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自由)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이라는 의미가 첫 번째로 나온다. ‘자유’를 영어로 번역하면 프리덤(freedom), 리버티(liberty) 등의 단어와 만나게 되는데 특히 liberty라는 단어의 어원이 재미있다.

라틴어 리버(liber)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사회적‧정치적으로 제한 받지 않는다’ ‘빚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와 함께 ‘무릎 꿇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들어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왕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한다. 무릎 꿇지 않을 자유(liberty)는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남자가 무릎을 꿇는 경우는 딱 두 가지인데 신 앞에서와 청혼을 할 때다. 차이가 있다면 신 앞에서는 두 무릎을 모두 꿇고, 청혼을 할 때는 한 무릎만 꿇는다. 결혼이라는 행위가 ‘자신의 자유를 절반쯤 포기하는 것’임을 고대 그리스인들도 알았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자유민주공화국 안의 反자유’

freedom이 자기 멋대로 행동할 자유를 뜻하는 것이라면 liberty는 보다 고차원적인, 누구에게도 구속 받지 않는 자유인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말할 때의 ‘자유’는 freedom보다는 liberty에 가깝다.

그런데 막상 한국인들의 행태를 보면 liberty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 힘들 때가 많다.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재단하면서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공동 평양공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조용필, 이선희 등 국내 최고의 가수들이 이번 평양 공연에 참가한 가운데 국내 최고의 연예 기획사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걸그룹 ‘레드벨벳’도 공연자 명단에 포함돼 많은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들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일이었다.

우리 공연단은 1일과 3일 평양에서 단독공연에 이어 남북합동공연을 펼쳤다./@뉴시스
우리 공연단은 1일과 3일 평양에서 단독공연에 이어 남북합동공연을 펼쳤다./@뉴시스

레드벨벳 멤버 중 조이는 현재 ‘위대한 유혹자’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출연 중인 상태다. 하루하루 촬영 스케줄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까닭에 결국 SM엔터테인먼트는 ‘평양공연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철없는 대중들이 맹렬한 기세로 조이와 에스엠엔터테인먼트를 욕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난의 논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옹색하기 그지없는 것들뿐이었다. ‘나랏일 하는데 너네 같은 딴따라(회사)가 까다롭게 나온다는 게 말이 되냐’ ‘얼마나 잘난 드라마를 찍기에 평양공연을 거부할 수가 있느냐’는 등이었다.

실제로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위대한 유혹자’의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시청률이라는 ‘숫자’를 근거로 이 드라마의 가치를 재단하는 건 지나치게 천박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단어를 유행시켰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김정은과 악수를 나눈 뒤

나는 평양공연이라는 국가적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 관계없이 묵묵히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던 에스엠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이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는 게 아닐까.

오히려 조이를 제외한 레드벨벳 멤버들이 김정은을 만나 악수한 것을 두고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밝힌 걸 보고서 약간 뒤틀린 감상이 들었다. 그녀들을 종북으로 매도하는 것도 실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김정은이 마치 아주 위대한 인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추켜세우는 세간의 시선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김정은이 한 것이라고는 김정일의 아들로 태어난 것밖에는 없다. 그게 그의 인생에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의 권력은 부당하게 세습된 것이다. 시장에서 선택 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했던 (지금도 하고 있는) 삼성그룹 이건희-이재용 부자는 그렇게 욕하면서 김정은을 만나 악수한 경험은 ‘영광’이 되는 게 과연 정상적인 일일까?

스트레이트뉴스의 귀중한 지면에서 안보 강연을 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해프닝은 우리나라에서 자유(自由)의 개념이 얼마나 잘못 인식돼 있는지를 요약해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그저 제멋대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만의 원칙을 조용하게, 그러나 공고하게 지키면서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은 채 원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거리에서, TV에서, 인터넷에서 너무 쉽게 소비되고 있는 이 두 글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이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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