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오직 백성을 위해 평생을 가시고기 같은 삶을 살고 간 방촌 황희. 황희는 세종대왕과 함께 무려 18년간 영의정으로 재임하며 오직 백성들의 아픔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일하며 세종과 함께 백성을 위한 정치에 날실과 씨실이 되어 지치(至治)의 시대를 이룩한 인물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세종과 함께 청렴함과 바른 정치로 백성을 위한 새로운 지치의 시대를 이룩한 황희의 삶을 지금 이 시대에 투영해 보고자 오기수 김포대학교 교수(경영관광학부)가 집필한 역사소설 「백성의 臣(신) 황희」를 13회에 걸쳐 연재한다.

제1부 臣(신)의 귀환
소인小人

병신년(태종 16) 9월 스물사흘 아침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눈이 퀭한 태종은 매우 언짢은 용안으로 편전에 들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를 못한 모습이다. 잠시 후 병조 판서 이원과 이조 판서 황희 두 사람을 은밀히 불렀다. 

세자 양녕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세자가 주색에 빠져 서연(書筵, 세자를 위한 교육)을 자주 빼먹고 정사를 돌보지 않고 있다. 태종은 수차례 세자를 불러 타일렀다. 하지만 세자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더욱 술과 계집질에 빠져있다. 급기야 온갖 추잡한 소문이 궁 안에 가득 퍼지니, 태종은 갑사(甲士, 무장 군인)를 시켜 동궁전의 문을 봉쇄하고 잡인의 출입을 일체 금했다. 그 누구도 왕명 없이는 동궁전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런데도 얼마 전부터 왕명을 어기고 선공감(繕工監) 부정(副正, 종4품)인 구종수와 악공(樂工,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이오방 등이 대나무로 사다리를 만들어 밤마다 궁궐 담을 넘어, 동궁전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것도 모자라 밤중에 세자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잔치를 베풀고 남모르게 여색을 바치며, 은밀히 사냥하는 매를 바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소문이 어제 저녁 늦게 태종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태종은 즉시 구종수와 이오방을 의금부의 옥에 가두도록 명했다. 그리고 의금부 제조에게 이 이야기가 밖으로 세어나가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시켰다. 세자와 관련된 일이니 소문나지 않게 신속히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오늘 이원과 황희를 불러 그 대책을 논의하려 한 것이다.

두 사람이 편전에 들자 태종은 심난한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오라했다.

“경들도 들어 알고 있을 것이야…….”

“무슨 말씀이신지요?”

두 사람은 시치미를 떼며 당황스런 표정으로 동시에 대답했다. 사실 두 사람 다 태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자의 일이라, 먼저 아는 척 하는 것이 불충스러워 모른 척 한 것이다. 

그러자 태종은 두 사람을 힐끔 처다 보고는 한숨을 지었다.

“흠…….

흠…….” 

태종 역시 세자의 일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임금이 자식인 세자의 흉을 말하는 것은 가도(家道)의 수치이다. 《대학》에서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했었던가? 

자식하나 간수 못하고 어찌 국가를 다스린단 말인가!

태종도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눈치 빠른 이원이 먼저 아뢰었다.

“전하, 하문 하시옵소서.”

“신들이 듣겠나이다.”

태종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다가 결심한 듯 입을 때었다.

“아마, 경들도 들었을 것이야…….

어젯밤 의금부에 하옥된 구종수와 세자의 일을 말이야!” 

태종은 겸연쩍어 하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 설명이라기보다는 세자에 대해 변명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구종수가 세자를 꼬드겨 일이 그리 되었다는 말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두 사람이 한참동안 대답이 없자, 태종은 다그치듯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경들의 생각은…….” 

놀란 황희는 황망해 하며 아뢰었다.

“전하, 구종수가 한 짓은 응견(鷹犬, 사냥할 때 부리는 매와 개)의 일에 불과할 따름이옵니다. 

세자는 연소합니다.

