7.1%)에서 전혀 줄이지 못했다. 이 역시 전임자들인 빌 클린턴(5.7%)과 부시 2세(5.3%)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준이다. 연방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근로자 숫자도 부시 2세는 연평균 197만명, 오바마는 345만명으로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백인이 163만명에서 268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한편 고용노동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근로자의 지난해 6월 기준 월평균 임금은 274만원이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8년 동안 25.8%가 오른 금액이지만 실질 GDP성장률을 감안하면 고작 6만 4000원 인상에 그친 것이다. 627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118만원에서 137만 2000원으로 올라서 사실상 7만 8000원이 뒷걸음쳤다.

결국 근로자 숫자 하위 10%의 평균연봉은 2007년 1160만원에서 2014년 966만원으로 깎였고, 숫자 상위 10%는 9536만원에서 1억 590만원으로 증가해 10분위 임금배율(임금 하위 10% 대비 상위 10%의 비율)은 단연 OECD 챔피언(10.96배)을 유지하며 2위 그룹인 미국(5.22배)과 이스라엘(4.91배)을 크게 앞질렀다.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살펴보면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가파르게 상승해 2016년 현재 280만명(14.6%)에 달한다. 저임금근로자 비중도 이명박 정부(24.6%)와 박근혜 정부(24%) 모두 연평균 24%대로 미국 못지않은 주된 빈부격차 연구대상 국가이다.

OECD 자료를 들여다보면, 전반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하락 추세에 있다. 지난해 한국은 10.2%이고 미국도 11.1%도 불과하다. 특히 민간 부문은 6.7%, 파트타임은 5.9% 수준이다. 그러므로 노조 소속 근로자의 중위임금 주급 평균이 26%나 더 높은 까닭은 강력한 교섭력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니 음식점 주방, 패스트푸드 판매직, 가정간병인 등 無노조 파트타임 종사자들은 12시간씩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형편없는 주급 또는 시간당 임금에 만족해야 한다. 우리 한국도 음식·숙박업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월평균 81만원을 받고 있지만 고용부의 근로감독이 전혀 미치지 않고 있다.

미국 민주당 기득권층은 힐러리를 선택하며 처음부터 저학력 백인 공략을 포기했다. 이는 대선 핵심 쟁점인 경제 불평등문제를 소홀히 다룬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사회는 아직도 유권자의 70% 가까이가 백인으로 백악관 주인의 향배를 결정짓는다. 하지만 그들은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으로부터 추락해 분노한 서민이 많고 멕시코 국경을 넘어온 히스패닉 때문에 실업자와 빈곤층, 저임금근로자 군을 다양하게 형성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을 보더라도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고 있진 않지만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정규직 등 서민이 절대 다수이다. 곧 그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 정치를 교체할 날이 멀지 않았다.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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