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다원성, 민주적 의사결정의 다양성을 위한 다당제의 길

박태순 미디어로드연구소장(성균관대학 초빙교수)

지난달 29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정책연대협의체를 발족했다. 양당은 정책연대를 통해 국회활동, 정책 등에서 연대해나가기로 했다.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과 권은희 원내수석부대표는 양당이 정책과 노선에서 유사점이 많다는 점과 기득권을 타파하고 진정한 개혁을 이뤄낼 주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중도 개혁세력으로서 정책연대를 강하게 추진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바른정당의 김세연 정책위의장, 오신환 의원은 이날 출범식에서 중도를 강화하고 개혁보수의 입장을 예산과 정책에 반영하는 정책연대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신환 의원은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중도를 강화하고 개혁보수의 입장을 예산과 정책에 반영하는 정책연대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책연대협의체는 '정책협약 6대 분야'를 선정·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양당이 정책연대, 선거연대 그리고 당 통합이라는 로드맵에 따라서 중도정당, 제3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한다면 우리의 정치사에서 다당제의 정착이라는 큰 변곡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다당제의 안착이 녹녹치 많은 않다. 제3정당을 주도하는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매우 다른 방향과 색깔을 띠고 있다. 

안대표는 중도 개혁적 제3정당에 대해 누구보다도 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안대표는 다당제 자체가 한국정치에 큰 변화를 주고 있고, 또 줄 것이라는 확신이 매우 크다. 그는 국민의당에 의해 다당제가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정치의 구조를 변화시켰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바른당과의 통합은 바로 이 연장선에 있다. 그는 이념대결로부터 벗어나 문제해결정당으로서의 제3정당의 정체성을 세우고 지방선거, 그리고 대선까지 가겠다는 로드맵에 따라 바른당과의 통합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과의 통합은 정서적으로나 정치적 가치 면에서나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반면에 유승민 대표는 보수정당의 복원과 개혁에 대한 의욕이 강하다. 적폐세력으로 낙인찍힌 한국당과 기존의 보수세력으로는 더 이상 보수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넘어서 새로운 보수 가치를 복원하겠다는 나름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국민의당과의 통합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대선후보 토론회 덕분에 스타로 부상한 유대표의 입장에서는 보수의 미래가 자신의 어깨에 달려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유대표는 ‘환골탈태’라는 전제를 두기는 했지만 한국당과의 통합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유대표는 “국민의당이 변하면 같이 갈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안보나 지역주의 극복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통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러 선택의 가능성들을 열어두었다.  

이처럼 안대표와 유대표는 작은 정책적 사안에서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으나 정치적 큰 틀에서나 정치 이념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쉽게 융화되기 어려운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정책연대협의체는 몇몇 정책적 사안에서 공통의 해결책을 찾을 수는 있으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정당이라는 정치 실험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양당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차이와 더불어 여의도는 양당으로 회귀하려는 구심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87년 이후 30년을 지나오면서 고착된 정치구조, 패권 구조에 따른 힘의 흐름을 단기간에 역류해 올라가기는 만만치 않다. 호남과 영남, 진보와 보수, 산업세력과 민주세력이라는 양극단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블랙홀이 일시에 중간지대를 빨아들이고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선거가 가까울 수 록 이 양 블랙홀은 더욱 세력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는 제3정당,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새로운 정치적 모험을 결정짓는 이벤트가 될 것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바른정당 정책연대협의체 출범식에서 양당 관계자들이 자료를 살펴보며 논의하고 있다.

제3정당이 민주당이나 한국당과 어떤 다른 모습을 보여 줄지 아직은 전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사실 국민들은 다당제나 제3정당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다당제라는 정치적 기제들을 통해서 보다 다원적인 정치 활동, 그리고 정책 결정에 있어서 더욱 다양한 의견들과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정치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이러한 국민적 희망을 담을 수 있는 제3정당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가? 현재로서는 ‘노(No)’라 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 양당의 행보가 한국 정치를 변화시킬 새로운 큰 틀과 비전을 보여주기 보다는 당내 분열을 부추기고 정치공학적 세력 간에 결합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연역적 정치에서 귀납적 정치로

양 당은 이러한 현실을 깊이 생각하고 대안 정당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과거와의 단절과 계승노력이다. 국민의당은 87년 이후 지속돼온 폐쇄적이고, 집단 기득권적 이념의 틀과의 단절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민주 대 반민주의 단선적 이원론을 극복하고, 호남지역주의와 운동권적 도그마와의 단절, 그리고 역사에 대한 포용력을 통해 산업세력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대표는 이를 ‘탈이념과 문제해결정당’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정당이 거버넌스 조직이 아닌 이상 국민들에게 딱 와 닿지 않는다. 바른당은 진보적 정통성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김영삼 정부와 같은 차원에서 김대중 정부와 햇볕정책에 대해 전향적으로 평가하고, 계승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양당의 이러한 노력과 포용력은 중도 개혁 정당이 갖춰야할 기본 방향이다. 중도개혁 정당은 무색무취의 탈이념 정당이 아니라 다양한 이념이 공존하고 역동적으로 작동하면서 많은 인재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열려진 정당, 대안 정당으로서 자리매김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책적 방향과 정체성 정립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책연대협의체는 '정책협약 6대 분야'를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양당 간 우선적으로 정책적 공통점을 찾아나가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국민의당 내에서 조차 의견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분열의 요소가 되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당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통합하고자 하는 특정 세력이 일방적으로 연대와 통합을 추진함에 따라 당의 분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통합이라는 수단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당원들이 동의하고 합의되지 않은 정책과 당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정당과 연대하고 통합하는 노력이 과연 덧셈의 정치가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정치의 미학은 합의를 위해서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 될 때까지 토론하는 데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당은 당 통합을 향한 행보도 중요하지만 이전에 당내의 다양한 의견, 반대의견이 합의 될 때 까지 토론하고 논쟁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당의 정책 방향과 정체성을 세우고 공감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 과정 자체가 정치이며, 이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정치의 모습이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기초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당 통합이라는 목적지향적, 연역적 정치보다는 ‘과정을 통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귀납적 정치의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수단이 목적이 돼버려 권력 투쟁과 분열의 원인이 되는 모습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박태순 미디어로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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