세자는 연소합니다…….”

황희는 허리를 굽히며 진심으로 세자를 걱정하고, 태종을 위로하기 위해 거듭 말했다. 사실 세자 나이 22살이니 어리지는 않다. 그렇다고 세자를 문책하자고 할 수도 없지 않는가! 세자는 지난 갑신년(태종 4)에 11살의 나이로 왕세자에 책봉되어 기축년(태종 9)부터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세자의 타고난 성품은 자유분방하며 지나치게 호방했다. 

태종은 황희의 뜻을 헤아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능구렁이 같은 이원은 몸을 낮추며 아뢰었다.

“구종수의 죄는 종묘와 사직을 흔드는 일이니 국문 하시옵소서!”

태종 역시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후 말했다.

“알았소, 경들은 그만 나가보시오.”

그날 저녁 퇴궐한 이원은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의 집으로 향했다. 흔들리는 가마를 타고 가는 이원은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추석이 지난 지 십여 일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별빛은 총총하지만 달빛은 없다. 등불잡이의 희미한 불빛 사이로 이원의 표정이 꽤나 심각해 보였다. 궁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북촌의 하륜 집에 다다랐다. 북촌은 한양에서 방귀께나 뀐다는 권세 있는 양반들이 사는 곳이다. 시종들이 부산을 떠니 하륜 집의 집사가 뛰어 나와 이원을 맞이했다.

“드시지요, 대감마님!”

“부원군 대감 계시는가?”

“예, 대감마님…….”

“음…….”

집사는 이원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닌 눈치였다. 이원은 들릴 듯 말 듯한 짧은 대답을 하고 앞서 대문을 들어섰다. 집은 아흔 아홉 칸 집으로 대궐 못지않게 으리으리했다. 마당 가운데 있는 정원을 지나니 국화 향기가 그윽했다. 사랑채 방문은 열려 있었다.

집사가 외쳤다.

“대감마님!

이원이 대감 드십니다요.” 

이원이 사랑채에 들자 하륜은 앉은 자리에서 반갑게 손을 저었다.

“어서 오시게…….”

방으로 든 이원은 크게 절을 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부원군 대감.” 

“그래, 덕분에 잘 지냈네.”

“참, 지난 추석 때 보낸 산삼은 잘 받았네.” 

“그 귀한 선물을…….”

“아 예, 뭐 변변치 않습니다요.”

“그래, 이 밤에 무슨 일로…….”

“예, 다름이 아니오라…….”

이원이 말꼬리를 흐리자 하륜은 늙은이의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 밤에 나를 찾아 왔으니 예삿일은 아닐 것이고……, 주저하지 마시게.” 

“예…….”

이원은 낮에 황희와 함께 전하를 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한참 듣고 있던 하륜은 탄식하듯 말했다.

“그 참…….

세자께서!

세자께서…….

성상께서 무척이나 상심하셨겠네, 세자께서 어찌 그리하시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세.

황희의 일은 다음에 다시 생각해보세.” 

“알겠습니다. 대감.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원이 일어서자 하륜은 짧게 ‘일간 보세’ 했다.

이원이 나가고 하륜은 한참 동안 사방침에 팔을 괴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렸을까, 하륜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 쉬면서 순간 ‘황희라……’ 하며 몸을 곧추세웠다. 

하륜은 태종을 왕좌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다. 

1차 왕자의 난 때에 이방원을 적극 지지하여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 1등이 되었고, 2차 왕자의 난에는 자신이 직접 주도하여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 1등이 된 자이다. 그래서 태종은 그를 고굉(股肱,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이요, 나라의 주석(柱石, 국가의 중임을 떠맡은 사람)이라 늘 말했다. 지금은 원로대신으로 조정에서 물러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실세 중의 실세이다. 

