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는 10일 자민당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안보법안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헌법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헌법학자와 정치가의 책임은 다르다"고 밝혔다. 2015.07.11. (사진출처: NHK)

‘해석’에 자리 빼앗긴 헌법 ‘정신’

헌법 해석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최근 일본은 헌법 조항의 ‘개정’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고 ‘안보법제’를 통과시켰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그래서 잠시 유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지난 16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일본 자민당 단독으로 통과된 11개 안보법제는 1981년 당시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내각이 ‘집단자위권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내린 헌법 해석을 33년 만에 수정한 것이다. 일본은 이제 전 세계에서 미군 외에도 군사지원이 가능하다. 유사시 무기사용 규제도 완화됐다. 일본의 안보와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미국이나 유엔의 요청에 따라 탄약 제공이나 전투기 급유가 가능하다. 나아가 일본정부의 판단만으로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다. 이제 일본의 안보정책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됐다.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대가로 1946년 미국에 의해 수립된 ‘평화헌법’의 정신은 새로운 ‘해석’에 자리를 내주게 됐다.

일본은 이제 독일이 1994년 연방헌법재판소의 이른바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판결을 통해 승인했던 해외파병이라는 일보를 내딛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은 과거 참담했던 나치의 교훈으로 기본법(헌법)에서 침략전쟁을 금지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역외권에 대한 파병은 통일 이전 구서독에서 위헌으로 여겨지다가 통일 이후 중도우파 헬무트 콜(H. Kohl) 정권 당시 기본법의 해석 변경으로 역외 파병이 가능해졌고, 연방헌법재판소는 사전승인 조건으로 이를 인정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는 10일 자민당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안보법안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헌법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헌법학자와 정치가의 책임은 다르다"고 밝혔다. 2015.07.11. (사진출처: NHK)

지금까지 일본은 단 한 번도 동맹국을 위한 파병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이제 예컨대 미국 함대가 북한의 로켓 공격을 받으면 군사 개입이 가능하다. 물론 독일과의 직접적인 비교는 현실적으로 어려울지 모른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집단방어체제의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단방어체제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동아시아 각국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안보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무엇보다 이웃국가의 민감한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큰 실수를 했다. 아베 내각은 자신의 안보정책을 자국은 물론 주변국 국민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베의 독선적 음조와 독일의 화합적 교향곡

일본 정부는 이 새로운 안보정책을 수립하면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배경음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새 안보법제는 많은 해석의 여지를 안고 있다. 나토(NATO)와 같은 집단방어체제가 아닌 미일 방어체제에서 파병원조의 규모와 범위는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아베 총리는 어떠한 역사철학을 갖고 있는가.

이번 안보법제가 강행처리 되면서 일본 전역에서는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도쿄, 나고야, 오사카, 교토 등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60년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 반대 시위 당시 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총사퇴한 뒤, 일본사회의 이러한 안보투쟁도 55년 만에 부활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이다. 아베 총리의 안보정책은 거친 음조(音調)를 띄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곤봉외교’(Big Stick Diplomacy)로 유명한 루즈벨트(T. Roosevelt) 미국 대통령은 정책 실현을 위해서는 부드럽게 말하되 큰 곤봉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거칠게 말하고 작은 곤봉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음조와 곤봉을 혼동하는 아베의 혼돈은 동아시아 정치를 낡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 일본과 독일의 차이가 있다.

AWACS(공중조기경보통제기) 판결 이후 독일 파병정책은 나토와 유럽연합(EU) 등 동맹국들과 다국적 집단안보방위의 추구 속에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일본의 안보법제는 동아시아 각국의 국수주의라는 낡은 방식의 권력게임을 더 강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동아시아는 남지나해에서의 중국의 공격적인 자세, 일본과 중국의 센카쿠 열도 분쟁, 이 가운데에서 보이는 대한민국의 우유부단함, 그리고 북한이라는 시한폭탄과 같은 엄중한 안보현실에 직명해 있다. 여기 아베 총리의 거친 음조는 국수주의를 강화시킬 뿐이다.

일본은 이제 이웃국가들과 안보정책이라는 교향곡을 함께 연주하려는 결심을 보였다. 그것이 거친 방식일지라도 진심과 투명함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아베 신조 총리가 적합한 인물인지는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고 이웃국가의 신뢰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그가 “신뢰의 총리”가 아닌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서명준
동국대 강사
미디어로드 연구실장
베를린자유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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