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조선소 폐쇄에 이어 한국GM 군산공장 사태로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군산, 스트레이트뉴스는 GM 군산공장과 지역경제의 현주소, 그리고 GM사태의 향후 방향성을 가늠해 보는 르포르타주를 기획했다. 이번 르포르타주는 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목차]
① 위건 부두와 군산 부두
② 한국GM의 더티 플레이
③ 한국GM의 가려진 민낯
④ 더러운 책략의 제물, 군산공장
⑤ 변화의 길목에 남겨진 시민들

한국GM 사태 이후 군산의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나선 길에 폐쇄로 가닥이 잡힌 공장까지 들릴 필요는 없다 싶었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지난 4월 초 이후 다시 찾은 군산공장, 열흘 전까지만 해도 차량이 대여섯 대 정도 보이던 주차장이 휑했다. 일본의 후쿠시마가 핵에 당한 도시라면, 한국의 군산은 ‘더러운 책략’의 피해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군산의 정지된 시간(한국GM 군산공장 주차장) ⓒ스트레이트뉴스
군산의 정지된 시간(한국GM 군산공장 주차장) ⓒ스트레이트뉴스

요즈음 군산공장에 대한 분위기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립군산대 해양생명과학부 오명일 교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차분해진 느낌입니다. 한 달 전만 해도 GM 얘기만 나오면 노조가 어떠니 본사가 저떠니 그러면서 흥분하고 그랬는데, 보름 전인가, 그쯤부터는 다들 포기한 눈치던데요? 지금은 GM 얘기는 하지도 않아요.”

“이젠 공장 폐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도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을 좀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GM이 그동안 호주나 다른 나라에 한 짓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리먼 사태 났을 때 지들 나라에서 한 짓만 봐도 뻔하지 않나요?”

곁에서 듣고 있던 연구원 박성철(38)씨의 훈수다. GM이 그동안 자국 및 여러 국가에서 정부를 상대로 싸운 전력으로 볼 때, GM이 향후 어떤 행보를 취할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우리 정부가 군산공장은 물론이고 아예 GM이 한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철씨의 주장을 따라 GM이 과거에 어떤 책략으로 자국과 여타 타국의 정부를 괴롭혔는지 추적해 보자.

GM, 파산과 협박의 기억

2008년 9월에 터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미 정부는 메이저 은행들을 국유화하기 위해 이듬해 봄까지 13조 달러를 쏟아 붓고 있었다. 2008년 미국의 GDP(국내총생산)이 14.5조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촉발된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금융권뿐 아니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산업을 강타했다.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가 위치한 미시건주 역시 13%의 실업률을 기록하면서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그 중심에 세계적인 완성차업체 GM(General Motors)이 있었다.

2007년 10월 주당 43달러로 고점을 찍었던 GM의 주가는 2008년 11월에 3달러까지 떨어졌고, 그해 12월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35%가량 추락해 있었다. 그런 GM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연방정부의 도움뿐이었다.

GM 주가 변동 추이(2007.09~2008.11)(자료:NYSE) ⓒ스트레이트뉴스
    GM 주가 변동 추이(2007.09~2008.11)(자료:NYSE) ⓒ스트레이트뉴스

2009년 6월 1일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제조업 파산이 발생한 날로 기록되어 있다. GM이 약 1,720억 달러(자산 약 822억 달러)의 부채를 견디지 못해 미국 파산법률 11장을 신청하면서 파산을 선언했던 것.

이후 부시 정권은 GM에 긴급자금을 투입해가며 고전하다 오바마 정권에 넘겼고, 여러 차례 위기를 겪은 끝에 GM은 새로운 주인을 맞아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 GM의 지분은 미국 정부가 약 60%, 캐나다 정부가 약 12%, 자동차노조신탁이 약 17.5%, 그리고 채권단이 약 10%를 보유했다.

GM이 파산에 이르게 된 이유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연구개발(R&D)’과 ‘은퇴 근로자들에 대한 연금 및 의료혜택’이 그것이다.

