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르포-군산 GM현장③] 자사 이익에 트럼프정치 덧댄 철수 엄포
[ST 르포-군산 GM현장③] 자사 이익에 트럼프정치 덧댄 철수 엄포
  • 김태현 선임기자
  • 승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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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조선소 폐쇄에 이어 한국GM 군산공장 사태로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군산, 스트레이트뉴스는 GM 군산공장과 지역경제의 현주소, 그리고 GM사태의 향후 방향성을 가늠해 보는 르포르타주를 기획했다. 이번 르포르타주는 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목차]
① 위건 부두와 군산 부두
② 한국GM의 더티 플레이
③ 한국GM의 가려진 민낯
④ 더러운 책략의 제물, 군산공장
⑤ 변화의 길목에 남겨진 시민들

군산 오식도동 분멀길과 요죽길 사이를 가로지르는 대로변,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시간을 보니 오후 5시가 넘었다.

평소 같으면 거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업주들은 저녁 장사 준비로 바쁜 시간대지만, 인적 끊긴 보도에는 휑한 바람만 분주하다. 간간이 대형 트럭과 승용차 몇 대만 어슬렁거리는 왕복 6차선 도로, 신호등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 정도다.

오식도동 대로변 식당가 풍경 ⓒ스트레이트뉴스
오식도동 대로변 식당가 풍경 ⓒ스트레이트뉴스

서너 집 건너 한 집에 임대 팻말이 붙어 있다던 기사들과 달리, 한 집 건너 서너 집이 장사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장사를 접은 지 한참이 지난 듯 간판조차 없는 집들도 꽤 눈에 띈다.

썰렁한 거리를 걷다 현관문이 열려 있는 식당 한 곳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문 옆 창문에 드리워진 블라인드 틈새로 기자를 내다보고 있었다.

“에휴... 저도 이제 장사 접을까 싶어요. 길 양쪽 원룸촌 가봤죠?”

3년 전 시내에서 오식도동으로 영업장을 옮겨왔다는 김지숙(49)씨의 절망 섞인 푸념이다.

“그때만 해도 제가 그렇게 늦은 건 아니었어요. 원룸 건물들 막 올라가고 그럴 때였으니까. 좀 멀리 보고 투자를 많이 했는데...”

그의 말대로 100평이 넘어 보이는 식당의 규모뿐 아니라 인테리어에도 투자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이후 조선소가 폐쇄될 때 다섯 명이던 종업원을 세 명으로 줄였고, 올해 2월에 다시 두 명을 더 내보냈다고 했다.

근로자들이 떠나 공동지구로 변한 분멀길 원룸촌 거리 ⓒ스트레이트뉴스
근로자들이 떠나 공동지구로 변한 분멀길 원룸촌 거리 ⓒ스트레이트뉴스

“우리 집 단골 중에 GM에 납품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근데 요즘은 아예 씨가 말라버렸어요. 저도 저지만 그 사람들은 또 다들 어디 가서 뭘 해먹고 사는지, 참... GM 조금 못가서 보면 납품업체들이 많이 있어요. 거기 한번 가 보세요.”

한국GM 군산공장 협력업체가 밀집해 있다는 동장산길로 접어들었다. 들어서자마자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차량 부품 운송용 트럭들이 눈에 들어왔다.

운행을 멈춘 GM 협력업체 트럭들 ⓒ스트레이트뉴스
운행을 멈춘 GM 협력업체 트럭들 ⓒ스트레이트뉴스

“이 차들은 그냥 계속 서 있지 뭐. 은행에 차압당했는데 혼자 지키고 앉은 사람도 있고, 도망간 사람도 있고... 이 동네 완전 작살났어유.”

트럭 옆에서 만난 권근두(59)씨의 말이다. 어디서 근무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턱으로 도로 맞은편 공장을 가리켰다.

“난 청소업자유. 저 공장 정리 중이거든. 저기 사장도 여기서 장사한 지 한 10년 된다는데, 혹시나 하고 기다리더니만 완전히 끝장이 났대유.”

그가 가리킨 C업체에서는 인부 세 명이 트럭에 대형 자루를 싣고 있었다. 쓰레기 자루가 분명했다. 공장 마당에는 완성된 부품을 납품할 때 사용하는 각종 거치대들이 녹이 슨 채 쌓여 있었다.

공장 정리 중인 C업체 ⓒ스트레이트뉴스
공장 정리 중인 C업체 ⓒ스트레이트뉴스

“내일은 우리가 요 옆 공장 쓰레기 치우는 날인데, 앞으로 한 사흘 후면 이 공장 마당도 옆에처럼 깨끗해 질 거유. 내일 쇳덩이 차가 온다 그러니까.”

공장 정리가 끝나가는 A업체 ⓒ스트레이트뉴스
공장 정리가 끝나가는 A업체 ⓒ스트레이트뉴스

청소 중인 인부들에게 다녀온 권근두씨가 담배를 꺼내 물며 물었다.

“여긴 그렇다 쳐도, 공장이 창원에도 있고 부평에도 있잖어유. 그러믄 얼른 얼른 해서 빨리 차를 맹글어야지, GM은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래유?”

일부 보수 언론들은 한국GM이 경영난에 빠진 근본 이유를 지적하는 대신, 노조의 책임을 부각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들고 회사 빚은 쌓이는데 노조가 자신들 생각만 하고 있다는 논리다.

특히 지난 6일 성과급 지급 무산 소식이 전해진 후, 민심 역시 노조에 호의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말로 노조의 책임이 큰 것일까?

