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시행
재계 "탄력 근로제 1년은 늘려야"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올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다. 2004년 주5일제 도입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시행을 앞두고 시범 운영에 돌입했지만, 업종별 특성을 감안한 정부의 '보완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신제품 개발이나 특정 시기에 일감이 몰리는 사업의 경우,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탄력근로제 적용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1주를 7일로 명시하고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시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1주를 7일로 명시하고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시스

국회는 지난 2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된다.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정부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최고 수준의 장시간 근로를 해소해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한편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증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비용부담이 늘어나고 인력운용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도적 연착륙을 위해 기업들은 사업장마다 탄력적 운용을 최대 1년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 따르면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 이후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연간 12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비용 가운데 70%(약 8조6000억원)는 근로자 300인 미만의 중소 사업장에 집중된다고 분석했다.

한경연은 "우리나라는 장시간 근로로 인한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이 공감을 받고 있지만 그 시행 방법에 있어서 사업장 규모에 의한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그 목적달성을 어렵게 하고, 힘든 경제여건에서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기업들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기간 내 근로시간을 늘리고 줄이면서 조절하는 제도다. 일감이 몰리는 때 근로시간을 늘리고 일감이 적을 때는 줄여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 내로 조정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적용 기간이 1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사 합의를 거쳐 최대 석 달 안에서만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수 있다. 취업규칙으로 정하면 운용 기간은 2주 이내로 제한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행 2주·3개월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단위기간이 짧아서 경영상황이 일정치 않은 대다수 산업에서 활용이 어려운 점이 있다"며 "예외 업종 추가와 탄력근무제 대폭 확대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개선 방안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성수기 때 더 뽑은 인력이 비수기에 남아돌면 노동생산성이 더욱 하락한다"며 "근로시간 단축이 무리 없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OECD 국가 평균의 70% 수준에 불과한 낮은 노동생산성을 반드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2개월여 앞두고 분주하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여념이 없다.

삼성전자는 사업부서를 중심으로 주52시간 근무를 '예행연습'하고 있다. 국내 근무자만 10만명이 넘는 삼성전자는 갑작스런 시행에 따른 혼란과 충격을 막기 위해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를 시험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자율근무제에 이어 2012년 자율출퇴근제 등 파격적인 근무 시스템을 시행중이기 때문에 부담이 덜한 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새 규정에 맞춰 준비하고 있지만, 휴대폰 등 신제품 개발 분야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수개월씩 밤샘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유럽처럼 1년 정도의 탄력근무제 적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삼성전기 역시 개인 직무와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근무시간을 조율하고,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 40시간 내에서 출근∙퇴근 시간을 스스로 정하는 자율 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월부터 일부 조직을 대상으로 주52시간 근무제를 실시 중이다.

LG화학의 경우 임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 Life Balance)'에 집중하고 있다. LG화학은 임직원들이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고서 간소화, 불필요한 회의 지양 등 보고·회의 문화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SK는 이미 주력 계열사 SK하이닉스나 SK이노베이션 등을 중심으로 이미 3교대나 4교대 방식으로 생산직의 근로시간을 52시간 이하로 맞추고 있다.

특히 SK텔레콤은 이달 1일 근무시간 단축과 업무 몰입을 위한 자율적 선택근무제 '디자인 유어 워크 앤 타임(Design Your Work & Time)'을 도입했다. 2주 단위로 총 80시간 범위 안에서 업무 상황 등을 고려해 직원 스스로 근무시간을 설계한다. 출퇴근 시간 설정 등 회사의 관리를 통한 일률적 근무시간 단축을 지양하고, 회사와 직원이 신뢰를 기반으로 개별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KT는 개인별 출퇴근 시간 기록, 연장근로 신청 및 승인으로 법정근무시간을 관리하고 있다. 사내 포탈 사이트 상단 '업무시작' 및 '업무종료' 버튼으로 개인별 출퇴근 시간을 관리한다. 오후 5시가 되면 임직원 PC에 업무 마무리 및 연장근로 신청 안내 팝업창이 뜨며, 연장근로 필요 시 사전에 연장근로 시간을 기재해 직속상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또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및 업무 특성에 맞게 유연근로도 시행 중이다.

두산은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집중 휴가제도'를 권장하고 있다. 장마와 무더위로 업무효율이 떨어지기 쉬운 7~8월에 2주일의 휴가를,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1주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한국타이어는 자율과 창의를 중시하는 고유의 기업 문화인 '프로액티브 컬쳐(Proactive Culture)'를 바탕으로, 구성원 각자가 일과 삶의 균형을 자율적으로 조율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혁신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워라밸을 지키기 위한 유연근무제도도 전격 도입했다. 개인별 업무상황에 따라 미리 신청하기만 하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업무 특성상 유연근무제 활용이 어려운 회사는 점심시간을 2시간으로 확대해 추가 업무를 최소화하고, 자기계발·건강관리 등으로 조직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생산직의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지난해부터 '주간 연속 2교대제' 근무제를 시행했다.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수요일 '칼퇴'를 장려하는 '스마트데이' 역시 직원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다.

현대오일뱅크는 연중 언제든 2주 동안 휴가를 사용하도록 장려해 직원들의 재충전을 지원한다. 이른바 집중 휴가제도를 연중 도입한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부터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해 30분 일찍 퇴근하는 문화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원래 퇴근시간은 오후 6시지만 현대모비스 직원들은 수요일에는 30분 빠른 5시30분에 퇴근하고 있다. 시행 초기에는 집에 가지 않고 야근을 고수하던 직원들도 이제는 5시30분 퇴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효성도 매주 수요일을 '정시 퇴근의 날'로 정했다. 직원들은 이날 운영부서로부터 'Refresh day 정시 퇴근의 날입니다'라는 메일을 받는다. 업무에 바쁜 직원들도 수요일에는 무조건 오후 5시30분에 퇴근해야 한다.

이 밖에 많은 기업들이 경우 불필요한 회의나 문서작성을 최소화하는 등 근무시간 내 업무 집중도를 높여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또 직원들이 자신의 주당 근무시간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근태 입력 시스템을 개편해 주당 근로시간 초과시 눈치보지 않고 반차나 대휴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곳도 생겼다.

다만 철강업계의 경우는 대부분 이미 4조2교대(포스코) 혹은 4조3교대(현대제철, 동국제강)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직장 어린이집 구축, 직원들의 여가시간 활용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들을 병행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도모해야할 것"이라며 "불가피한 비상사태 발생 시엔 예외조항을 신설하는 등 기업을 위한 보완입법도 향후 마련돼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행 이후 실태조사를 거쳐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면 노동자의 연장근로 수당이 줄고 장시간 노동으로 산업재해 등의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반박하는 의견도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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