① 잘못된 연구개발

1960년대, GM은 미국시장에서 무려 50%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다. 반독점법을 우려할 정도였다. 그러나 70년대에 발생한 1차 오일쇼크로 인해 일본 업체들에 추월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의 ‘연료 효율성 법안’은 ‘기름 먹는 하마’로 유명했던 GM의 트럭 부문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GM은 80년대 들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연료 효율성 법안을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수입차, 특히 일본차와 유사한 중소형 차량에 대한 연구개발에 힘쓰는 대신, 과거에 했던 그대로 연료의 효율성은 무시한 채 ‘기름을 엄청나게 먹어대는’ 트럭과 SUV 개발에만 몰두했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미국인들이 중소형 차량을 싫어한다는 것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트럭과 SUV의 대당 수익률이 타 차종에 비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이미 잘못 설정된 연구개발의 방향은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시장점유율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식 GMT 트럭들(자료:GM) ⓒ스트레이트뉴스
1990년식 GMC 트럭들(자료:GM) ⓒ스트레이트뉴스

② 은퇴 근로자들에 대한 연금 및 의료혜택

GM은 은퇴한 근로자들에게 연금과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큰 짐을 지고 있었다. 2000년부터 GM을 괴롭히기 시작한 매출 부진과 정부의 고금리 정책 및 쌍둥이 적자로 인한 경기침체는 GM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가장 큰 문제는 연금과 의료혜택 때문에 기술개발에 투입할 자금이 늘 부족했다는 것이다. 의료혜택의 경우, 자동차노조에 배당금과 주식 형태로 지불되었는데, 이 때문에 생산되는 신차 1 대당 약 1,400달러의 원가가 추가로 들었다. 이 비용만 매년 6,000만 달러에 가까웠다.

연금 및 의료혜택 비용을 충당하느라 기술개발에 투입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겨우 마련한 연구개발 자금은 잘못된 부문에 투입하는 악순환 속에서 GM은 지금까지 굴러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합리적인 의심이 생긴다. 총액이 대폭 축소되긴 했지만, GM은 여전히 은퇴한 근로자들에게 연금과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앞 기사 <ST 르포-군산 GM현장②>에서 언급했던 ‘본사 차입금 이자 비용’과 ‘지적재산권 비용’ 총 1조 4,747억 원은 GM본사가 한국GM으로부터 거의 가로채듯 받아간 것이다. 이 비용의 최종 목적지가 혹 은퇴한 미국 근로자들의 연금 및 의료혜택은 아니었을까? 현재 한국GM의 근로자들은 미국GM의 은퇴 근로자들을 대신해서 GM본사와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98년의 디트로이트와 2018년의 군산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1998년의 디트로이트와 2018년의 군산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아무튼 오바마 대통령이 만든 ‘자동차 TF팀’은 부시 정권이 이미 지원한 정부 자금 134억 달러를 출자전환하고 166억 달러를 추가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GM에 두 가지를 요구했다. 한 가지는 ‘채권단과의 협상을 통해 모든 채무를 출자전환할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전미자동차노조(UAW)와의 협상을 통해 인력을 감축하고 의료복지 비용을 대폭 축소할 것’이었다.

이 두 조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두 가지 모두 GM이 현재 한국에서 가동하고 있는 조건들이다. GM은 KDB산업은행과 마주한 테이블에서는 ‘출자전환’에 대한 반대급부를, 한국GM 노조와 마주한 테이블에서는 ‘인력 감축과 복리후생비 축소’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건 조건은 GM의 향후 협상에 큰 힘으로 작용했다. 당시 채권단이 GM에 물린 자금의 규모는 275억 원에 달했지만, 채권단은 GM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부품업체에 대금지급을 늦추면 GM의 생산라인에 심대한 타격이 올 것이고, 생산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연쇄부도로 이어져 결국 미국의 모든 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말의 속뜻은 “우리가 파산하면 당신들이 회수할 자금이 있을 것 같은가?”였다. 대통령을 등에 업은 명백한 협박이었으며, 이후 세계 각국에서 똑같이 재현될 더러운 책략의 첫 번째 시현이었다.

GM의 학습효과에 나가떨어진 호주 정부

GM은 타국에 생산기지를 세울 때마다 해당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경영난이 심각해지면 정부에 손을 내밀었고, 요구가 거부당하면 곧장 매각한 다음 철수하기를 되풀이했다. 독일(오펠)에서 그랬고, 스웨덴(사브)과 호주(홀덴)에서도 그랬다.

특히 GM이 호주에서 벌였던 책략은 냉철했다. 호주 정부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GM에 지원한 보조금은 무려 15억7,000만 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고비용 구조와 내수 부진 탓에 경영난이 심화되었고, 그러자 GM은 학습효과를 발휘해 2013년 전격적으로 공장 폐쇄를 결정하면서 정부 지원책과 구조조정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았다.

