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 서열 1위 삼성만큼이나 틈만 나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 5위 롯데. 다수의 대중들에게는 기업의 국적 정체성 논란이, 업계에서는 여태껏 베일에 쌓여있던 그룹 지배구조로 ‘은둔의 왕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기업 문화와 웬만한 사업은 다 한다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잠실 제2롯데월드 각종 사고에 이어 경영권 분쟁 등으로 우울했던 롯데가 최근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복잡한 순환 출자가 상당수 해소되면서 ‘뉴 롯데’로 산뜻한 새 출발을 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오너 일가가 경영비리와 국정농단 혐의로 줄줄이 법정에 서고 지난 1일 검찰이 이들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하면서 그룹은 다시 초비상 상태다. 

현재 다른 창업주들이 세상을 떠났거나 경영에서 손을 뗀 상황에서 신 총괄회장의 위치는 독특하다. 총괄회장이라는 특이한 직책도 자신이 맨손으로 일군 회사를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단돈 80엔을 쥐고 일본으로 건너가 자산 100조원의 기업을 만든 신 총괄회장. 과거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될 위기에 처한 롯데 창업주의 발자취를 추적해본다. 

‘대한해협의 경영자’, ‘유통거인’이라 불렸던 신 총괄회장이 한일 롯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지난 6월. 일본 롯데홀딩스가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을 새 이사진에서 배제하면서다. 이로써 신 총괄회장은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창립한지 약 70년 만에 물러나게 됐다. 

고령의 나이에 여생을 즐기기 위한 수순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창업주의 씁쓸한 말년으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된 형제 간 경영권 분쟁과 비자금 조성 의혹,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도 엮이면서 안팎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 쟁탈전은 최근 몇 년 간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와 사실혼 관계 이슈까지 세간에 오르내렸다. 한일 양국에 걸쳐있는 복잡한 순환출자와 광윤사, L투자회사 등 의문투성이의 계열사가 포함된 지배구조를 두고 정치권도 들썩였다. 

롯데판 형제의 난은 2015년 7월 말 일본에서 고령의 노부를 등에 업은 신 전 부회장의 ‘쿠데타’로 시작됐다. 지금까지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가,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이 경영을 승계한다는 암묵적인 공식이 업계 전반에 퍼져있었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의 모태인 롯데제과 지분을 야금야금 모으기 시작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형제 간 갈등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수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후계자 쟁탈전의 막이 본격 올랐다. 신 회장은 부친인 신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하면서 하루 만에 신 전 부회장의 난을 제압했다. 

이후 한일 양국에서는 형제 간 치열한 여론전이 벌어졌고, 이들의 경영권 다툼은 양국 매체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하며 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신 전 부회장 측은 부친을 앞세워 승계 정당성을 주장했고, 신 회장은 경영 능력을 강조하며 한국 롯데에서 일군 성과를 제시하고 나섰다.  

롯데가 경영권 분쟁은 관계자 말 한 마디가 기삿거리가 될 만큼 지대한 관심을 받았고, 고소·고발이 남발될수록 기업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이 몇 년 전부터 이른바 치매라 불리는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왔고, 약까지 복용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년후견인 지정을 둘러싼 법정 분쟁도 일었다. 

약 2년 간 이어진 경영권 분쟁은 한국 롯데그룹이 지주사를 공식 출범시키고, 복잡한 순화출자를 상당부분 해소함으로써 마무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종 논란들을 털고 신 회장이 이끄는 뉴 롯데는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경영 비리와 국정 농단 혐의로 신 총괄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줄줄이 법정에 서면서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1일 신 총괄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5개월 만에 징역 10년이라는 구형을 받았다. 사정기관의 엄벌의지에 100세를 바라보는 롯데 창업주는 실형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신 총괄회장이 이날 법정에서 한 말은 1세대 기업인들의 마인드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신 총괄회장은 ‘지금 횡령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횡령이란 말이 이상하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인데 그게 왜 횡령이냐”라고 답한 바 있다. 

타국에서 맨손으로 사업을 일궈 ‘롯데의 왕’으로 군림했던 신 총괄회장은 90살이 넘도록 고집스럽게 경영 일선에서 버텼다. 명예로운 은퇴를 꿈꿨을 그가 이처럼 씁쓸한 말년을 겪을 줄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사업보국’을 내걸고 한국에서 또 다른 성공 신화를 썼던 그는 이제 비리 주범 혐의까지 더해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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