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올랑드와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

지난 1일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이 내년 대선 도전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5월 당시 17년 만의 좌파 출신 대통령 당선으로 관심을 모았던 그가 무제한 연임이 보장되는 대통령직을 포기한 것은 충격이다.

올랑드는 1958년 성립된 제5공화국 이래 가장 낮은 국정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TNS, BVA, IFOP, Ipsos, Opinion Way 등 프랑스 주요 5대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실시한 지지율 평균은 16.6%이다. 이전에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인 건 역시 같은 사회당 소속인 미테랑으로 1991년 12월 당시 평균 22%였다.

올랑드는 국가 기밀을 누설하는 내용이 담긴 대담집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 되는데」를 출간했다가 지난달 7일 제1야당인 공화당 주도로 탄핵안이 발의됐다. 여대야소 상황이어서 다행히 부결은 됐지만 국정지지율은 4%까지 추락했다. 일간지 르몽드가 세비포프에 의뢰해 10월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랑드 지지율은 4%까지 폭락했다. 일간 데일리메일도 그를 ‘미스터 4%’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일반적 예상과 달리 OECD 35개 나라에서 사회복지비(Social spending) 지출 비중 최고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3개 복지국가가 아니다. 최근 5년간 이들 나라는 사회복지비 지출이 GDP 대비 26.6%로 매우 높았다. 이는 OECD 평균(21%)보다 5% 이상 많고 우리 한국(9.7%)의 3배 가까이 된다.

그런데 프랑스는 북유럽 3개 복지국가보다 또 5%가량 더 높아서 무려 31.5%에 이른다. 경쟁국인 독일(24.9%)이나 영국(21.8%)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올랑드 대통령의 인기가 본격적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2014년 한때는 31.9%까지 치솟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프랑스 헌법 제1조 제①항을 보면 ‘프랑스는 분할될 수 없고(indivisible) 종교에 의해 통치되지 않으며 민주적 사회적(social) 공화국이다.’라고 시작된다. ‘사회적(social) 공화국’이라는 아주 낯선 표현은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들다.

사회당 출신 미테랑 대통령은 1981년 집권 당시 사회복지비 비중이 21.3%에서 시작했으나 1995년 28.3%까지 늘어난다. 미테랑은 1983년 당시 65세 정년을 60세로 무려 5년이나 하향 조정했다. 1988년에는 실업자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최저생활급여 지급제도를 도입했다. 이것이 주된 까닭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28% 전후를 유지했으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사르코지 정부도 평균 30% 미만이었다. 하지만 17년 만에 등장한 좌파 대통령 올랑드는 의회까지 장악하며 각종 좌파정책들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사회적(Social) 전통이 뿌리 깊은 프랑스에서 복지개혁 요구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시기는 1970년대다. 소득 재분배로 빈곤 문제를 근절할 수 있다는 낙관적 사회 분위기가 석유 파동과 불황을 겪으면서 변했다. 인구 고령화로 재정이 복지 부담을 견디지 못한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청년실업까지 겹치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프랑스는 2011년 기준 연금지출이 GDP 대비 13.8%로 세계 3위다. 국가파산 지경까지 겪은 이태리(15.8%)와 그리스(14.5%)에 이어 3위다. OECD 평균은 7.9%이다. 1995년 고용우선 정책을 내건 우파 대통령 시라크가 당선되며 연금개혁안을 추진했으나 대규모 파업을 견디지 못했고 오락가락했다. 쉬운 해고를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은 백지화됐다.

2007년 취임한 사르코지는 경제난과 평균 수명 증가에 따른 연금 적자 누적을 이류로 뚝심 있게 ‘피용법’을 밀어붙여 2010년 기어이 정년을 62세로 다시 상향 조정시켰다. 올랑드는 정년 60세 환원을 공약했으나 늘어나는 재정적자 때문에 일부만 적용했을 뿐 오히려 보험료는 ‘더 오래 더 많이 내는’ 방향으로 개혁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프랑스가 20여 년이 지나서야 정년을 다시 2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사르코지 정부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간신히 가능했다. 그렇지만 인기 없는 정책을 편 사르코지는 재선에 실패했다.

