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지 못한 청와대·무차별 의혹 제기 야당…덧셈 아닌 뺄셈 외교

사람의 입은 간사하다. 더구나 정치인의 입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못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극비 방문을 두고 정치권에는 온갖 추측과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무슨 말 못 할 사연이 분명 있겠지만 꼬투리는 청와대 쪽이 제공한 바가 크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을 방문했지만 출국도, 입국도 비공개였다. 특사 파견 사실조차 출국 다음날 알려졌다. 

시점도 의구심을 부추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급작스레 비서실장이 자리를 비웠다. 비서실장을 특사로 파견한 전례가 단 한 차례뿐이었다는 점, 거기에 비밀리에 파견한 점 등 모든 이례적인 정황이 말 많은 정치권에 기름을 부었다.  

정점은 말 바꾸기다. '썰전'의 현장이나 다름없는 정치판에 말 바꾸기는 치명타이자 최고의 먹잇감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대는 상상 그 이상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발 없는 말들이 말을 만들고 말을 부른다. 

임종석 실장의 UAE 방문과 관련 청와대측 설명은 현재 세 번 말이 바뀌었다. 지난 10일 임 실장 출국 다음 날 첫 브리핑 때는 "해외 파견 부대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곧바로 정치권에서 '대북접촉설', 'MB 비리 관련설'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임 실장은 과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지냈고 최근까지도 대북 관련 사업을 해왔다. 이번에 방문한 UAE와 레바논에는 북한대사관이 있다. 특사를 가장한 '대북접촉' 목적으로 보낸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배경이다. 물론 청와대는 부인했다.

다음은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 정부 비리 의혹과 관련해 UAE 왕실 관련 자금을 들여다봤다가 외교적 논란으로 비화됐다는 주장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MB 정부의 UAE 원전 수주와 관련해 터무니없는 얘기를 퍼트리는 문재인 정부를 그 나라 왕세자가 국교 단절까지 거론하며 격렬히 비난하자 이를 수습, 무마하려고 임 실장이 달려갔다는 소문이 나돈다"고 했다. 이 역시 청와대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의혹에 불을 당긴 건 모 신문이 UAE 원전 책임자와 임 실장이 같이 앉아 있는 사진을 공개하면서다. 더우기 임 실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를 만나면서 이 설에 더욱 힘이 실렸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사진이 공개된 뒤 지난 19일 청와대의 두 번째, 세 번째 입장이 나왔다. 처음엔 "양국 파트너십을 강화하러 갔다"고 했고, 이날 다시 "박근혜 정부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때문에 "이전 정부에 서운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우리는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있다"고 했다.

물론 그 서운한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UAE가 불만을 제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야권이 공세를 강화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청와대의 모호한 태도가 한몫 하고 있다. 논란 당사자인 임 실장은 18일부터 21일까지 갑자기 휴가를 냈다. 
   
정황도 애매하다. 현지 파병된 아크(UAE)·동명부대(레바논)에는 불과 한 달 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격려 방문을 했다. 임 실장 파견 한 달 전인 10월 29일에도 UAE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에너지 각료회의'에 문미옥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을 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해 에너지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또 있다. 지난 10일 특사 파견 사실을 알리며 청와대는 "국방부 서주석 차관과 외교부 차관보, 청와대 비서실 소속 행정관 2명이 수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발표와 달리 서동구 국정원 1차장의 추가 수행이 확인됐다. 처음부터 꼬였다.

'임종석 미스터리'는 솔직하지 못한 입이 불러 왔다. 이제라도 밝힐 건 밝히고 외교 안보 등 국익과 관련, 공개 불가한 것은 양해를 구해야 한다. 외교‧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소위 단골로 등장하는 "국익을 위한 초당적 협력'이 그것이다.  

외교 안보 사항은 일반 국가 간 고위급 대화 내용 공개도 상대국과 조율 없이 공개할 경우 외교적 결례다. 더욱이 UAE는 왕정 국가다. 왕세제와의 면담을 'A에서 Z까지' 공개하라고 것은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UAE에서는 임 실장과 모하메드 왕세제 면담과 관련 "양국 간 우호 협력관계와 호혜적 방향으로 양국 관계를 증진·발전시킬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AE의 국교 단절 위기 수습용', '탈원전 정책에 대한 UAE의 불만 무마용' 등 지나친 추측성 발언은 되레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청와대의 세 차례 말 바꾸기와 야당의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가 양국 관계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생각해 볼 때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옛 말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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