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사건 공론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서울의 한 미용업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살해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뉴시스
지난해 8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사건 공론화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서울의 한 미용업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 살해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뉴시스

페미니즘은 도대체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갖은 논란과 감정 소모로만 보이는 갈등을 빚어내는 것만 같은데도 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의 권리 신장만을 목표로 한다는 편견을 깨고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따라 노동, 환경 문제와 연계된다. 

페미니즘은 수천 년간 남성 중심적으로 쌓아올려진 세계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성이 참정권을 얻고 법리상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된 것은 역사가 쓰여진 시대 전체를 놓고 볼 때 굉장히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페미니즘은 늘 급진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공고하게 이뤄진 체제에 균열을 내는 것이기에 논란을 빚어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남자라서 또는 여자라서, 생득적인 신체적인 특징이 행동과 자아실현과 사회에서의 행동을 제약하는 사회가 과연 ‘인간적인’ 삶을 선사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서 우리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주제들을 통해 지금 가장 민감한 이슈, 페미니즘을 톺아보고 있다. 대중문화, 촛불 집회, 대선 주자 검증 등등, 페미니즘이 딴죽 걸지 않는 부분이 없어서 도대체 왜 번번이 여성혐오라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획된 책이다.

페미니즘이 등장하는 공간은 데이트 폭력으로 문제시되는 연인 간의 사적인 관계일 수도 있고, 성평등 이야기에 꼭 따라 붙는 군 복무 문제일 수도 있고, 임금 격차가 문제시되는 노동 현장일 수도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돌아볼 수 있다.

이에 최근 페미니즘 열기의 연원이 된 메갈리아로부터 군대, 데이트 폭력, 섹스, 성매매, 노동, 속물론 등 우리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페미니즘의 쓸모를 묻는다. 그 답은 여성학 연구자뿐 아니라, 경제학 교수, 신문기자, 정치인, 여성운동 활동가, 섹스 칼럼니스트, 대중문화 연구자 등 해당 분야 전문가 12인의 목소리로 묶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익숙한 것들에 대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면 ‘코르셋’과 ‘맨박스’로부터 탈피한 새로운 인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필자들은 모두 ‘페미니즘이 여성뿐 아니라 모두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페미니즘은 메르스 갤러리를 통해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이 활성화된 2015년을 원년으로 부흥기를 맞았다. ‘미러링’이라는 방법론과 이후 생성된 계파들의 급진성 및 도덕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메갈리아’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때문에 책의 서두는 메갈리아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다. 먼저 여성학 연구자 윤보라는 현재 래디컬 페미니즘, ‘이상한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메갈리아의 탄생 배경을 소개한 뒤 메갈리아가 페미니즘 운동의 맥락에서 갖는 의의를 모색한다.

메갈리아는 ‘미러링’ 전략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온라인 공간에서의 발화를 성별을 뒤바꿈으로써, 일종의 권력인 ‘재미’의 주체가 되어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친근한 언어로 페미니즘을 전파했다. 

이어 ‘군무새(군대와 앵무새의 합성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있어 짝패처럼 따라붙는 군 문제를 다룬다.

한국문학 연구자 조서연은 여자가 군대를 가는 것이 진정한 성평등의 실현이 되는지의 문제에 대해 ‘여성의 군 복무’를 설정으로 삼는 웹툰 〈뷰티풀 군바리〉같이 익숙한 대중문화 장르뿐 아니라 실제 여군이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이나 일본의 사례를 들어 여성의 군 복무가 군대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로 변질되어 실제 성 평등에는 큰 보탬이 되지 못함을 지적한다.

나아가 지난 TV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전시된 여성 출연자들의 모습을 통해 군대에서의 여성은 동등한 군인이 아니라 가부장제에 온전히 포함된 모습으로 나타남을 설명한다. 

