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ICBM 시험발사 중단과 핵실험장 폐기" 선언
'핵군축' 의미 담겨 ¨‘비핵화’ 전 단계의 성의 보여
한국당, '드루킹'특검에만 매달려 국민 반감 증폭  

남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남북회담에 이어 북미회담도 예정되어 있으며, 회담의 진행 경과에 따라 남북미회담에 합의할 가능성도 높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우리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제사회가 모두 환영의사를 표한 가운데, 유독 자유한국당만 제대로 된 논평조차 내지 않은 채 ‘셀프 패싱’을 시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정의용, 서훈 특사단은 지난달 5일 방북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할 의사가 있음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수용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에서 이는 논란을 잠재울 방안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을 4월 1일 부활절 연휴 기간에 대북특사로 보냈다. 그는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CIA국장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김정은 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CIA국장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미국 국내에서 이는 논란이란, 야당과 여당 일부 의원들이 폼페이오 내정자가 북한과 이란의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강경파라서 인준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그를 북한으로 보내 김 위원장과 대화하게 한 것은 매우 세심하게 계획된 정치행위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발표엔 핵군축만 있고 핵폐기는 없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했다. 풍계리 핵실험장도 폐쇄하기로 했다. 청와대와 우리 정치권은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전제조건이 마련된 현실에 반색했다.

김 위원장의 발표를 두고, 중국은 ‘정치적 대사건’으로, 러시아는 ‘긴장을 완화할 기회’로, 유럽연합은 ‘깜짝 발표’로 표현하는 등 국제사회의 반응 역시 환영 일색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의중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 또한 분분하다.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북한이 북미회담에서 내밀 수 있는 ‘카드’ 하나를 거리낌 없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버린 카드를 뜯어보면 그다지 쓸모없는 카드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 중인 김정은 위원장(자료:spartareport)
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 중인 김정은 위원장(자료:spartareport)

먼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한 이유는, 시험발사를 계속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7년 중에 이미 중장거리 화성-12형(5월), 화성-14형(7월), 그리고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11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후,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바 있다. 실제로 이란과 인도 역시 북한과 비슷한 핵개발 단계에 시험발사를 중단한 전례가 있다. 중단된 시험발사는 회담 결과에 따라 재개하면 그만이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카드도 쓸모없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이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인근 주민들뿐 아니라, 압록강 너머 중국에서도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로 한바탕 난리를 겪은 적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6번이나 핵실험을 치른 곳이라 수명이 다했다는 추측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중단된 핵개발 역시 회담이 수세에 몰리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현황(1984~2016)(자료:CSI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현황(1984~2016)(자료:CSI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북한이 이 두 가지 카드를 ‘알아서’ 폐기한 이유는, 북미회담에 대한 진정성을 미국과 남한 및 국제사회에 확인시켜주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폼페이오 내정자가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과 함께 이 두 가지 카드에 대해 이미 합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큰 경제적 그림 그리며 미국에 공 넘겨

“핵실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실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다.” -조선중앙TV-

조선중앙TV의 발표나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서 어디에도 ‘핵군축’만 있을 뿐, ‘비핵화’는 없다. 이는 비핵화가 아니라 단순한 핵개발 잠정 중단에 불과하며, 따라서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으로써 남북 및 북미 회담에 임하겠다는 선언이다. 회담의 시작을 핵군축으로 잡고 원하는 만큼 얻어낼 때까지 비핵화 카드를 움켜쥐고 있겠다는 장기적 포석이기도 하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들락거리며 핵개발에 매진해왔다. 1985년 NPT에 가입했지만 1993년 탈퇴했고, 미국과의 합의 하에 1994년에 다시 복귀했지만, 2003년 또다시 탈퇴했다. 2008년에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지만, 금세 2차 핵실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개발에 매달린 이유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속된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를 타개할 유일한 수단으로 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핵에 대한 북한의 집요함은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이어졌고, 김정은 위원장은 결국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수단을 손에 넣었다.