한편 프랑스 제1야당인 공화당(옛 대중운동연합) 대통령후보 결선투표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27일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피용 前총리가 예상대로 66.5% 득표율을 얻어 싱거운 승리를 거뒀다. 1차 투표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한 그를 두고 우리 한국 언론은 사르코지 前대통령보다 강경한 극우파라든가 혹은 대처주의자라는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과연 사실일까?

35년 정치경력에 빛나는 피용은 1993년 미테랑 대통령-발라뒤르 총리 동거정부 시절 고등교육·연구장관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총 5회의 장관직을 수행했다. 2002년 시라크 前대통령 때는 사회복지·노동·연대장관을 맡아 연금개혁을 추진했고 2004년에는 국가·교육·고등교육·연구부관으로 옮겨 대학입시 개혁을 주도했다. 2005년 국민투표가 부결되며 장관직을 경질 당하자 사르코지 캠프에 합류해 공공개혁을 추진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사르코지 前대통령 당선 후에는 5년(2007~12년) 내내 총리를 역임하는 등 상당한 능력자다.

2006년 프랑스 정부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정부가 예산을 50% 이상 지원하는 병원, 학교 등) 종사자 인건비로만 무려 44%를 지출한다. 같은 해 현재 프랑스 공무원 숫자는 약 520만명, 공공부문을 합하면 635만명, 거기에 공공서비스(각종 협회, 간병서비스 등등) 종사자까지 약 716만명을 상회했다. 이는 전체 취업자의 약 3분의 1이다. 즉 셋 중 한 명이 공무원 혹은 공공서비스에 종사해 봉급을 받는다는 얘기다. 나머지 3분의 2가 내는 세금으로 이들과 실업자, 그리고 근로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을 부양해야 했으니 참으로 미래가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2007년 4월 대선에서 공공부문 축소와 재정개혁 등을 공약으로 내건 사르코지(대중운동연합, 현 공화당)가 당선됐다. 사르코지는 취임 직후 피용을 총리로 하는 개혁내각을 출범시킨다. 사르코지-피용 콤비는 정년에 이른 공무원을 절반만 충원하는 방식으로 무려 20만명의 공무원을 감축하는 등 공공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하여 연간 8억 5천만유로 이상의 예산을 절감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공공부문 지출을 연평균 54.87%까지 떨어뜨렸고 GDP 실질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에 따른 2009년 마이너스를 제외하면 연평균 1.74%를 찍었다.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실업률과 청년실업률 또한 각각 8.23%와 20.94%로 다소나마 낮췄다.

그런데 연금지급시기 60세 환원 등 포퓰리즘 공약 등을 내걸며 2012년 집권한 좌파 올랑드 정부는 일자리 확대정책으로 공무원만 무려 60만명이나 늘림으로써 사르코지 정부 초보다 오히려 40만명이 늘어난 560만명이 돼버렸다. 취업자의 20.6%가 공무원인 나라, 이게 지난해 말 현재 프랑스의 현실이다. 그 결과는 또 다시 공공부문 연평균 지출이 GDP대비 57.08%로 2.2%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유례없이 높은 수치이다.

올랑드 경제는 결국 파탄을 맞았으니 GDP실질성장률은 연평균 0.66%, 실업률은 9.9%(최근 2년 동안은 10%대), 그리고 청년실업률도 연평균 24.2%까지 급증했다.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75% 부유세 도입까지 밀어붙인 올랑드는 공공부채가 오히려 2012년보다 크게 늘었다. 프랑스 공공부채(중앙정부, 지방정부, 비영리공공기관, 비금융공기업 포함)는 현재 106%로 파산위기에 몰린 이태리(132%)에 근접하고 있다. 올랑드 집권 첫해인 2012년 90%로 출발했으니 그 사이 재정적자가 얼마나 급증했는지 쉽게 알 수가 있다.

피용이 총리로 재직하면서 연금 수급연령을 62세로 간신히 2세 늘렸던 피용법을 무력화시키고 원위치한 것이 대표적인 공공부채 증가의 원인이다. 지금도 만성 연금적자 때문에 유럽연합이 재정수지 적자규모를 GDP대비 연간 3%이내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서 공무원(공공부문) 연금 챙겨주기에만 눈이 어둡다. 프랑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사르코지 시절 7〜7.5%에서 5% 전후로 많이 떨어뜨려놓았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내년 4월에 치러진다. 이변이 없는 한 공화당 소속 피용과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르펜 간 대결로 압축될 전망이다. 물론 5월 7일로 못 박혀있는 결선투표에서 전통의 공화당 소속 피용이 손쉽게 승리할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사회당은 누가 나와도 1차 투표에서 저조한 득표율로 사실상 탈락 확정이다.

