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운 보호무역주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려했던 세계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홍성범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철강에 25%, 수입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이번 주 공식 서명할 방침이다. 그는 "(외국 기업들이) 우리 공장과 일자리를 파괴했다"며 고율 관세가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트럼프발 보호무역조치에 중국, 유럽연합(EU)이 반발하며 전 세계에 무역전쟁의 조짐이 감돌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할리 데이비드슨, 리바이스 청바지 등 미국을 상징하는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중국도 미국 농산물에 보복관세 부과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도 다시 ‘유럽산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물러서지 않으며 점차 확전되는 양상이다.

미국, 중국, EU 등이 경쟁적으로 관세 장벽 쌓기에 나서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형성한 자유무역 경제 질서를 위협하는 이러한 상황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는 매우 우려할 사태이다.

현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것을 자신의 국내 정치적 시각으로만 보는 것에서 나온 결과라고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지기반인 백인 노동자층과 쇠락한 공업지대의 표심을 얻기 위해 국제 경제 질서를 무너뜨려선 안 된다. 미국내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와 소비자들의 후생 감소라는 역효과를 낼 게 뻔하다. 

미국 증시가 곧바로 세계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로 급락한 것만 보더라도 이번 조치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등 주요 언론들도 사설 등을 통해 “이번 조처가 미국과 전 세계에 파괴적인 경제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악관 내부에서도 이번 조처로 인해 참모들과 갈등을 겪는 등 자중지란의 모습까지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들도 우려와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누구에게도 도움 안 되는 무역전쟁'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크루그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고 말한 것은 완전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비난하고 "전쟁을 개시하는 방식도 아주 어리석다"고 질타했다.  

그는 특히 "보복관세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세계 전체 무역은 위축될 것이며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더 가난해질 것"이라면서 "더 중요한 것은 단기적으로 아주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도 CNN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함과 무지로 인해 미국 일부 철강업체들이 단기적으로 약간의 수혜를 입을 수는 있겠지만 미국과 세계 경제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삭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의 첫 총성을 울리면서 미국 철강업종 주가가 5.75% 올랐지만 미국 전체 증시는 1% 이상 하락했다"면서 "앞으로 미국 등 전 세계 증시가 하락의 악순환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는 과거에도 이미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서 "1930년대 초반에 전개된 세계 무역전쟁으로 경제 공황이 촉발됐으며 공황이 심해지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세계 대공황'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여러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추진 스타일에 비추어 미래를 낙관하긴 힘들다. 현재의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수출 전반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도 하방 리스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보호무역주의 양상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에서 취하는 여러 조치 등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숫자로만 놓고 보면 그리 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주력 품목에까지 확대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통상압박의 전개 추이를 주의 깊게 보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5일 이와 관련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통상 관계장관 회의를 열기로 했다.

트럼프발 세계무역전쟁 선포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아직은 정확히 가늠하긴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원망만 하지 말고 현재의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적극 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

보호무역은 대개 ‘자국 제품 우선주의’와 맞물리는 경향이 있어 시장전략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 보호무역에 대응한 기업의 선택은 글로벌 분업체계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현재의 트럼프발 세계무역전쟁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면서 통상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야 할 때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우선주의의 독선을 내려놓고 미국이 세운 ‘견제와 균형’의 전통을 발휘해 다시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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