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작가·칼럼니스트)
김태현(작가·칼럼니스트)

“혹시 공장장님(김어준)께서도 조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과연 그런 적이 없었는지 KBS ‘미투’에서 취재해 봐야겠네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 운동이 정계를 강타하기 직전인 지난달 16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KBS 박에스더 기자의 발언이다. 

평소라면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길 만큼 대수롭지 않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의 여파는 박 기자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발언 이후 ‘박에스더 기자를 처벌해 달라’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진행자인 김어준에게 사실상 모욕을 줬다는 게 청원의 핵심 주장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투 운동이 애초 취지와 달리 남녀의 성대결 등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양새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누리꾼들의 댓글 몇 개만 살펴보더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금세 간파할 수 있다.

‘남성들은 지금 사실관계를 확인할 사이도 없이 생매장당하고 있다.’ -dyfo****-

'미투는 성차별 운동이고, 페미니즘은 성차별 사상이다.' -호**-

‘남성들이 미투에 거부반응을 느끼는 이유는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기 때문이다. 유투는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미투는 페미니즘의 또다른 재현이다.’ -도***-

이런 현상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원인에 대한 진단 없이 폭로전 양상만 부각되는 현실, 그리고 미투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주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먼저, 남녀의 성과 관련된 데이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자들에게서 과학적인 원인에 대해 들어보자.

미투의 원인 : 긍정오류

진화심리학은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로부터 출발해 데이비드 버스David M. Buss,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등 세계적인 석학을 배출해 낸 신생학문 분과다. 한때 ‘통섭consilience’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학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석학들이 미투 운동을 보는 시각은 ‘긍정오류와 부정오류’로 모아진다. 미투 운동의 배경에는 이성에 대한 ‘성적인 행위’가 존재하고, 성적인 행위의 목적은 번식이나 성적 쾌락이라서 그렇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오류란, 자신에게 성적 관심이 없는데도 있다고 잘못 추론하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반대로 부정오류는 상대 이성이 성적 관심이 있는데도 잘못 추론하는 심리현상이다.

긍정오류를 발휘하는 것이 부정오류를 발휘하는 것보다 자손 번식이라는 진화론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되도록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것이 주목적인 남성은 긍정오류를, 자신의 안전과 새끼의 양육이 번식 못지않게 중요한 여성은 부정오류를 발휘하도록 진화해왔다.

이런 사실은 남성들이 왜 여성이 웃거나 눈을 마주치거나 가벼운 신체 접촉을 해오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관심이나 호의가 있다고 잘못 추론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준다.

그렇다고 남성들만 긍정오류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헬렌 피셔Helen Fischer의 연구에 따르면, 미혼 여성들 역시 긍정오류를 적극 활용하며, 심지어 결혼 상태인 중에도 35%에 이르는 기혼 여성들이 다른 남성을 향해 추파를 던진다. 물론, 결혼 중인 남성이 긍정오류를 발휘하는 비율은 75%로 매우 높다.

미투 운동의 저변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현실의 배경에는 이처럼 긍정오류를 발휘하려는 인간의 성적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보다 높은 권력관계에 있을 경우, 긍정오류가 허용 한계치를 넘거나 강제될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변질의 징조

미투 운동이라는 현상의 본질은, 위계에 의해 상대 이성의 신체적 자유를 구속하거나 성적 폭력을 가하는 비인권적 행위를 말한다. 이는 폭로가 미투 운동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위계, 즉 불균등한 권력관계가 있어야 하고, 실제 성적 폭력 여부가 규명되어야만 한다는 의미다.

변질의 징조는 이 두 가지 요건에 대한 남성들의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윤택, 김기덕 감독을 포함한 문화계 인사들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대상으로 한 폭로전이 이어질 때,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 역시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정봉주 전 의원과 배우 곽도원, 가수 김흥국이 도마에 오른 지금, 남성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모든 폭로가 불균등한 권력관계 및 실제 성적 폭력이라는 두 가지 필요조건을 갖추지는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에는 미투 운동과 유사해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과거의 몇몇 사례들이 작용하고 있다. 인기 개그맨이었던 주병진까지 갈 것도 없다. 유흥업소 직원으로부터 성폭행으로 고소당했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가수 겸 탤런트 박유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으로부터 성폭행으로 고소당했다가 무고임이 밝혀진 배우 이진욱, 마사지업소 직원으로부터 성폭행으로 고소당했다가 무혐의 처분된 엄태웅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변질의 첫 번째 징후는 위계의 성립 여부다. 정봉주 전 의원과 배우 곽도원의 경우, 실제 성폭행 여부는 불문하고, 위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의 정서다. 권력의 어떤 상하관계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변질의 두 번째 징후는 남성들의 시각이 과거 몇몇 사례로 인해 여성의 직업에 맞추어진다는 점이다. 가수 김흥국을 고발한 A씨의 직업(보험설계사)이 때 아닌 주목을 받는 이유다.

