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

▲김기춘 전 비서실장 <사진제공=뉴시스>

대법원으로부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쓴 현직 판사를 ‘비위 법관’으로 규정, 직무배제 방안을 강구한 사람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이 판사는 대법원에서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의 김동진 부장판사는 2014년 9월 12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에서 피고인 원세훈 전 원장이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을 받은 데 대해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 판결은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규정한 뒤 "국정원이 2012년 당시 대통령 선거에 대하여 불법적인 개입 행위를 했던 점들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다”면서 “그럼에도 이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담당 재판부만 ‘선거 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일 뒤인 9월 22일,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라고 김기춘 전 실장을 뜻하는 ‘長’이라는 표시와 함께 메모가 쓰여 있었다.

김기춘 전 실장의 직무배제언급 나흘 뒤인 9월 26일에는 수원지법에서 김 부장판사가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다. 그때 당시 수원지법원장이던 성낙송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판사가 서로 판결에 대해 상호 노골적으로 비판했을 때 판결에 대해 심각한 신뢰 저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정치적 고려를 하거나 외부와 상의하거나 연락한 바는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징계청구 이후 그해 12월 3일 김 부장판사는 법관윤리 강령 위반으로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정직 2개월 처분은 과거 법관 징계 사례와 비교해 봤을 때 처벌 강도가 높다고 전했다. 한 판사는 “실제 정직 처분이 나온 걸 보면, ‘직무배제’라는 의견이 대법원에 흘러들어가 영향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은 김 판사 징계에 청와대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징계위 표결 전에 징계위 회부 사실이 알려져 청와대에서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판사들이 참여하는 법관 징계에 청와대의 영향력이 미쳤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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