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정치가 여소야대 탈출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다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2등을 해도 집권이 가능하다? 결선투표가 제도화되어 있는 프랑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일이다. 그것도 후진국이 아닌 정치·경제 선진국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지난 9월 10일 실시된 노르웨이 총선에서는 집권 보수당(H)이 3석을 잃어 45석을 차지했다. 연립내각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진보당(FrP) 역시 2석이 감소해 27석을 기록했다. 이 두 정당의 합계 의석(72석)은 재적(169석) 과반수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4년 전부터 정책연합을 해온 기독민주당(8석)과 자유당(8석)이 선방한 덕분에 과반수(85석)에서 3석을 초과하였다.

물론 4년 전 연립내각을 구성한 좌파연정은 노동당(LP)이 55석을 획득하며 제1당을 차지했으나 중앙당(CP, 10석)과 사회좌파당(SV, 6석), 그리고 녹색당(1석)이 저조한 성적을 남기며 8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다. 금년에도 노동당은 49석으로 간신히 제1당을 유지했으나 나머지 정당들의 합계 의석이 31석에 그쳐 정권탈환은 무위로 돌아갔다.  

130년 전통을 자랑하는 보수당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만 24년 동안 여당 지위에 있었던 중도우파 정당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며 공공지출 삭감을 주장하는 점이 가장 오랜 전통의 자유당 등과 차이가 있다. 45세 약관의 진보당은 반(反)난민-반(反)이슬람 및 공공재정의 개입을 최소화 등을 공약해온 ‘우파 포퓰리즘(Right-wing populism)’ 정당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일정한 정책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수당은 8년 야당의 길을 청산하기 위해 2013년 10월 총선을 앞두고 진보당과 손을 맞잡았다. 진보당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연립내각 참여 경험이 없었다. 두 정당 간 합의된 정책은 75페이지에 이르는 자료집으로 제작·배포되었다. 주요골자는 감세와 기업 규제 철폐, 이민법령 강화,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이다. 세부적인 사항으로는 일요일에 상점을 여는 것을 허용하고 시속 100㎞인 최대도로 주행속도를 135㎞로 높이는 이색적인 정책도 있었다. 하지만 개표결과 보수당은 48석, 진보당은 29석에 그쳐 과반수에 미달했다. 한편 노동당 등 4개 정당으로 구성된 좌파 연정 역시 72석에 머무르며 캐스팅 보트는 기독민주당과 자유당이 쥐게 되었다. 결국 보수당-진보당 간에는 연립내각 합의, 그리고 두 정당과 기독민주당·자유당 간에는 정책연합 합의를 따로 맺어야 했다.

한편 보수당은 2001년 9월 총선에서 38석을 차지해 기독민주당(22석) 및 자유당(2석)과 연립내각을 구성해 기독민주당의 보네비크를 총리로 추대한 경험이 있다. 노동당 중심 좌파연정(76석)은 의석은 좀 더 많았으나 ‘캐스팅 보트’를 쥔 진보당(26석)이 정책연합을 조건으로 우파연정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4년 동안 정권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당시 보수당보다 더 왼쪽 노선을 견지하던 기독민주당과 자유당은 조세 및 유럽연합(EU) 가입 등에 있어서 이견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진보당(26석)의 지지를 받아야만 의회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는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에르나 솔베르그(56세) 노르웨이 총리는 2004년부터 보수당을 이끌고 있는 맹렬 여성이다. 28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2001년(40세) 보수당 집권 당시 지역개발·지방정부담당 장관에 발탁된 직업정치인이다. 노르웨이에서는 30년 만에 배출한 두 번째 여성총리이다. 풍부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연속해서 2등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총리직 재선을 하고 있다. 19명 각료 가운데 이번 총선을 거치며 외무, 국방, 교통통신, 보건복지, 수산, 이민 및 EU담당 등 6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였다. 특히 부총리에 해당하는 외무장관에는 이네 에릭센 소레이데 전(前)국방장관을 임명하였다. 약관 41세의 소레이데(여) 장관은 이미 2001년 보수당 집권 시절 정부에 참여하였으며 2005년 하원 교육위원장 및 2009년 국방위원장 등을 거친 조정전문가이다. 2013년부터는 국방장관으로 일해왔다. 내각 서열 3위인 시브 옌센(48세) 재무장관 역시 26세에 오슬로 시의원으로 발을 디딘 직업정치인이다. 그녀 또한 이미 35세 때 국회 재정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6년(37세)부터 진보당을 이끌고 있다. 2013년 재무장관으로 임명돼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 연합정치를 기본으로 하는 노르웨이의 소득수준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무려 7만 3천 달러가 넘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농민대표인 중앙당을 비롯해 각계각층을 의회에 보낸다. 공산당 후신정당인 적색당 등 원내정당이 무려 9개나 된다. 특정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일이 흔히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협치가 익숙하며, 특히 장관 나누기뿐만이 아니라 정책연합에 기초한 연합정치가 활발하다. 선진국은 바로 연합정치다.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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