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보험을 가입하는 목적은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받기 위한 것이고, 보험사가 보험을 판매하는 목적은 영리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보험을 가입하더라도 실익이 없고, 보험사들이 보험을 판매하더라도 이익이 발생되지 않는다면 이런 보험이 정상적으로 판매되거나 가입할 이유가 없다. 다름 아닌 ‘유병자 실손보험’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보장(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며 오는 4월부터 ‘유병자 실손보험’ 출시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주요 손해보험사를 필두로 유병자 실손보험이 시장에 선 보일 전망이다.

유병자 실손보험은 현행 실손보험과 달리 경증 만성질환자나 유병자도 가입이 가능한 보험이다. 그 동안 실손보험 가입이 어려웠던 소비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보험 가입 심사 항목을 18개에서 6개 항목으로 축소하고, 치료 이력 심사 대상 기간을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는 등 문호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보험사와 설계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반신반의하고 있다. 현행 실손보험의 손해율 악화로 적자가 불가피하고, 갱신보험료가 매년 급격 인상되어 가입자들의 저항이 거센 상황인데, 유병자 실손보험 까지 판매하게 되면 불에 기름을 뿌리듯이 손해율 악화가 가중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130%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실제로 쓴 의료비를 보험사가 지급하는 보험으로, 수 년 전부터 비급여 과잉 진료로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소비자와 보험사, 금융위의 골치거리 보험이다. 일부 보험사는 판매를 중지한 경우도 있다. 

이에 금융위는 지난해 4월 손해율이 높은 치료항목을 특약으로 분리하여 기본형에 특약을 선택 부가할 수 있도록 상품을 변경하였고, 올 4월부터 실손의료보험 끼워팔기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 아쉽다.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2017.8.9)'과 맞물려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가 시급한데, 금융위 발표대로 수월하게 이행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등장하면 비급여 항목은 늘어나게 마련인데, 발표대로 매년 이행되더라도 비급여 표준화는 요원하다. 더구나 의사들이 비급여 전환에 대하여 전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집단행동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밥그릇을 잃을까 두려워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가 유병자 실손보험을 보험사들에게 출시를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 하다. 소비자들은 보험 가입이 아니라 보험금 타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금융위는 가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설령 가입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금융위가 당초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유병자 실손보험은 50세 기준 일반 실손보험 대비 남자 1.68배, 여자 1.66배 수준으로 비싸다. 가입자들은 유병자, 고령자들이기 때문에 치료비의 30% 부담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이 저소득층인 이들은 수입이 적거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갱신보험료에 대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보험사들도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판매를 기피할 것이 예상되므로 과거의 정책성 보험들처럼 자칫 금융위의 실적 보고용, 생색내기용 보험으로 전락될 수 있다.

소비자에게 득이 되지 않고, 보험사들에게도 실익이 없는 보험이라면 금융위가 나서서 출시를 강행할 이유가 없고 압박할 이유도 없다. 설령, 출시하더라도 얼마 가지 못해 유명무실하고 실패한 보험으로 전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하여 나서는 것은 박수 받을 일이지만, 이를 명분으로 소비자와 보험사에 실익이 없어 보이는 유병자 실손보험의 출시를 강행할 일이 아니다. 유병자 실손보험 출시는 보험사에게 부담이 크고, 손해를 감수하며 판매하라는 것이므로 ‘갑질’에 해당 한다고 본다. 보험사들은 올해도 현행 실손보험의 보험료를 인상했어야 했지만, 금융위 엄포가 무서워 보험료 인상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일에는 항상 순서가 있다. 유병자 실손보험이 아니라 현행 실손보험을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금융위가 약속한 제대로 된 보험시스템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소비자들이 실손보험료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바짝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과잉 진료 방지를 위하여 자동차보험처럼 실손보험료 차등제를 전면 도입해서 적용하고, 보건복지부와 협의해서 과잉진료 병의원 파파라치제도를 실시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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