그는 무자년(태종 8)부터 8년간 영의정을 지냈으나, 지난해 10월 민무회(중전 원경왕후의 넷째 동생)의 죄를 청하지 않았다고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좌의정으로 좌천되었다. 그리고 올해 나이 70이 되어 좌의정에서 치사(致仕,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되면서 진산부원군에 봉해져 조정에서 물러나 있지만, 아직도 그의 권세는 막강하다.

그런 그가 요즈음 태종의 총애를 받으며 서서히 조정에서 힘을 키우고 있는 황희를 시기하고 있다. 지난 6월에도 하륜은 도승지 조말생을 통해 태종에게 은밀히 황희를 비방하는 글을 밀봉하여 올렸다.

“정치는 사람을 쓰는 것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한 사람의 군자를 쓰면 다스려지고, 한 사람의 소인을 쓰면 어지러워지는 것을 성상께서도 깊이 알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대간(大姦, 아주 간사스러운 사람)이 외식하면 비록 지극히 밝다 하더라도 또한 이를 알기 어렵습니다.

심온과 황희는 매우 간악한 소인이니, 의정부나 육조에 있는 것은 마땅하지 못하고, 직책이 인사를 맡는 이로서는 더욱 불가하옵니다.”

그때 태종은 그 글을 보고 ‘진산(晉山)이 참으로…….’ 하며,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조말생에게 말했다. 

“하륜은 충직한 신하이므로, 내가 그 덕의를 높여서 신하라고 일컫지 않고 항상 빈사(賓師, 귀한 손님)로서 대접했다. 그러나 이 밀봉은 내가 심히 불편하다.

황희는 내가 일찍부터 한집안으로 대접해 왔고, 더군다나 심온은 충녕대군의 장인이다. 이 두 사람에게 무슨 불초한 것이 있기에 비방하기를 이와 같이 심하게 하는가?

옛사람이 ‘임금이 치밀하지 못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치밀하지 못하면 몸을 잃는다.’고 했다.

 어찌 이리하는지…….”

그리고 나서 태종은 조말생에게 급히 명했다. 

“너는 진산의 집으로 가서 그 까닭을 물어서 아뢰라.”

그리 다급한 일도 아닌데, 평소 가까이 한 황희와 심온을 시새움하고 모략하니 태종이 발끈한 것이다.

조말생은 하륜을 찾아가 ‘황희와 심온을 간악한 소인’이라고 한 실증을 묻는 태종의 말을 전했다.

하륜은 의기양양 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께 아뢰라고 했다.

“황희와 심온은 본래 쇄쇄한 소인들입니다. 이전에 황희와 심온은 서로 내통하고 공모하여 이중무의 노비 소송을 오결했고, 황희는 또 홍유룡 첩의 노비를 다투어 빼앗았으니, 어찌 사람의 마음이 있고서야 남의 노비를 탐낼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다만 한 가지 예일 뿐이요, 간악하고 불초한 일들이 그들에게 많이 있습니다.

 신이 어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 아뢰겠습니까? 황희는 옛 공로가 있고 심온은 종실과 관련된 사람이니, 버리는 것은 불가하지만 중추가 되는 자리에 쓴다면 진실로 불가합니다.” 

하륜의 이 말들은 모두 허황된 것이다. 특히 이중무의 노비 소송은 호조에서 잘못 처결한 것이다.

지난 2년 전의 가을이었다. 전 철원 감무(監務) 장수가 ‘이중무의 노비 소송’을 호조에서 오결했다고 신문고를 쳐서 고하니, 태종은 그 사건의 시시비비를 따져 육조 판서들에게 바로잡게 했다. 

하지만 그 당시 황희를 비롯한 육조의 판서들은 조사하지도 않고, 오히려 장수가 거짓을 꾸며 망령되게 신문고를 쳤다는 죄만을 청했다.

이에 태종이 다시 승정원에 그 사실을 조사하게 했더니, 육조 판서들이 왕명에 따라 자세히 조사하지 아니한 것이 밝혀졌다. 전 이조 판서 한상경과 이조 판서 황희(그 당시 예조 판서) 등이 이중무의 노비 소송을 심리하지도 않고 보고된 대로 처결해버린 것이다. 