한국GM의 요구사항

‘바지 사장’이라는 평가를 듣는 카허 카젬 신임 사장이 사태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지난달 26일 GM의 글로벌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분 배리 엥글(Barry Engle, 53) 사장이 내한한 바 있다. 그는 한국GM 노조와 비공개 면담을 가진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4월 20일까지 노사합의가 성사되어야 한다. 2차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 정리해고는 회사의 권한이다.”

그의 발언은 최근 전 직원 중 2,500여 명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특히 군산공장 노동자 1,500여 명 중 이미 신청한 800여 명 외에 680여 명의 미신청 노동자가 남아 있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군산공장 문제를 창원 및 부평공장과 연계시켜 임금단체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그는 “희망퇴직 위로금 등 지출해야 할 경비가 6억 달러(약 6,400억 원)에 이른다. 노사 간 합의가 안 되면 6억 달러를 투입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배리 엥글 사장은 회사의 자금난을 핑계로 군산공장 정상화 방안이나 남겨진 노동자 처리방안 등에 대한 최소한의 제안조차 하지 않은 채 공장 폐쇄를 기정사실화하며, 한국GM의 부도 처리까지 언급하는 협박성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다.

GM이 이처럼 강한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당장 이달부터 막대한 자금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지불되지 않은 720억 원의 성과급에 더해서, 이달 말까지는 희망퇴직 신청자들에게 5,000억 원가량의 위로금을 지급해야 하며, 월급과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 지난해 미루어두었다가 만기가 도래하는 7,000억 원 등 4월에만 도합 2조7천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GM은 어떤 대책을 갖고 있을까? 일단 한국GM 노사와의 임단협을 성사시켜 제조 여건 효율화를 달성한 후에, ‘최소 30만 대 신차 배정’ 및 ‘본사 차입금 27억 달러(약 2조9,200억 원)의 출자전환’을 조건으로 ‘한국GM 소재지의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및 ‘2대 주주(17.2%)인 산업은행의 유상증자 참여(5,000억 원가량)’를 계속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들은 배리 엥글 신임사장이 지난해 말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 산업자원통상부 백운규 장관,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및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과 연이어 가졌던 비공개 면담에서 이미 거론되었던 것들이다.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되면 단지조성 땅값의 절반이 정부 예산으로 지원되는 것은 물론, 7년간 법인세와 소득세가 면제되고, 이후 3년간 50%를 깎아준다. 거기에 노사협상 및 임단협 협상에서 고정비 대폭 절감에 성공할 경우, 한국GM의 경영상황은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지만, 어쩌면 군산공장에 내려진 폐쇄 결정이 철회될 수도 있다.

GM의 메리 바라(Mary Barra) CEO(자료:GM) ⓒ스트레이트뉴스
GM의 메리 바라(Mary Barra) CEO(자료:GM) ⓒ스트레이트뉴스

배리 엥글 사장의 제안에 우리 정부는 GM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검토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했고, 그러자 GM의 메리 바라 CEO는 곧바로 한국시장 철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후 다시 내한한 배리 엥글 사장은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직후 산업은행 회장, 산업자원통상부 차관,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며 공개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산업자원통상부 백운규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백 장관이 일정을 이유로 고사하자 부산까지 찾아가서 만났다는 후문이다.

GM 메리 바라 CEO의 한국시장 철수 언급은 자사의 이익만을 염두에 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발언의 배경에는 자사의 이익보다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큰 그림을 살펴보자.

한국GM vs 미국 디트로이트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무역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군산공장을 직접 언급했다.

“한국GM이 군산공장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GM은 곧 디트로이트로 돌아올 것이다. GM이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백악관회의 도중 군산공장을 언급하는 트럼프 대통령 ⓒfox.com
백악관회의 도중 군산공장을 언급하는 트럼프 대통령 ⓒfox.com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한국GM의 경영난을 “디트로이트를 살려내겠다”던 자신의 대선 공약을 지킬 절호의 기회로 여길 수 있다. 그동안 GM본사가 적자에 허덕이는 해외 사업장에 지원해 온 것을 강력히 반대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환호했고, 미국의 경제계 인사들은 GM의 한국시장 완전철수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완전철수란, 군산공장뿐 아니라 창원공장과 부평공장까지 폐쇄한다는 의미이다.

GM본사의 반응도 비슷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GM은 “군산공장 폐쇄 결정은 GM이 한국의 사업을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날만 새면 ‘한국과의 불공정한 무역’을 입에 올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회의 석상에서 군산공장 폐쇄를 기정사실화했고, GM본사는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한국GM의 구조조정 필요에 의한 것임을 확실히 했다. 이것이 정치적 큰 그림이다.

부도난 협력업체 담벼락에 나붙은 플래카드가 공허해 보인다 ⓒ스트레이트뉴스
부도난 협력업체 담벼락에 나붙은 플래카드가 공허해 보인다 ⓒ스트레이트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GM이 아예 한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도록 압박하고 있지만, GM본사의 의중은 완전철수보다는 한국GM의 구조조정에 가 있는 모양새다. 미 정부의 정치적인 이유와 GM본사의 경제적인 이유가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GM은 자사의 이익을 구현해내기 위해 정치적인 이유와 ‘먹튀’ 경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군산공장은 정치적, 경제적 이유의 공통분모가 가장 큰 희생양이다.

GM은 독일과 스웨덴, 호주 등지에서 ‘먹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한국에서도 동일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군산공장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예상대로 폐쇄로 굳어질까, 아니면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걸까? 그리고 GM의 전략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책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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