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기업인 흥망성쇠-②롯데그룹 신격호(下)] 내리막길의 끝은 어디인가..유통거인의 씁쓸한 말년
[1세대 기업인 흥망성쇠-②롯데그룹 신격호(下)] 내리막길의 끝은 어디인가..유통거인의 씁쓸한 말년
  • 이태희 기자 (babydo@hanmail.net)
  • 승인 2017.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재계 서열 1위 삼성만큼이나 틈만 나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 5위 롯데. 다수의 대중들에게는 기업의 국적 정체성 논란이, 업계에서는 여태껏 베일에 쌓여있던 그룹 지배구조로 ‘은둔의 왕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기업 문화와 웬만한 사업은 다 한다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잠실 제2롯데월드 각종 사고에 이어 경영권 분쟁 등으로 우울했던 롯데가 최근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복잡한 순환 출자가 상당수 해소되면서 ‘뉴 롯데’로 산뜻한 새 출발을 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오너 일가가 경영비리와 국정농단 혐의로 줄줄이 법정에 서고 지난 1일 검찰이 이들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하면서 그룹은 다시 초비상 상태다. 

현재 다른 창업주들이 세상을 떠났거나 경영에서 손을 뗀 상황에서 신 총괄회장의 위치는 독특하다. 총괄회장이라는 특이한 직책도 자신이 맨손으로 일군 회사를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단돈 80엔을 쥐고 일본으로 건너가 자산 100조원의 기업을 만든 신 총괄회장. 과거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될 위기에 처한 롯데 창업주의 발자취를 추적해본다. 

‘대한해협의 경영자’, ‘유통거인’이라 불렸던 신 총괄회장이 한일 롯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지난 6월. 일본 롯데홀딩스가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을 새 이사진에서 배제하면서다. 이로써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창립한지 약 70년 만에 물러나게 됐다. 

고령의 나이에 여생을 즐기기 위한 수순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창업주의 씁쓸한 말년으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된 형제 간 경영권 분쟁과 비자금 조성 의혹,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도 엮이면서 안팎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 쟁탈전은 최근 몇 년 간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와 사실혼 관계 이슈까지 세간에 오르내렸다. 한일 양국에 걸쳐있는 복잡한 순환출자와 광윤사, L투자회사 등 의문투성이의 계열사가 포함된 지배구조를 두고 정치권도 들썩였다. 

롯데판 형제의 난은 2015년 7월 말 일본에서 고령의 노부를 등에 업은 신 전 부회장의 ‘쿠데타’로 시작됐다. 지금까지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가,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이 경영을 승계한다는 암묵적인 공식이 업계 전반에 퍼져있었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의 모태인 롯데제과 지분을 야금야금 모으기 시작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형제 간 갈등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후계자 쟁탈전의 막이 본격 올랐다. 신 회장은 부친인 신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하면서 하루 만에 신 전 부회장의 난을 제압했다. 

이후 한일 양국에서는 형제 간 치열한 여론전이 벌어졌고, 이들의 경영권 다툼은 양국 매체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하며 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신 전 부회장 측은 부친을 앞세워 승계 정당성을 주장했고, 신 회장은 경영 능력을 강조하며 한국 롯데에서 일군 성과를 제시하고 나섰다.  

롯데가 경영권 분쟁은 관계자 말 한 마디가 기삿거리가 될 만큼 지대한 관심을 받았고, 고소·고발이 남발될수록 기업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이 몇 년 전부터 이른바 치매라 불리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왔고, 약까지 복용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년후견인 지정을 둘러싼 법정 분쟁도 일었다. 

약 2년 간 이어진 경영권 분쟁은 한국 롯데그룹이 지주사를 공식 출범시키고, 복잡한 순화출자를 상당부분 해소함으로써 마무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종 논란들을 털고 신 회장이 이끄는 뉴 롯데는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경영 비리와 국정 농단 혐의로 신 총괄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줄줄이 법정에 서면서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1일 신 총괄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5개월 만에 징역 10년이라는 구형을 받았다. 사정기관의 엄벌의지에 100세를 바라보는 롯데 창업주는 실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신 총괄회장이 이날 법정에서 한 말은 1세대 기업인들의 마인드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신 총괄회장은 ‘지금 횡령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횡령이란 말이 이상하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인데 그게 왜 횡령이냐”라고 답한 바 있다. 

타국에서 맨손으로 사업을 일궈 ‘롯데의 왕’으로 군림했던 신 총괄회장은 90살이 넘도록 고집스럽게 경영 일선에서 버텼다. 명예로운 은퇴를 꿈꿨을 그가 이처럼 씁쓸한 말년을 겪을 줄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사업보국’을 내걸고 한국에서 또 다른 성공 신화를 썼던 그는 이제 비리 주범 혐의까지 더해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