변질의 세 번째 징후는 실제 성적 폭력의 존재 여부다.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수사가 진척되면 보다 정확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겠지만, “얼굴을 들이밀었다”는 폭로자의 주장만으로는 성적 폭력의 실행 여부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변질의 네 번째 징후는 안희정 전 지사 이후 등장한 폭로들이 모두 진위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배우 곽도원의 경우, 이윤택 감독을 고소한 고소인단 중 4명으로부터 금품을 요구받았다는 주장에 녹취록 존재 여부까지 제기되어 진위 공방으로 접어든 상태다.

변질의 다섯 번째 징후는 미투 운동이 성대결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재 모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는 여성의 성차별 소설인 ‘1982년생 김지영’에 대응하는 ‘90년생 김지훈’이라는 소설을 쓰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SNS에는 미투와 페미니즘에 대항해 남성차별을 부각시키려는 ‘유투#you too’ 계정이 생겨나기도 했다.

미투 운동은 성적 본능의 사회적 투쟁

긍정오류라는 개인의 성 본능이 사회성이라는 외투를 입으려는 지금, 위에 언급한 징후들을 방치한다면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사회적으로 고발하면서 인권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미투 운동은 변질될 공산이 크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선정적이고 폭로적인 기사의 상품성을 버리지 못하는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다. 사건의 전말은 차치하고라도,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폭로를 다룬 프레시안의 보도는 결정적인 진술이 수차례 바뀌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정도를 불문하고, 사건에 대한 팩트 체크가 선행되지 않는 한, 그리고 두 가지 성립 요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한, 미투 운동은 수많은 진위논란만 남긴 채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말 것이다.

다음으로, 위계에 의한 성폭행이 그간 우리 사회에 관행으로 엄존했다는 것, 그리고 여성들의 그릇된 폭로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관행이나 과거의 그릇된 전례를 빌미삼아 성대결로 몰아가려는 일부 남성들의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을 결합하려는 일부 여성들의 시도 또한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속성 상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혹시라도 남성의 미투 폭로가 나온다면 페미니즘이 꽤 곤란한 상황에 처할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미투 운동이 몰고 온 충격을 그저 남녀의 문제로 들여다보던 개인적 습관에서 벗어나,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성적 본능의 사회적 투쟁이라는 또 다른 틀로 바라보려는 성숙함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성폭력의 배후에는 성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 그 본능이 적나라한 모습으로 드러난 현실, 그 현실을 이제는 화들짝 놀란 자라 가슴 쓸어내리듯 가라앉히고, 성대결이 아닌 성숙한 사회성으로 바라볼 일이다. 성대결에서 설사 한쪽이 이긴다 한들, 승자 역시 패자와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닌가.

미투 운동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양식과 상식은 파격적이다. 

미투 운동이 한창인 지금, 위에 거론된 진화심리학은 남성 중심 마초적 본능의 발로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뭇매를 맞을만 하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주목하는 지점은 성적 관심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지, 본능에 의한 성범죄의 두둔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전 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미투 운동은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환경, 특히 성적인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가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녀의 상호 존중에 대한 의식 변화와 양성평등 문화 정착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문화인류학적으로도 큰 의의를 갖는다.

공장장과 방송 기자의 대화는 우리 시대에 표출되는 성을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고, 인간, 특히 남녀의 성적 특성이 공히 존중받는 사회로 향하는 ‘진화의 길목’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김태현 작가는 칼럼니스트로서 글을 쓰고,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와 국방부, 육군본부, 기업, 교도소 등의 요청으로 강연을 다닌다. KBS, MBC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과 종교방송, 유명 팟캐스트 맘마이스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치와 경제, 복지에 대해 알리고 있다. 인천 남구청의 인권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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