2017년 8월, 사측의 공장 폐쇄조치에 대항해 시위 중인 GM 호주법인(Holden) 직원들 ⓒ유튜브
2017년 8월, 사측의 공장 폐쇄 조치에 반발해 시위 중인 GM 호주법인(Holden) 직원들 ⓒ유튜브

당시 호주 정부는 선거라는 강력한 약점에 노출되어 있었다. 선거를 앞둔 호주 정부는 GM의 무리한 요구들을 하나씩 들어주기 시작했다. GM은 호주법인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해댔다. 그러는 동안 호주 정부가 지원한 자금은 2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GM은 고비용 문제와 내수 부진을 끝끝내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2017년 10월 호주법인을 폐쇄하고 말았다. 호주 사회는 GM이 남기고 떠나간 공장들의 재활용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같아도 너무 똑같다. 호주의 경우, GM이 선거에 임박한 상황에 내건 각종 요구조건을 단칼에 쳐내지 못해 결국 더러운 책략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우리 역시 6・13지방선거가 걸려 있다. GM이 호주에서 벌였던 책략이 한국에서도 통할까?

GM이 친 ‘배수의 진’ 對 한국 정부의 ‘원칙론’

GM과 우리 정부・KDB산업은행 간에 치열한 물밑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 요구조건을 가감 없이 드러내놓고 상대의 반응을 살펴가며 수시로 조건을 변경하는 모습이 물밑경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거꾸로 선 백조의 갈퀴질처럼 보인다.

지난 2월 13일, GM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 직후 “한국 사업을 접고 싶지는 않다”며 GM본사 차입금 27억 달러(약 3조 원)의 출자전환, 신차 2종 배정, 28억 달러 규모의 신차 생산시설 투자 등 강력한 회생방안을 제시했다.

일주일 후인 2월 20일, 한국GM은 2대 주주인 산은의 실사에 동의했다. 이틀 뒤 우리 정부가 구조조정 3대 원칙을 발표했지만, 신규자금 지원을 검토 중이던 산은은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있다고까지 언급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GM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개연성은 우려 수준을 넘지 않았다.

장외 협상전을 벌이고 있는 KBD산업은행과 GM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장외 협상전을 벌이고 있는 KDB산업은행과 GM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그러나 산은이 한국GM의 본사차입금 27억 달러를 출자전환할 때 ‘GM의 한국GM 지분에 대해서만 출자전환 후 감자하는 차등감자’를 요구하면서 큰 그림이 꼬이기 시작했다.

산은의 차등감자 요구는 한국GM의 특별결의사항 표결(찬성 요건 85%, 최소 거부권 행사 요건 15%)과 관련이 있다. 산은은 그동안 17.02%의 지분으로 거부권을 행사해 왔는데, 만약 GM이 27억 달러를 출자전환하면 산은의 지분이 1%에도 미치지 못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라면 산은으로서는 신규자금 5,000억 원만 지원해달라는 GM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급기야 3월 26일 방한한 GM 해외사업부문 배리 엥글 사장은 “한국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한국GM은 부도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며 자구안 마련 기일을 4월 20일로 못 박았다.

그동안 한국GM은 ‘2017년 성과급’ 지급을 보류하고, 임단협에도 무성의하게 임하면서 시장철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러는 동안 부평공장 내 디자인센터에서 근무하던 연구인력 30여 명이 빠져나갔고, 한국GM의 내수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58%가량 감소하며 위기가 심화되었다.

GM의 갈퀴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2월 13일, GM은 회생방안 중 하나로 10년간 28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되어 법인세를 감면받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인천시와 경상남도에 제출한 ‘부평공장 및 창원공장의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신청서’에 적힌 신규투자금액은 28억 달러가 아닌 16억 달러임이 밝혀졌다. 투자규모가 줄어든 이유에 대해 GM은 함구하고 있으며, 산업부는 자율 주행차나 미래형 자동차 등 신성장 기술을 더 보완하라고 통보해 놓은 상태이다. 여기서도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GM은 직원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을 출장금지 국가로 지정하는가 하면, 본사 차입금 27억 달러를 출자전환하지 않고 추가 대출로 바꾸겠다며 교묘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교묘한 으름장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본사 대출금의 이자가 턱없이 높아서 대출로는 고비용 구조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GM은 언론플레이도 진행 중이다. 부평공장에서 매년 해외로 수출 중인 ‘트랙스’ 모델 27만여 대 중 15만여 대를 중국공장에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은은 “한국GM의 원가구조 파악 없이 자금지원은 없다”며 4월 말에 완료하기로 합의한 실사를 5월 초쯤에나 종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응수했다. 이에 대해 배리 엥글 사장은 산은이 이달 27일까지 투자확약서를 주지 않으면 한국GM의 파산이 불가피하다며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굳게 닫힌 군산공장 정문 ⓒ스트레이트뉴스
굳게 닫힌 군산공장의 정문 ⓒ스트레이트뉴스

GM과 우리 정부・산은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물밑협상을 정리해 보면,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GM이 부도를 내기로 예정한 날은 20일이고, 투자확약서를 원하는 날은 27일이며, 산은의 실사는 5월 초에나 끝난다니 말이다.

