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월 오기 전 혁신에 박차를"

 

경제가 성숙해지면서 성장률이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큰 이유중 하나는 기술발전 체제의 불가피한 변화로 생산성 증가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데에는 이미 개발이 되어 있는 더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방법과 새 것을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창조적 혁신의 방법이 있다. 물론 이는 상대적인 것이다. 아무리 모방을 해도 자신이 처한 구체적 조건에 맞추어 적용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고, 아무리 혁신적인 것도 기존의 것을 모방하고 참고하는 일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튼 크게 보아 모방은 혁신보다 쉽고 비용도 덜 드는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개도국의 경우에는 기술 수준과 시장 제도의 발달 수준이 낮기 때문에 선진국을 모방하면서 그 수준을 높여나갈 수 있어서 일반적으로 선진국과의 격차가 클수록 생산성 증가도 빠르게 할 수 있다. 이를 ‘후발국의 이익(advantage of backwardness)’이라고 하며, 이에 입각한 성장을 ‘따라잡기 성장(catching-up growth)’ 혹은 ‘추격형 성장’이라고 한다.

개도국이 점차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게 되면 선진기술 모방이 점차 어려워져서 더 이상의 추격형 성장이 어려워지고, 생산성 증가를 위해서는 창조적 혁신이라는 훨씬 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과거 박정희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추격형 성장을 추진할 때는 모방에 의한 기술발전을 쉽게 이룰 수 있었지만, 산업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1990년대부터는 더 이상 모방에 의존하는 기술발전만으로는 충분한 생산성 향상을 기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기술발전 체제가 창조적 혁신 중심으로 전환이 되었어야 하는데 이러한 전환이 매우 더디고 불충분해서 혁신이 부진하였고, 이는 한국경제가 속수무책으로 조로증에 빠져들게 된 핵심 원인이 되었다.

창조적 혁신이야말로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성장의 원천이다. 인적 자본이나 물적 자본 축적에 입각한 성장은 한계에 부딪치고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기술의 발전도 그것이 모방에 의존한 것일 때는 점차 그 가능성이 소진되고 만다.

끊임없이 새 것을 창조하는 혁신은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활력을 높여주는 회춘의 힘으로 작용한다.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을 높여줌으로써 인적 자본 축적의 양적인 한계와 물적 자본 축적의 수확체감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경제가 도약 단계를 지나 성숙단계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인구, 자본, 기술발전이라는 세 가지 성장 동력이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일정하게 하락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노화현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경제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혁신의 힘으로 노화현상을 막아내고 성숙한 경제로서 성장을 지속하느냐, 아니면 혁신을 충분히 하지 못하여 노화현상이 계속 진행되고 조로증에 걸리게 되느냐의 갈림길이다. 노화된 경제의 핵심적인 특징은 노동 대비 자본의 과잉축적으로 자본생산성이 낮은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본축적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자본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과잉축적이라는 것은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에 낮아지는 자본의 생산성을 다시 끌어올리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힘은 인적 자본 개선에 의한 실효노동의 증가와 기술발전에 의한 생산성 증가다.

앞서 거듭 강조했듯이 인적 자본 개선이나 선진 기술 모방은 경제가 성숙할수록 그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혁신만이 궁극적인 회춘의 묘약이다. 이 약을 먹지 못하는 경제는 성숙의 단계에서 노화의 단계로 접어들고 만다.

사실 한국의 피케티 비율 혹은 과잉축적 문제가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크다는 것은 한국의 일인당 자본스톡이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많아서가 아니다. 총요소생산성이 낮아서 자본이 소득을 만들어내는 능력, 즉 자본의 생산성이 낮은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노동생산성도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절반이 채 되지 않는 현실이다.

따라서 과잉축적은 결국 혁신부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항상 투자 부진을 문제의 근원으로 진단하고 법인세 인하나 규제완화 등을 통해 투자를 증대하여 성장을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취해왔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오히려 과잉축적의 문제는 심화할 뿐이었다.( 유종일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유종일은 이 신간에서
유종일은 이 신간에서 "경제민주화를 통해 소득재분배와 공정경쟁의 시대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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