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시스템, 정당정치로의 발전을 위해 정치의 신화성은 반듯이 극복해야 할 과제

지난 12일 안철수 전 대표가 '문준용 취업특혜 의혹 조작' 사건과 관련해서 국민의당 당사에서 사과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안 대표는 지지해준 국민들과 당사자에게 사과드린다고 말을 꺼내면서 참담한 심정과 대선 후보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 숙였다.

안 대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고 모든 짐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제보조작 사실을 공개하고 박주선 비대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후, 16일 동안 언론들 뿐 만 아니라 민주당, 국민의당 내부에서 조차 안 대표에게 빨리 사과 기자회견을 가져야한다고 다그쳤다.

그리고 사과 기자회견 후, 각 정당과 언론들은 ‘사과가 늦었다’ ‘사과형식이 맞지 않다’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무슨 책임을 질지 명확치 않다’ 등 부정적인 논평들을 쏟아냈다. 또한 언론들은 당연한 수순으로 '정계 은퇴도 고려하느냐'고 물었다. 안 대표는 "제가 당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말 깊이 고민 하겠다"고 만 답했다.

2016년 4월 12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선지원을 위해 호남을 방문해 자신과 민주당의 지지를 호소했다. 문 전 대표는 전남 순천 노관규 후보 지원을 위해 도착하자마자 노 후보의 유세차량 옆에서 '사죄의 절'을 올렸다.

문 전 대표는"송구스럽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해내지 못해서 송구스럽고, 정권교체의 희망을 드리지 못하면서 실망을 시켜드린 것도 송구스럽고,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야권이 쪼개져 선거를 치르게 된 현실도 송구스럽다고 연속해서 사과를 했다.

그리고 ‘호남이 지지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정치도 그만두고, 대선도 포기 하겠다’고 까지 약속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대선기간동안 문재인 후보는 특전사 복무 당시 전두환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발언을 한 것에 사죄했다.

문 후보는 광주를 방문해서 5.18유가족들 앞에서 사죄하고 5.18 진상규명과 광주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선거 기간 동안 호남에 대한 문 전 대표의 '사죄' 행보는 다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으며, 특히 자신에 대한 '호남 홀대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낮은 자세 행보는 호남의 민심을 돌리는데 큰 동기가 되었다.

2014년 7월 30일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재보선 패배에 책임지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경기도 수원 팔달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후,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2년 2개월 정도 전라남도 강진에서 칩거한 후, 정계에 복귀하였다. 손 고문을 찾는 사람들이 정계 복귀를 이구동성으로 요구하자 “여러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시면 저도 마음이 무겁고, 우리 국민들을 위해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곰팡이처럼 피어나곤 하지만, 산생활로 깨끗이 씻어내고 있습니다”하고 답변하였다. 이를 계기로 ‘곰팡이 복귀론’이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결국, 손 고문은 자의반 타의반 모양세로 정계에 복귀하는 모습이 언론에 비춰졌다.

이처럼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인이 사과와 책임을 국민들 앞에서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 되었다. 정치가 국민위에 군림했던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모습이다. 어찌 보면 국민주권 시대를 잘 보여주는 정치 행태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패배에 대한 사과와 책임은 정치 리더가 마치 제사장이 되어 스스로 희생양이 돼야하는 일종의 의식행위가 되버렸다. 이 의식행위는 정치의 개인화, 선거의 개인화를 촉진시키면서 정치와 선거를 신화화하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정치의 상징적 신화화와 인신화

한국 정치에서 ‘사과의 정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과는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 생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시점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정치행위이다. 특히 선거 후, 그 결과에 따른 사과는 중대한 변곡점으로써 당사자들은 반듯이 정치적 의미를 수반하는 가시적이고 상징적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또한 정치 리더들이 선거에 패배했을 경우, 사과와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 행보는 일종의 의식(ritual) 행위가 되었다. 마치 사무라이가 전투에서 패배하였을 시 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영예롭게 할복하듯이 선거에 패배한 정치 리더는 명예로운 의식 행위를 통해 사죄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강요를 받는다.

특별히 선거 기간 동안 비리가 발생하거나 유권자의 비위를 건드리는 행위, 특히 위법적 행위가 발생할 경우 정치 리더는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희생양으로서 정치적 의식을 치러야 한다. 안철수, 문재인 그리고 손학규의 사례는 이러한 상징적 의식행위를 잘 보여준다.

정치사회학자 마패졸리(Maffesoli M.)가 이야기하는 ‘감성 공동체’ 내에서 한 정치 리더가 가지고 있던 환상을 깨뜨리는 의식행위는 정치 공동체의 도덕성 회복이라는 구심력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개인에게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과도하게 부과하여 희생 재물로 삼는 이 의식행위는 정치의 신화적 인신화와 상징화를 조장한다.

그 결과 선거를 치를수록 정당정치는 더 취약하게 되고, 합리적 지성이 작동하는 정당 시스템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즉, 선거 결과에 대한 정당 차원 그리고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책임과 반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의식행위를 통해 희생된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개인화된 권력투쟁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이 신화성을 더욱 조장하면서 공론장에서의 정치의 상업화를 선도적으로 이끈다. 언론들은 희생 재물이 될 정치인이 자신들이 예측하거나 의도한 모습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 다양한 논객들과 평론가들을 동원해서 정치인을 압박한다.

미국대선의 경우, 선거가 끝난 후, 힐러리는 선거 패배 연설에서 ‘승리하지 못해서 사과 한다’는 말 한마디로 후보자로서의 선거패배를 정리했다. 그것이 대선후보가 패배에 책임지는 모습의 끝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정당정치는 여전히 큰 변화 없이 작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정당정치를 거울삼아 볼 때, 한국 정당정치의 취약성이 선거기간동안 더욱 잘 보인다. 한 개인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인신화와 의식화 그리고 합리적 시스템 부재가 우리 정당정치의 위기의 본질적 원인 중 하나임을 선거기간동안 확인 할 수 있다.

안철수, 문재인, 손학규의 사과와 책임 지는 행위가 과연 한국 정치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적 시스템, 합리적 집단지성이 발현되는 정당정치로의 발전을 위해 이 정치의 신화성은 반듯이 극복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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