북한이 핵군축협상에서 얻으려 하는 것은 명확하다. 그것은 조선중앙TV의 발표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2013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 중 경제건설을 위한 토대 마련이다.

그러나 북한이 여전히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데 목을 맬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이유는 북한경제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발표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돌입해 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북한은 3.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실질 GDP 역시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2016년에 국제 대북제재가 더 강해졌고, 더욱이 그해 2월에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남북교역이 88%가량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평양 시민들의 일상(자료:dailymail)
평양 시민들의 일상(자료:dailymail)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과가 미미했던 것일까? 북한 경제 관료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북한의 김웅호 정치경제분과 과장, 김상후 북남경제협력분과 과장 등은 포커스온라인(독일), NRC(네덜란드) 등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제재에 오래전부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제재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급자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석유 수입을 중국에 의존한다고 해서 피해를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체 친환경 디젤 기술을 개발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나라가 고립되어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 경제제재는 대외무역으로 먹고사는 국가에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지, 무역의 비중이 낮고 오랫동안 자립형 경제체제로 운영되어온 북한에는 효과가 덜하다. 이명박 정권의 5・24조치와 박근혜 정권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도 불구하고, 3.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북한 아닌가.

그런 북한이 핵무력 건설에 투입되던 비용을 경제건설로 돌리려 하고 있다. 이는 핵무력이 재래식 무력을 대체했으니, 재래식 무력을 유지하는 데 소요되던 비용을 민간경제 활성화에 투입하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북한이 노리는 것은 경제제재보다 훨씬 큰 ‘경제적 그림’이며, ‘핵군축’ 발언은 ‘비핵화’로 가는 머나먼 여정의 첫 번째 돌다리일 뿐이다. 이 조건 하나로 공을 미국에 넘겨 버린 셈이다.

남북회담 테이블에 오를 의제는?

핵군축이든 비핵화든, 훨씬 큰 ‘경제적 그림’을 노리는 북한의 직접 대화 상대는 우리가 아니다. 핵실험 중단 공식화,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핵사찰, 10~20기로 추정되는 핵무기 및 50여kg의 플루토늄 폐기와 같은 의제는 사실상 우리와 단독으로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은 북미회담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력자이자 화해 무드 조성을 위한 분위기 메이커다. 적어도 북한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종전선언과 같은 절차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론은 효력을 발휘한다.

두 정상의 만남에서 어떤 대화가 오갈까? 첫 인사로는 평창올림픽이나 체육・문화 교류 이야기가 제격이다. 본 회담에서는 정전협정을 종전선언으로 바꾸는 대화가 단연 최우선이다. 종전선언 이후 평화협정까지는 북미대화의 경과가 결정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김일성 전 주석(1953.07.27)(자료:gettyimages)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김일성 전 주석(1953.07.27)(자료:gettyimages)

1985년 처음 시작된 이후 2015년까지 총 21회 이어졌던 이산가족 상봉도 가능한 의제다. 개성공단 재개 여부도 논의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차제에 대북투자유치도 거론될 수 있다. 비무장지대의 단계적 비무장화 역시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그밖에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북미회담 이후의 남북미회담,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대화 등도 기능성이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요청한 납북 일본인 문제가 거론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가능성은 낮지만, 두 정상이 ‘통 크게’ 접근한다는 전제 하에 조금 더 멀리 나아간다면, 장기적인 논의를 전제로, 남한 발 유럽행 화물 철도도 잠깐이나마 논의될 소지가 있다. 다만 이 안건은 북한이 북미대화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임하는가에 달려 있겠지만, 또 아는가, 어차피 미국을 끌어들이려면 화해 무드를 조성해야 하고, 그러려면 남한부터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지도. 평창올림픽 이전부터 급변하기 시작한 한반도 정세로 미루어 볼 때,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셀프 패싱

이번 일주일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만큼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국정원 여직원 셀프 감금’으로 재미를 본 한국당은 이번에도 역사적인 현장에 역행하는 ‘셀프 패싱’에 여념이 없다.

