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조로증에 걸린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명약

추격형 성장체제의 전환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만, 박정희 모형의 유산이 강고하게 남아있는 한국의 경우에는 특별히 더 어려운 면이 있다. 이 어려움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사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렇게 과거에 성공한 경험에 집착하여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성공의 함정’이다. 이명박뿐 아니라 박정희 시대에 보릿고개를 넘기던 가난에서 탈출하여 고도성장의 혜택을 맛보았던 수많은 국민이 이 함정에 빠져, 탈피해야 할 과거의 모형에 불과한 박정희 모형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고도성장 정책, 친기업·반노동 정책, 수출 확대를 위한 고환율 정책 등은 박정희 시대의 경험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이로써 더디고 미약한 움직임이나마 성장체제 전환을 조금씩 추진하던 흐름이 심각한 반동을 맞게 되었다.

7% 성장률이라는 터무니없는 고도성장을 약속했던 이명박 정부의 기대와는 반대로 재임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2.9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막대한 국가채무와 가게부채의 증가 위에서 달성한 수치였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악재를 만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책 방향의 탓이 컸다.

성장은 뜻대로 되지 않는 가운데 양극화는 심화됨에 따라 국민의 희망과 기대는 좌절과 불만으로 변했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흔히 재벌개혁을 위한 몇 가지 법 개정을 경제민주화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경제민주화는 이런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다.

경제정책과 제도의 근본적 변화, 자본위주 모방중심 추격형 성장체제에서 노동위주 혁신중심 선도형 성장체제로의 완전한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전환으로 혁신의 기운을 강화하는 것만이 해법이고,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조로증에 걸린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명약인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자본축적 극대화에서 노동을 중시하고 사람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꿔야 한다. 분배를 골고루 하고 복지를 제대로 해야 한다. 선진기술의 모방과 습득을 넘어선 내생적 혁신을 고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주입식, 습득형 교육에서 토론식, 창의형 교육으로 변화해야 하며, 목전의 이익만을 좇는 모방형 R&D와 응용연구에 치중하는 풍토에서 실험적인 R&D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연구를 고취하는 풍토로 전환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아닌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을 추구해야 한다. 정부주도 산업진흥정책과 관치금융의 유습을 청산하여 재벌중심 독점구조를 타파하고, 중소기업과 혁신적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여 이권추구사회를 혁신추구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이 모든 변화의 원칙이고 토대다.

그동안 말로는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혁신주도성장, 창조경제 등 온갖 좋은 얘기들을 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매우 더디고 몹시 부족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제도와 관행, 기득권과 사고방식이 변화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특히 재벌은 한국 사회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토대로 변화를 거부하는 저항의 요새 역할을 해왔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의 개혁 물 타기와 노무현 정부의 소위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의 배후세력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반동을 앞장서 고취했으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파트너였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집권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불행하게도 박근혜는 자신의 공약은 팽개치고, 박정희 모형이 낳은 괴물인 재벌과 유착하여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 결과 박근혜 아이러니는 탄핵과 구속기소로 이어지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기득권을 고집하고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집착하다가는 모두가 공멸할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자본축적 극대화를 바탕으로 한 성장전략에 내재한 최고의 모순은 인구문제다. 한국경제는 금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에 맞닥뜨린다. 성장체제 전환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지속되고 있는 혁신 부진의 문제는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보다 앞서나가는 중국과 갈등이 불거진 지금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올바르게 설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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