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영의 플라세보] '救國友情' 유성룡과 이순신을 보라
[송도영의 플라세보] '救國友情' 유성룡과 이순신을 보라
  • 송도영(시사비평가) (webmaster@straightnews.co.kr)
  • 승인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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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 앞 신호등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신호등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다.

중국 고전과 사례는 많이 접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귀한 이야기는 오히려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그 대표적 일례로 우정(友情)하면 춘추시대 초 성군으로 꼽히는 제의 환공은 자신에게 화살을 날렸던 관중을 전격 기용해 경쟁하고 있던 제후국들을 깜짝 놀라게 한 배경 에는 두 사람의 우정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죽마고우였던 관중과 포숙은 대권후보가 난립하던 시절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포숙이 보필하던 환공이 대권을 잡으면서 관중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포숙이 쓴 유명한 관중의 추천사로 관중을 구하게 된다.

그 추천사 내용을 보면 "환공이 제나라만 다스리려면 저(포숙)으로도 충분하겠지만 패자가 되어 여러 제후를 통솔하려면 관중 없이는 안됩니다." 환공은 포숙의 추천을 받아 들여 관중에 대한 묵은 원한을 잊고 관중을 발탁하게 된다.

관중과 포숙 두 사람의 우정을 '관포지교'라고 명명한 것은 사마천이며 원전은 '사기'이다. 중국에서 2500년 전 관포지교 우정의 사례는 잘 알려져 있으나 500년도 되지 않은 나라를 구한 유성룡과 이순신의 우정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유성룡(1542년생)과  이순신(1545년생)은 세살 차이다. 서울 건천동(현 중구 인현동)에서 두 사람은 어린시절 죽마고우로 함께 자랐다. 이순신의 집안이 어려워자자 충청도 아산으로 이사하게 된다. 유성룡의 권유로 이순신은 문관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의 벼슬길을 걷게 되는 것은 운명적이었다.

유성룡의 권유가 없었더라면 이순신은 문관집안 관례대로 문관의 벼슬길을 갔을텐데 친구 유성룡의 권유로 이순신이 무관의 길을 선택한 것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이순신이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다면 임진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이순신이 무관의 길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임에 틀림없고 나라의 홍복이 되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에 대해서 안타까워한다. "조정에서 이순신을 추천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과에 급제한 후 10년이 넘어도 벼슬이 승진되지 않았다." 유성룡이 이순신에게 무과를 권유해 무인의 길을 걷도록 하고 유성룡이 이순신을 파격적 발탁인사가 없었다면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지키고 구한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무과에 급제해 무관의 길을 걸었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하고 올곧은 성격탓으로 승진에서 번번히 누락되고 여려차례 승진 기회를 날리고 변방을 떠돌았다. 이순신은 부지런하고 일만 열심히 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1년 전 좌의정이었던 유성룡은 정읍 현감으로 내려가 있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발탁한다.

이순신은 벼슬이 종6품에서 정3품으로 6단계 수직상승하는 벼락 감투를 받게되고 요즘말로 파격적인 '깜짝인사'를 발표하자 말 많은 주자학 대소신료의 반발과 반대가 빗발쳤으나 유성룡은 흔들리지 않고 이순신의 능력을 믿고 밀고 나갔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적들이 돌격해 오지 못하는 것은 순신의 힘이야."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유성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자 30개를 영의정(유성룡)에게 보냈다. 1595년 9월 17일. 좌의정 유성룡이 편지와 함께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란 책을 보내 왔다. 수륙전, 불로 공격하는 전술 등에 관한 것이 낱낱이 설명돼 있다. 참으로 만고에 보기 드문 뛰어난 저술이다. 1592년 3월 5일."

"순변사에서 유정승(유성룡)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 왔다(유성룡은 1607년에 사망했으므로 잘못된 소식이었다). 이는 필시 유정승을 질투하는 자가 말을 만들어 그를 훼손하려는 것이리라. 분한 마음을 이길 길 없다. 저녁에 마음이 매우 어지러웠다. 혼자 빈 동헌에 앉아 있으니 마음을 걷잡을 길 없고 걱정이 심해져서 밤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 유정승이 돌아 가셨다면 나랏일을 어떻게 할까 1594년 7월12일."

유성룡과 이순신의 아름다운 우정은 벼랑끝에 선 나라를 구한 빛나는 우정이다. 유성룡과 이순신의 우정과 무한 신뢰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커다란 힘이었다.

조선 중기 최고의 경세가 유성룡과 최고의 명장 이순신의 만남과 우정. 유성룡이 없었다면 이순신은 평범한 군인이었을 터. 이순신이 아니었더라면 조선은 멸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을 앞두고 임금(선조)에게 보낸 장계다. "상유십이미신불사(尙有十二微臣不死)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나이다. 신이 죽지 않은 한 적들은 감히 저희들을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대통령 개헌 발의, 세계 무역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를 두고 여야 정치인들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 임진전쟁 당시 나라를 구한 유성룡과 이순신 두 사람간의 우정을 살펴 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다. 대한민국 모든 정치인들이 유성룡과 이순신과 같은 애국심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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