화가 난 태종이 명했다.

“이 노비에 대한 일을 어찌하여 상세히 살피지 못하고 육조와 함께 통함이 이와 같았는가?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 자들과 다르다 하겠느냐?

 이조 판서 황희와 호조 판서 심온을 파직시켜라. 하지만 전 이조판서 한상경과 전 병조판서 김승주는 공신이니 죄를 논하지 말라.”

이 일은 황희가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태종은 한 달도 안 되어 황희를 행랑도감의 제조로 복직시켰으며, 그 해 동짓달에 의정부 참찬에 제수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황희는 ‘근거 없는 노비를 사용하고 있다.’고 무고를 당했다. 전 전라도 수군도절제사 홍유룡과 그의 첩 정향이 자신들의 노비를 빼앗겼다고 황희를 고발한 것이다.

참으로 원통한 일이었다.

황희는 편전으로 달려가 태종에게 억울한 마음을 호소했다.

“전하, 신의 죄를 밝혀주소서!”

그러자 태종은 즉시 이 사건을 의금부에 내려 그들의 추국을 명했다. 

“정향이 이조 판서 황희가 근거 없는 노비를 사용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하니 사건의 진상을 밝혀라.” 

정향은 곧바로 거짓이라 자복했다. 하지만 홍유룡은 오히려 이 사건을 성상께서 잘 알지 못한다고 버티다가 의금부에서 증거를 대며 추국했더니, 그도 결국 공초(供招,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에 자복했다. 이 일로 홍유룡을 자원부처하게 했다. 홍유룡의 죄는 장 1백대에 도 3년에 해당했지만, 그가 태조의 원종공신이었기 때문에 감형한 것이다. 

하륜은 이 두 노비 사건을 들며 황희를 ‘간악한 소인(小人)’이라고 비방한 것이다. 태종이 다 알고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하륜은 자기 말을 잘 듣지 않는 황희가 전하의 총애를 받고 신임을 얻어 조정의 중추가 되니 시기한 것이다.

조말생이 돌아와 하륜의 말을 그대로 아뢰니 태종은 역정을 내며 말했다.

“다음에 내 친히 진산을 보고 다시 말하겠다.” 

사실 하륜이 황희를 비난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태종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0년 전에 태종이 황희를 도승지로 삼고자 하여 하륜과 의논하니, 그 때 그는 안 된다고 했다.

“전하!

황희는 간사한 소인이오니 믿을 수 없사옵니다.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하지만 태종은 하륜의 말을 듣지 않고 황희를 도승지에 제수했다. 이후부터 하륜과 황희는 서로 사이가 나빠졌다. 

그 후 신묘년(태종 11)에 영의정 하륜이 집권하면서 조말생을 사헌부 집의로 제수하고자 했다. 그때 황희는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조말생의 고신(告身, 직첩)에 서경하지 아니했다. 그러자 하륜이 두 번이나 황희의 집에 직접 찾아가 부탁했으나 황희는 모두 거절했다. 

오기수 김포대학교 경영관광학부 세무회계정보과 교수
오기수 김포대학교 경영관광학부 교수

이 후로 둘은 서로를 원수 대하듯 했다.

벌써 오래전의 일들이다.

그런데 조정은 하륜을 수장으로 한 일충파(一忠派) 세력이 장악하고 있으니, 황희의 처신이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니었다. 하륜뿐만 아니라 조정의 권세 잡은 대신들은 거의 모두가 황희를 견제하고 있었다.

일충파는 ‘일편단심으로 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하륜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처음에는 공신들 위주로 회합을 가졌지만 차츰 세력을 넓혀 권문세가를 끌어들여 조정을 장악하고 있다. 지금은 권력의 냄새를 맡은 자들이 똥파리처럼 모여들어, 영의정 유정현을 비롯한 전 현직 조정 관리들로 거대한 집단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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