일상 속 페미니즘 중 가장 피부에 와닿는 문제인 데이트 폭력도 다룬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는 김보화는 데이트 폭력 문제를 왜 페미니즘 관점에서 공부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여성의 ‘싫어’는 동의를 의미한다”와 남자의 박력에 대한 신화가 작금의 방화·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데이트 폭력 문제를 어떻게 방기해왔는지, 그리고 데이트 폭력과, 그에 수반되는 데이트 관계에서의 성폭력이 모두 사회적으로 주입된 후천적인 ‘남성성’의 확인으로 나타남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박이은실 지음(은행나무, 2017)
「그럼에도, 페미니즘」 박이은실 지음(은행나무, 2017)

또한 지난 2015년 6월을 물들였던 청년 진보 논객과 노동 운동가에 대한 데이트 폭력 폭로 그 이후를 들여다본다. 스스로에 대해 의심하고 지성적으로 생각하여 행동할 법한 ‘진보 논객’조차 왜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가 되며, 오히려 폭로 이후를 대처하는 진보 진영 측에서 실망스러운 반응들이 왜 나타나는 것일까.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김홍미리는 페미니즘에 대해 ‘판단중지’하고 그 문제를 페미니스트에게 미루는 남성들에게 이미 젠더화된 공론장을 낯설게 보고 페미니즘을 함께 고민하자고 손을 내민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가 최순실 게이트로 결정타를 맞으면서 ‘여성 정치인’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김은희는 18대 대선 당시 제기되었던 박근혜가 정말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더불어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석패한 힐러리가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와 경합을 벌일 때 빚어졌던 여성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면서,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의 정치가 아닌 진정한 페미니즘 정치가 무엇인지 논한다. 

여성의 관점에서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되었다”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이 글도 주목된다. 남자들의 편견을 논평한 뒤, 여성이 여성의 만족을 위한 관점에서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따져본다. 

성별 이분법에서의 퀴어의 위치도 묻는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인 나영이 썼다.

루소가 “국왕이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누구에게나 천부인권이 있으며, 저 미개한 아프리카 흑인들조차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만은 예외다”라며 천부인권론에서도 누락시켰던 여성이 백인 여성을 시작으로 유색인종에 이르기까지 인권을 쟁취해온 역사를 들어, 성별 이분법에서의 여성에 합류되지 못한 여성의 존재를 지적한다. 

여성학자 박이은실은 성매매 문제를 노동의 관점에서 푸는 성노동 담론을 소개한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제정 이후로 성산업이 더욱 음성화되면서 성산업 노동자들을 이전보다 더한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며, 오히려 성매매 문제를 가치중립적인 노동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성매매로 인해 배태되는 문제들을 경감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에 성노동에 대한 편견 열 가지를 소개한 뒤 이를 반박함으로써 이해를 더했다. 

성매매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보도해온 기자 박은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사례로 들면서 성매매 비범죄화 담론의 실제적 한계를 지적한다.

박은하는 성매매 현장을 탐사해온 경험을 살려 포주의 존재가 성매매 구조에서 성판매 여성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실제 범죄의 영역에서 벗어난 ‘룸살롱 1차’에서 이뤄지는 성적 서비스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주면서 성매매의 매커니즘을 단순히 성교의 발주와 수주로만 볼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경제학과 교수 홍태희는 노동 현장에서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성평등 논의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제기되는 임금격차와 유리천장 문제뿐 아니라 직장 안에서의 처우와 경력 단절 등을 들어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설명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노동시장에서 남자라서 또는 여자라서 고통받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해 생존에서조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음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적시한다. 

여성혐오의 가장 오랜 레파토리인 속물론에 대해서도 다뤘다. 스노비즘은 비단 여성만의 특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여성들은 ‘된장녀’, ‘김치녀’와 같은 멸칭을 얻으며 그 속물 근성을 공격당해왔다. 여성학 교수 엄혜진은 이 신화에 대해 자본주의에 뒤늦게 참여하게 된 여성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하기에 소비 자본주의의 타깃이 되어 ‘속물’이라는 개인적인 수준으로 폄하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렇듯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대중문화 연구자 손희정의 ‘진짜 페미니즘’ 이야기로 매조지된다. 1990년대 ‘그 페미니즘’이라는 명명으로부터 2015년 ‘무뇌아적 페미니스트’라는 발언까지, 페미니즘은 ‘맞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는 좀 이상해’라는 사람들에 의해 번번이 그 적통을 의심받아오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페미니즘 이론을 소개해온 책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쓸모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회의함으로써 역으로 페미니즘의 밑바탕을 바라보는 정론일 수 있겠다.

더불어 페미니즘서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현장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이야기하기에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서가 되기도 한다. 평등을 담보하는 정의를 마주칠 수 없어 모두가 참담해지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여자라서 또는 남자라서 지는 의무와 불행이라도 덜 수 있기를 바라며 인간의 얼굴을 한 페미니즘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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