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는 집단소송 서류 접수 나서
국민연금, 기관 배상 기준 내놓지 않아

112조원 규모의 ‘유령주식 배당사고’를 일으킨 삼성증권이 피해 보상을 실시하고 있지만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여론을 집결해 집단소송, 규탄 집회, 검찰 고발 등 본격 행동에 나서면서 파장이 확대되고 있는데다, 국민연금공단까지 합세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증권사와 연기금 간 소송전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번질 양상이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한별은 이날부터 삼성증권 배당 사고 투자 피해자를 대상으로 소송위임장, 거래명세서, 잔고증명서 등 1차 집단소송을 위한 서류를 받을 계획이다.

구성훈 삼성증권 대표이사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삼성증권 사태와 관련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회사 대표 간담회'에 참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구성훈 삼성증권 대표이사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삼성증권 사태와 관련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회사 대표 간담회'에 참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앞서 한별은 지난 8일 네이버에 ‘삼성증권 배당 사고 주식 피해자 모임’ 카페를 개설하고 집단소송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개설 당시 20여 명에 불과했던 소액주주 카페 가입자는 현재 120여명에 육박한다.

삼성증권이 지난 11일 배당 사고일 다음 거래일인 9일 이후 삼성증권 주식을 매도했거나 아직 보유 중인 투자자들은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투자자들이 불만을 품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소액주주 모임도 삼성증권에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희망나눔주주연대는 지난 20~2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영업정지, 압수수색 등 삼성증권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도 지난 13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삼성증권 등을 법률상 사기·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센터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고발장에 따르면 피고발인은 구성훈 삼성증권 사장을 비롯한 임원 및 업무 담당 책임자, 최종구 금융위원장,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이병래 한국예탁결제원 이사장 등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필요하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6일 사태 당시 삼성증권 주식을 직접 매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탁 운용한 자산운용사 중 일부가 손실 방지를 위해 주식을 매도, 국민노후 자금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건 당일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은 총 99만5000주의 삼성증권 주식을 매도했다. 반면에 매수는 17만6000주에 그쳐 81만9000주의 순매도가 이뤄졌다.

국민연금은 국회 의원실의 삼성증권 사태 대응과 관련한 문의 요청에 '기금운용본부 주식운용실은 삼성증권 사태 발생에 따른 피해 규모를 집계 중이며 필요 시 준법지원실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 소송까지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서면 보고를 제출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단 국민연금은 서면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는 것은 거부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삼성증권이 개인 피해에 대한 보상 기준만 발표했을 뿐 기관에 대한 피해 보상 기준은 내놓지 않은 상황"이라며 "삼성증권과 협의와 조정을 통해 피해 보상을 받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결렬되거나 적절하지 않을 경우 최대 소송까지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피해를 접수한 기관투자자는 이날 현재까지 없다. 삼성증권은 연기금이 보상을 요구하면 개별적으로 협의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사건 당일 실제 매도 물량과 매도가를 집계한 후 이를 구체화하면 삼성증권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비난 여론을 의식해 국민연금이 삼성증권에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가뜩이나 국민연금은 삼성과의 악연이 깊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키려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위법한 영향력을 행사해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항소심 징역 판결을 작년 11월에 받은 바 있다.

이에 국민연금은 삼성증권 사태 피해 보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삼성증권 입장에서는 전산 사고로 인한 주가 하락을 보상하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통상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주가 하락에 따른 피해는 투자자에 귀속된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즉 투자자가 주가의 예측 불가성을 인정하고 투자에 임했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은 이번 삼성증권의 배당 착오 사태와 관련한 고발사건을 '금융·증권범죄 중점 검찰청'인 서울남부지검에 배당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검찰은 오는 27일까지 진행될 금융감독원의 삼성증권 검사 결과를 지켜보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삼성증권 검사 기간을 기존 11~19일(7영업일)에서 11~27일(13영업일)까지로 연장하고 검사인력도 8명에서 11명으로 증원해 조사하고 있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가 나오면 제재심의위원회에 회부,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최종적으로는 금융위원회 회의에 회부한다는 방침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0일 열린 간부회의에서 삼성증권 배당 사고에 대해 "자본시장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며 "이달 말에 나올 금감원 검사 결과를 감안해 사고 책임을 엄중히 묻고 증권 매매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6일 삼성증권은 전산 실수로 우리사주 283만주에 대해 주당 1000원을 1000주로 잘못 배당해 존재하지 않는 주식 28억3000만주를 입고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 일부가 잘못 배당된 주식 501만주를 매도해 삼성증권의 내부통제 및 주식거래 시스템의 부실이 드러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증권은 지난 11일 개인투자자 피해 보상안을 발표했다. 보상 대상은 ‘유령주식’ 매도가 시작된 6일 오전 9시 35분 이전 삼성증권 주식을 보유했고 그날 장 마감 전까지 삼성증권 주식을 팔았던 모든 개인투자자다. 또 보상 기준 가격은 당일 최고가인 3만9800원으로 정했다.

하지만 배당 사고일 다음 거래일인 9일 이후 삼성증권 주식을 매도했거나 막대한 손실 속에 아직도 매도하지 못한 투자자들을 이번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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