“이틀 전에 북한이 발표한 내용을 자세히 보면 하등 달라진 게 없다. 북한은 우리가 핵을 보유했으니 핵실험할 필요가 없고 이제 미국과 정당하게 협상한다. 말하자면 핵 폐기 선언이 아니라 핵 보유 선언이다.”

홍준표 대표가 22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민주당원 댓글공작 규탄 및 특검촉구대회’에서 한 발언이다. 하나 틀린 구석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이 북한의 발표는 향후 돌출될 수많은 해결과제를 두고 내세운 첫 번째 조건일 뿐이다. 우리를 포함, 주변국들이 앞으로 함께 풀어가야 할 ‘비핵화’의 초입이라는 말이다.

딱 거기까지다. 최소한 제1야당의 대표라면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는 등 정부를 향한 조언이나 지적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홍 대표는 미래에 기울여야 할 수많은 노력은 애써 무시한 채, 현재 상황만으로 여전히 북한을 선거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남북회담 자체가 밉고, 북한을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이 싫어서 그러는 것일까? 그는 심지어 아래와 같은 발언으로 철지난 ‘안보팔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북한 수백만 주민이 굶어 죽고 아사 직전까지 가고 정권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을 때 살려준 사람이 DJ다. 그 다음이 노무현이다. 똑같은 짓을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고 있다.”

세계사의 주요 변곡점 중 하나로 기록될 수도 있는 이때, 한 나라의 제1야당 대표가 가진 선거 전략이 고작 수십 년 동안 우려먹었던 ‘안보팔이’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오히려 홍 대표에게 되묻고 싶다. 자칭 보수라는 한국당은 수십 년 동안 긴장을 조성하는 것 외에 무얼 했는가?

역사에 새겨진 정상들(김정일 위원장,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역사에 새겨진 정상들(김정일 위원장,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물론, 한국당으로서는 김기식 전 금감원장 사퇴와 드루킹 사건 덕에 오랜만에 정국 주도권을 쥘 기회를 포착했으니 그냥 놓치기 아까울 수 있다. 남북회담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 성공한다면 6・13지방선거에 대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이해할 수 있다. 한국당이 드루킹과 김경수 의원을 선거가 끝날 때까지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 모두 이구동성으로 개헌을 외치지 않았던가. 국회에는 개헌안 처리를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안 처리가 걸려 있고,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 동시 투표를 하려면 오늘 또는 최악의 경우 27일까지 개정안이 처리되어야 한다. 청년실업 및 군산, 거제, 통영, 고성 등 고용위기지역 6곳에 투입될 추가경정예산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당은 오로지 드루킹 얘기뿐이다. 개정안에 대해서건 추경에 대해서건 짤막한 논평조차 없다.

개헌 약속을 이번에 반드시 지키라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회에서 논의를 통해 자체안을 마련할 일이고, 논의가 진척되지 않아 이번 지선 때 개헌 동시 투표가 어렵다 해도, 논의에 진정성 있게 임했다면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댓글조작 사건을 파헤치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다. 할 일은 해가면서 드루킹이건 뭐건 주장해야 할 것 아닌가.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군부독재의 숱한 간첩조작사건까지 갈 것도 없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새누리당을 거쳐 한국당에 이르기까지 북한을 선거에 끝도 없이 이용해 왔다는 사실, 국민들은 알고 있다. 선거 때마다 괴력을 발휘했던 북풍을 이번 지선에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제1야당 한국당은 한국의 안보 정세에서 스스로 사라져 버리는 셀프 패싱을 택하고 말았다. 이것이 틈만 나면 안보를 외쳐댔던 한국당의 민낯이다. 우리도 핵을 보유하자며 울그락불그락하던 이들은 모두 다 어디로 숨어버린 것인가!

드루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열세를 만회해 줄 것이라 믿는 것은 한국당의 자유다. 다만, 안보팔이 장사에 망조가 들었으며, 그 빈자리에 선거용 드루킹을 앉혀놓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국민들 역시 잘 알고 있다는 점, 결코 흘려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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