하지만 투자확약서를 받건 실사를 끝내건, 본격적인 협상의 전제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노사합의다. 이것이 우리 정부가 지난 2월 22일 내세웠던 구조조정의 원칙론이다.

장외 협상전의 패자는?

GM이 자구안 도출의 마지노선으로 지목했던 20일이 이틀 후로 다가온 지금, GM본사는 한국GM에 대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법정관리를 신청한 다음, 공장을 처분하고 연구 및 판매 부문만 남겨둔다는 계획이다.

법정관리 신청이 접수되면 채권자협의회가 구성된다. 법원은 1개월 이내에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고, 개시 후 4개월 이내에 재건할 것인지 청산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GM과 우리 정부의 줄다리기가 파국으로 이어질까?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외국인투자지역 지정과 우리 정부의 신규 투자를 두고 양측이 장외 협상전을 벌이고 있다는 의견이 다수 존재한다. 양측 모두 파국을 원하지는 않으며, 따라서 20일이나 27일, 5월 초라는 기한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장외 협상전의 실마리는 우리 정부의 원칙론, 즉 노사합의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초점은 당연히 한국GM 노조의 요구사항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군산공장 폐쇄 철회, 만65세까지 정년 연장, 향후 10년간 정리해고 금지, 출자전환 시 1인당 3,000만 원 상당의 주식 배분 등 20여 개 항목이 그것이다. 오는 25일 지급해야 할 사무직 근로자들 급여나 협력업체 부품 대금 3,000억 원, 희망퇴직 위로금 5,000억 원 등은 나중 일이다.

한국GM의 협력업체는 1,2,3차 포함 3,000여 곳이며, 직접 고용인원은 14만여 명, 간접 고용인원은 30만여 명에 달한다. 한국GM이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용이 12.7%, 수출이 15.7%이다. 국내 3위 완성차 업체다. 그리고 GM으로서는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에서 생산되는 스파크, 트랙스 등의 차종에 대해 지금 당장 생산을 중단하기는 쉽지 않다. 파국을 원치 않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규모 면에서 여전히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GM의 모럴 헤저드와 그에 따른 먹튀 전력이 어떻든, 과거 우리 정부의 안일했던 대응이 어떻든 간에, 군산공장 폐쇄는 GM 경영진이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결과다. 과거로 돌아가 책임을 묻기에는 앞으로 바짝 다가온 위기의 무게감이 더 크고 압도적이다.

지난해 6월 백악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Reuters
지난해 6월 백악관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Reuters

초국적기업과 국가가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가 돌이켜봐야 할 것은, “한국GM 군산공장은 디트로이트로 돌아온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장담이다. 이는 군산공장 문제가 군산지역뿐 아니라, 우리 자동차산업 전반, 더 나아가 한미 간 무역분쟁, 그리고 미국의 선거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해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논리로 해결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해관계자 고통 분담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직후 금호타이어 노조는 중국 더블스타 매각 건에 대해 찬반투표를 실시했고, 60% 이상의 찬성으로 인수를 결정했다.

금호타이어 사례는 이해관계자 고통 분담 원칙의 시금석이다. 노조는 노조대로, GM은 GM대로 고통 분담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양측 모두 패자로 남을 뿐이다.

노조가 빛바랜 ‘군산공장 폐쇄 철회’ 카드를 비롯한 몇 가지 ‘감수할 만한’ 요구조건을 내려놓고, ‘복리후생비 감축’이라는 GM의 요구조건에 전향적으로 응할 수 있다면, 그리고 GM이 노조가 내건 요구조건 중 일부라도 수용할 수 있다면, 극적인 노사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그 지점이 우리 정부가 내세운 ‘고통 분담 원칙론’의 결승선이자 사태를 본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출발선이다.

다시 들러본 군산공장 정문, 광고업체 직원이 가로수 사이에 플래카드를 걸고 있었다.

“이거요? 서로 좀 양보해가면서 잘들 좀 하라고 거는 거죠 뭐. 어떻게든 공장은 다시 돌겠죠. 이 큰 공장을 놀리면 서로 손해니까.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지만, 물량이 좀 적더라도 공장 재가동만 되면 뭐... 제 생각에는 어떻게 잘 될 거 같은데...”

군산공장 정문에 부착된 응원 현수막 ⓒ스트레이트뉴스
군산공장 정문에 부착된 응원 현수막 ⓒ스트레이트뉴스

공허한 바람에 현수막이 힘차게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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