흔히 프랑스를 분권형 대통령제, 즉 이원집정부제의 전형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다. 대통령과 총리(내각)의 소속 정당이 달라 동거정부가 탄생할 때만 의미 있는 이원집정부제가 탄생할 뿐이다. 대통령과 총리(의회 다수당)가 서로 권력을 분점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대통령 독주도, 총리 독주도 견제할 수 있다. 동거정부가 아닐 경우엔 우리나라 대통령제 이상으로 제왕적 대통령이 등장한다.

올랑드 대통령은 재선 도전을 포기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특별한 부패스캔들은 없었지만 인기도 면에서는 우리의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없었다. 그는 집권 2년도 채 되기 전인 2014년 1월 이미 지지율 20% 미만(TNS·18%)을 찍은 현직 대통령 신기록을 세웠다.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그가 내걸었던 각종 공약을 백지화한 것이 결정적이다.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선공약이라는 이유로 75% 부유세 도입까지 밀어붙였다가 만 2년 만에 후퇴했다. 부유세는 2013~14년 2년 동안 시행됐으나 세입의 1% 정도밖에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대상기업만 외국으로 달아나버려 오히려 일자리가 감소했다. 이처럼 공약이행을 두고 오락가락한 그에 대해 전통적 사회당 지지자들의 외면은 당연했다.

올랑드가 이렇게까지 추락한 건 결코 그의 '인격'이나 '철학' 때문이 아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대통령도 하원(의석 점유율 57.4%)도 사회당이 장악한 지난 4년 7개월, 프랑스는 브레이크 없는 사회당 정책의 실험장이었다. 그런데 각종 데이터로 나타난 결과는 정말 참혹하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2009년 한때 마이너스 성장(-2.94%)까지 기록한 사르코지 정부의 연평균 성장률이 0.8%였는데, 올랑드 정부는 그보다 더 못해서 0.66%다. 2015년 청년실업률은 G7 국가 가운데 얼굴을 내밀 수 없는 24.7%다. 사회당은 이제 올랑드 대신 발스 총리와 몽트부르 前경제장관이 내년 1월 경선 준비를 하고 있으나 결선 투표에도 진출하지 못하고 1차 투표에서 망신 수준의 득표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국가시스템의 잘못은 없고 사회당과 올랑드만의 잘못인가?

<사진=뉴시스>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2016.11.29

대한민국 역시 내년이면 19대 대통령이 선출된다. 현재는 여론조사 상 지난 총선 당시 35만명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 소속 문재인 前대표가 가장 앞서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GDP 대비 공공부문 지출은 48.8%라고 한다. 여기에 민간은행, 사립학교 등 공적서비스 지출을 합하면 50% 전후에 이를 것이다. 세계적으로 공공부문 지출이 45% 이상 되면서 사회복지비 지출이 형편없는 나라는 반드시 경제난을 겪는다. 최근 그리스, 이태리, 베네수엘라 등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구호로 내걸고 출범했지만 박근혜 정부도 공무원 정원만 3만 4000명이나 늘렸다. 공공기관까지 합하면 약 6만 5000명가량이 늘었다. 2017년 국회 예산심사과정에서는 박근혜 탄핵정국을 틈 타 교사, 군 부사관 등 1만명 이상을 증원하기 위한 목적예비비 500억원까지 반영했다. 여기에 민주당 공약대로 향후 35만명의 공공부문 일자리가 늘어나면 210만명 이상이 공무원 또는 공공기관 직원이 된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우리 국민은 매년 세금으로 35조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면 이는 취업한 정규직의 무려 16.1% 이상이 되는 것이다. 

임기단축을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은 부패 문제로 불과 두 달 사이에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덩달아 그의 소속 정당도 재집권 전망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나라경제까지 송두리째 거덜 내지는 않았다.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다.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돌직구뉴스>후원회원으로 동참해 주십시오. 눈치보지 않고 할 말 하는 대안언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당한 언론! 바른 말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겠습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