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엔터터인먼트의 수장이자 그 스스로도 인기가수인 박진영이 뜻밖의 논란에 휘말렸다. 연예 전문매체 디스패치는 박진영이 구원파 모임에 참석한 정황이 있다며 자세한 내용과 녹취파일까지 폭로했다. 기사가 나간 이후 JYP엔터테인먼트 주가는 크게 출렁이며 이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확인시켜줬다. 연예기획사들의 가장 큰 기회이자 위협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도 다시 한 번 증명됐다.

박진영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9월에 아예 다시 한 번 모임을 할 테니 기자들이 와서 들으라는 ‘정면 돌파’ 방식을 택했다. 여론의 반응은 엇갈린다. 다 떠나서 일단 9월까지 이 이슈가 지금처럼 생생하게 살아있을지 미지수다. 이 뒤로 펼쳐질 자세한 내용은 연예매체 기자님들께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

박진영. 출처=JYP 공식 사이트
박진영. 출처=JYP 공식 사이트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한국 사회가 종교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번 사안이 처음 불거졌을 때 다수의 사람들은 ‘박진영이 무슨 종교를 갖건 그게 무슨 문제냐’라고 비판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진짜 중요한 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라고 첨언했다.)

이런 비판을 제기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역사학자 전우용이 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박진영과 배용준이 유병언과 같은 구원파 신도라는 게 왜 비난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남북 정상회담 열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면 입을 모아 ‘아멘’을 외치는 사람들도 비난받지 않는 나라에서”라고 첨언했다. 종교(더 정확히는 개신교)에 대한 반감을 가진 많은 한국인들의 심정을 대변한 듯한 코멘트다.

전우용의 트윗은 여러 각도로 고찰할 수 있다. 일단 개신교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정말 많다는 사실부터 지적하고 싶다. ‘남북 정상회담 열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면 입을 모아 ‘아멘’을 외치는 사람들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전우용 또한 그 비판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기 위해 이 트윗을 쓴 것 아닌가?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으며, 전우용은 그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분위기에 편승했을 뿐이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점은 과연 모든 종교가 평등한 위상을 갖느냐의 문제다. 대한민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누구나 원하는 종교를 가질 수 있다. 일본에는 배용준을 모시는 신사도 있을 정도니까 인간의 상상력만큼 다양한 종교가 가능할 것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신념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종교에 대한 비판까지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한 개인을 숭앙하는 종교는 이른바 ‘사이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도 사이언톨로지 같은 종교는 좀 특이한(?) 취급을 받는다.

더구나 구원파는 2010년대 한국 사회 최대의 아킬레스건인 세월호 문제와 직결된 곳이다. 우리는 세월호 문제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 비극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비슷한 사고가 재발해선 안 된다는 책임감은 여전히 노란 빛깔의 리본 안에서 우리 어깨를 짓누른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을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에 사업을 벌이고 있던 구원파는 세월호의 부실관리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집단이다. 아울러 유병언은 구원파의 중심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었고, 그 종교집단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 이용했다는 이유로 법적인 처벌을 받아 마땅한 자였다. 그런 그가 속했고 이끌었던 구원파에 속했다는 것이 과연 '종교의 자유'라는 관점으로만 퉁 치고 넘어갈 일인가?

크리스트교와 불교, 이슬람교는 세계 3대 종교로 이들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를 상당 부분 설명한다. 이슬람교의 경우 중동사를, 개신교의 경우 서양권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문명적 요소’다. 단순히 ‘예수천국 불신지옥’만을 부르짖는 캠페인 같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기독교의 위상을 이처럼 밑바닥으로 떨어트려 놓은 것은 기독교 지도자들 본인이다. 많은 지도자들이 마치 자신이 예수라도 된 것처럼 권위적인 모습으로 기존 신도들, 그리고 여러 가지 불상사가 없었다면 신자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을 좌절시켰다. 기독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스스로가 짊어져야할 문제다.

그러나 기독교의 문명사적 측면이 지나치게 폄하돼 구원파와 동급으로 취급되는 건 심각한 여파를 남길 수 있다. 일단 대한민국 역사를 이해하는 데만도 기독교를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조선 말기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갖은 핍박을 받으며 전파한 ‘사랑’의 정신이야말로 그 시절 조선인‧한국인들을 살게 만든 힘의 근간이었다.

무슨 거창한 신학적 담론이 아니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간결한 문장 안에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신분제의 폐단과 일제 강점기의 엄혹함 속에 눌려 있던 사람들의 정신은 ‘약자들을 위한 종교’인 기독교에 감동을 받아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었다. 20세기 초 한반도 역사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3·1운동을 일으킨 민족 대표 33인 중 종교를 갖지 않았던 사람은 고작 몇 명밖에 없다.

자칭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이러한 역사의 저간을 무시하고 모든 종교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다. 신(神)을 포함해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그저 저잣거리의 농담 소재가 돼버린 시대. 그런데 어떡하지? 꿈과 희망, 도덕과 가치를 포함한 ‘인생의 중요한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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