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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약 40여 일 간의 활동 결과로 3차에 걸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안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혁신의 3가지 원칙으로 근본적 개혁과 과감하고 단호한 혁신, 공정성과 투명성 보장을 강조했다. 이 혁신안은 <최고위원제 폐지> <사무총장제 폐지> <선출직 공직자 평가 위원회 구성> 그리고 <당원소환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당의 리모델링 수준을 넘어서 핵심 구조 전체를 바꾸는 개혁성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이 혁신안이 현실 정치와 정당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고민한 결과 인지, 자의적 이상주의에 머물러 있는 아마추어리즘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혁신위는 계파 갈등을 해소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수술하려는 노력보다는 문제가 돌출되는 형식들만을 바꾸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볼 수 있다.

먼저, 혁신위는 최고위원회를 폐지하고 권역․세대․계층별 대표제를 두어 새로운 집단 지도체제로 당을 운영할 것을 제시했다. 이는 최고위원회가 계파갈등의 근원이라는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방안임에 틀림없다. 최고위원회에서 돌출되는 계파성은 당 전체에 만연해 있는 계파주의의 결과이다. 혁신위의 무지함인지 혹은 보다 근본적인 모순을 은폐하고자 함인지 이해할 수 없는 방안이다. 실상, 현재 새민련 계파갈등은 <친노-비노>라는 구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면 이 구도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이 갈등의 최고 기득권 세력이 누구인지 명확하다. 그럼에도 혁신위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또한 당헌까지 위배하면서 최고위원회를 폐지하고 당 지도부에서 대표 한사람만 선거로 뽑겠다는 발상은 민주적 당 운영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정당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벼룩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형상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사무총장제를 폐지하고 본부장제를 두어 당 대표의 직할에 두겠다는 발상은 제왕적 당대표를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로 보인다. 사실, 사무총장이 계파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자리가 되어버린 것은 문재인 대표가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최재성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면서 부터이다. 혁신위는 사무총장을 통해 공천권을 독식하는 하는 정치 문화를 없애야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는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다른 방안들을 통해 보안할 수 있는 문제이다. 당 대표가 직접 임명하는 본부장제는 당 대표를 배출한 특정 계파의 공천권 독식 뿐 만 아니라 당 운영의 독선을 야기하는 체제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퇴행적 혁신안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의심케 한다. 사무총장제 폐지는 단지 말 많았던 최재성 사무총장만을 희생양으로 삼고 문재인 대표 체제만을 공고히 다지는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셋째, 선출직 공직자 평가 위원회 구성은 당 대표의 독선에 마지막 방점을 찍어주는 최악의 혁신안이 아닐 수 없다. 위원회의 위원장을 외부인사로 해서 당대표가 직접 임명한다고 규정 했다가 반발에 부딪히자 최고위를 거쳐서 임명하겠다고 제시했다. 최고위가 해체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이 역할을 권역․세대․계층별 대표들이 하게 될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역·세대·계층별 대표들이 공천권 행사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그리고 위원장을 비롯한 평가위원 전원을 당대표가 임명을 하게됨으로써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결국, 권역․세대․계층별 대표들 그리고 선출직공직자 평가위원들이 당 대표의 영향아래 있는 사람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농후한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당 대표의 독선적 당 운영을 더욱 강화시키고 당의 사유화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선출직 공직자를 당원이 탄핵 할 수 있는 당원소환제 도입은 국민소환제를 모방한 직접 민주주의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당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선출된 당직자들을 당원들이 탄핵 할 수 있도록 하고 당무감사원에서 실무를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당의 민주적 운영과 도덕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 자체가 매우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인상을 준다. 말로는 당대표도 포함된다고 하지만 친노가 독주하고 있는 당내에서 당대표를 탄핵할 수 있는 세력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이 제도 또한 문재인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내치는 도구로 전락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잘못 진단하고 처방을 하면 그 환자는 생명이 위태롭다. 지금 혁신위가 내 놓은 혁신안이 바로 이런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사람을 대선까지 지키기 위한 혁신안이 당 전체를 사지로 내몰 수 있다. 혁신안 발표 후 100여명의 당원 탈당은 이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의 결과를 징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혁신해야 할 혁신안

주승용 의원은 10일 오전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간담회 자리에서 “2차 혁신안의 최고위원회 폐지, 사무총장직 폐지 등은 당헌을 바꿔야 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인데 전 당원 투표 등을 통한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바로 10일 뒤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이를 승인해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며, 투명한 의사결정 체제와 제도를 갖추지 못한 내부의 비민주성과 전 당원을 결속시킬 수 있는 공통의 정치 비전이 없다는 점에 있다. 계파갈등은 만성화된 비민주성과 권력을 사익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왜곡된 정치문화에서 불거져 나온 결과들이다. 2012년 총선에서의 친노의 공천 독식, 정책적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진영논리 속에서 선언적 구호만 외치는 87년 체제, 그리고 선거 때마다 거짓 국민경선으로 기득권을 누렸던 만성화된 포퓰리즘적 행태로 당원들은 권리가 박탈되고, 정치적 소외 만 커졌다. 진정한 혁신은 모든 문제의 출발인 기본모순을 제거하는데 있다. 새민련이 빠져있는 계파갈등 모순의 정점은 현 문재인 대표일 것이다. 당내 대선경선과정, 안철수 의원과의 대선 경선, 그리고 최근의 당대표 경선과정에서 나타난 불신과 계파 갈등의 중심에 있던 사람은 문재인 대표였다. 새민련의 진정한 혁신은 이 기본모순을 해결 하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당의 분열을 막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당으로 다시 설 수 있는 길이다. 지금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문재인 대표만을 위한 혁신안을 혁신하는 일 일 것이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박사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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