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만한 신간] 성군 세종 옆엔 황희가 있었다
[주목할만한 신간] 성군 세종 옆엔 황희가 있었다
  • 김세헌 기자 (betterman89@gmail.com)
  • 승인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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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를 안장하는 날에는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저마다 달려와 애통하여 조선이 전부 슬픔에 잠길 정도였다.'

오직 백성을 위해 평생을 가시고기 같은 삶을 살고 간 방촌 황희. 황희는 세종대왕과 함께 무려 18년간 영의정으로 재임하며 오직 백성들의 아픔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일하며 세종과 함께 백성을 위한 정치에 날실과 씨실이 되어 지치(至治)의 시대를 이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백성의 臣 황희」 오기수 지음(어울림·2018)
「백성의 臣 황희」 오기수 지음(어울림·2018)

황희는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모함과 계략으로 인해 유배를 당했다. 그럼에도 그의 성품과 자질을 알아본 세종의 결정으로 다시 돌아와 세종대왕 치리 시절 영의정 자리에 까지 오른다.

그가 선대의 왕들은 물론 세종대왕에 이르기 까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청렴함과 올바른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직위가 올라 갈수록 개인의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백성의 삶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백성의 신 황희>는 그가 어떻게 정치를 하는 것이 민의를 받들고 백성을 위하는 것인지 통해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청백리란 호칭이 있었다. 관직 수행 능력과 청렴(淸廉)· 근검(勤儉)· 도덕(道德)· 경효(敬孝)· 인의(仁義) 등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관료를 말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 총 217명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황희는 평생을 포의지사(布衣之士)(베옷을 입은 선비라는 뜻으로, 벼슬을 하지 아니한 가난한 선비를 이르는 말) 와 같은 삶을 살았다. 일인지하만인지상의 권력을 18년이나 지냈으면서도 황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죽을 때 물 한 모금이면 전부였다. 황희의 청렴하고 깨끗한 마음은 그의 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황희는 56세 때 남원으로 유배를 떠나 그 곳에서 4년을 보내고 60세에 다시 관직에 복귀한다. 이후 69세에 영의정에 올라 18년을 재임하고 87세에 공직에서 물러났다. 세종대왕과 치리하던 시대에 27년을 함께 있었으니 어쩌면 세종대왕의 모든 업적은 황희와 함께 이뤄진 것과 같다.

황희는 왕도정치(王道政治)와 재상정치(在上政治)를 복원시켜 왕은 덕으로서 다스리며 신하들의 바른 의견을 합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게 하여 왕을 잘 보필하며 합리적이고 의사를 결정하게 하며 백성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기 보다는 백성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데 힘을 썼다.

대표적인 예로 왕실의 제사법을 검소하고 간략한 소찬으로 바꿔 백성을 구제하게 했으며 백성들의 형평에 맞는 조세를 위해 전분6등과 연분9등의 공법을 만들어 시행했다.

황희는 그의 성품과 뛰어난 혜안으로 인하여 세종대왕 이전 선대의 왕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태종은 그를 유배를 보낼 수밖에 없었으나 그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으,며 끝까지 곁에 두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황희를 천거해 그가 세종을 보필할 수 있도록 해줬다. 황희의 성품과 혜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세종은 황희가 좌의정으로 오른 지 1년 만에 ‘세상을 다스려 이끌 만한 재주와 실제 쓸 수 있는 학문을 지니고 있도다. 모책은 일만 가지 정무를 종합하기에 넉넉하고, 덕망은 모든 관료의 사표가 되기에 족하도다”고 했을 정도다.

당시 백성들은 그의 청렴함과 바른 정치에 그를 존경했으며 황희가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백성들이 탄식하며 조문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조정의 이서(吏胥)와 여러 관사의 노복들도 모두 전(奠, 제물)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으니 이전에 없었던 일이었다. 황희의 죽음을 서로 위문하고 아쉬워하면서 어린이와 부녀자들까지 도 저마다 놀라고 애통해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이 책은 황희에 대한 위대한 인간적 가치를 태종과 세종 때의 정치적 갈등을 통해 투영함으로써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황희와 같은 2인자와 같은 인물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한다. 황희는 오늘날 모두가 바라는 올바른 지도자의 성품과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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