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개 촛불을 유권자 참여운동으로 발전시켜야

6주 연속 진행된 촛불집회 참가인원이 주최 측 추산으로 641만 명, 경찰은 135만 명으로 집계했다. 서울만 5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이미 1987년 6월 항쟁을 넘어서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다. 탄핵소추안 의결이 예정된 오늘까지 이번 주도 매일 저녁 촛불은 활활 타올라 70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사진=뉴시스>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제6차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2016.12.03.

6월 항쟁은 직격 최루탄에 희생된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 이외에도 시민들과 경찰 부상자가 800 명을 상회할 만큼 격렬했다. 하지만 11월 시민혁명으로 불리는 이번 촛불은 단 한 명의 부상자와 단 한 명의 연행자도 없는 평화집회로 세계인이 놀라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시민이 여섯 차례에 걸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데는 박 대통령 탓만은 아니다. 정치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번 촛불 국면에서 정치인들은 수시로 말을 바꿔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유력 대선 주자는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했다가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에게 내각 통할권과 구성권을 보장하자 이를 거두어들였다. 공개 일정으로 확정된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 영수회담도 하루아침에 무효가 되었다. 이런 정치인들을 믿지 못한 국민이 직접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응징 방식을 선택하기 위해 더 많은 촛불을 든 것이다.

빗나간 어느 골수 진박의원의 표현처럼 바람이 불어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 탄핵이 마무리되면 국민들은 촛불을 끄고 하나 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700만개 촛불의 에너지를 여기서 멈추게 할 것인가?

19대 국회는 의원들이 1만 6천 729건의 법률안을 발의해 역대 최고 건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원안 또는 수정안 가결이 겨우 2천 414건(14.4%)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대부분(59.2%)이 국회 회기 종료로 폐기되었다. 그나마 최루탄과 해머까지 등장했던 18대 국회보다는 나아졌다.

18대는 총 1만 2천 220건의 법안을 의원들이 발의해 그 중 겨우 13.6%인 1천 663건만을 원안 또는 수정안 가결시켰다. 18대는 위원회의 대안반영으로 폐기된 법안도 3천 227건으로 무려 26.4%나 됐다. 이는 의원들의 무분별한 입법발의가 한 원인이다. 각종 시민단체, 언론사 등 수많은 단체에서 의원들에 대한 평가가 남발되면서 득점이 손쉬운 입법발의에 눈을 돌린 탓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은 15대 국회부터 매년 270여개 NGO 단체와 함께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국정감사 실적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고 시상도 해오고 있다. 주로 회의 출석률, 법안 발의와 통과성적, 법안표결 참여율 등 총 13개 항목에 걸쳐서 이를 점수로 계량화한다.

그러나 이 평가는 기본적으로 정량평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한선이 각각 20점인 공동발의법안(개당 0.5점)과 대표발의법안(개당 4점) 통과점수는 만점을 채우면 곧바로 40점이다. 여기에 웬만한 출석률 정도 보이면 우수의원 상은 식은 죽 먹기다.

지난 4·13 총선 직전 법률소비자연맹은 19대 국회 4년간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면서 우수의원 75명을 남발했다. 그런데 이중 무려 15명이 총선 과정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경선에서 탈락했다. 얼마나 엉터리 평가임을 입증하는 데이터인가?

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은 과연 어떨까? 미국 하원은 정원이 435명으로 쟁점법안에 대한 신속처리를 위해 롤 콜(Roll Call) 제도를 활용한다. 우리말로 호명투표 또는 공개투표라고 해석되는데 소관위원회에서 일부 의원이라도 찬반이 분명한 경우 의장이 미리 찬반투표 또는 토론을 진행하기 위한 의안목록으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롤콜 방식은 의장이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묻고, 그 사안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기 때문에 최소한 3~4시간 이상 걸리며 오후 늦게 전체의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다.

지난 2007년 7월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명백한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사회 속에 약 2시간 10분 동안 열띤 토론을 거쳐서 통과됐는데 바로 이 롤 콜 방식이었다.

1955년 의원 보좌관 출신인 시드 유다인(Sid Yudain)은 ‘롤 콜’을 국회 의사당 커뮤니티 신문으로 창설하여 정치전문지로 발전시켜올 만큼 미국 전역에선 대중화되어 있다. 2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하원의원 선거 때면 각 선거구 서점과 문구점에서 1~2달러에 판매되는 ‘롤 콜' 리스트에는 해당 지역구 의원의 지난 2년간 의안 표결현황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사진=뉴시스>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시민단체 등 촛불집회 참가자가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2016.12.08.

우리나라도 지난 16대 총선 때 400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낙천 낙선운동을 벌이며 본격적인 유권자참여가 시작됐으나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700만개 촛불이 활활 타오른 지금, 20대 국회의원의 임기 개시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질적 발전도 가능하다. 한국판 ‘롤 콜’이면 정치인의 공적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당장 오늘 오후 처리되는 탄핵안부터 적용하면 된다.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돌직구뉴스>후원회원으로 동참해 주십시오. 눈치보지 않고 할 말 하는 대안언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당한 언론! 바른 말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겠습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