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과 함께 국가 기간산업 중 하나인 조선 산업, 그러나 조선업 불황으로 군산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폐쇄되었고, 삼성중공업 조선소와 대우해양조선이 위치한 거제마저 휘청거린다. 스트레이트뉴스는 거제 지역경제의 현주소와 향후 방향성을 가늠해 보기 위해 경상남도 거제시를 찾았다. <편집자 주>

“집값요? 한 1억 이상 떨어졌죠. 경기 좋을 때는 전세도 없고 모조리 월세였는데….”

거제 삼성중공업에서 불과 150m에 장평오거리에서 5년째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박예순 씨(58)의 말이다. 그는 삼성중공업의 일감이 대폭 준데다 고용도 불안, 매물이 넘치고 월세 보증금도 곤두박질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월세는 29평 아파트가 3,000만 원에 60~70만 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500만 원에 30만 원 해도 아예 들어갈 사람이 없어요. 거래가 끊겨서 우리도 망할 판이라니까.”라고 한숨을 쉬었다.

장평동 삼성중공업 조선소 정문 ⓒ스트레이트뉴스
장평동 삼성중공업 조선소 정문 ⓒ스트레이트뉴스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 세계 제일의 조선해양도시인 거제가 불황의 그림자의 한복판에서 시름겨워하고 있다.

2001년 17만여 명이던 인구는 조선업 호황 덕에 불과 7년 만에 3만여 명 증가한 20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조선업 최호황기였던 2010년, 거제시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국내 최고 수준인 4,146만 원이었고, 실업률도 0.5% 이하로 사실상 ‘완전고용 도시’였다.

당시 거제시를 두고 “지나다니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거제시가 이처럼 폭발적인 발전을 구가한 배경에는 장평동에 위치한 삼성중공업 조선소와 옥포 대우조선해양이 있다.

위기의 징후와 조선업 불황

그러나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조선업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금융위기는 세계적인 경기후퇴로 연결되면서 컨테이너 운반선 수주 감소로 이어졌다. 설상가상, 2014년에 이르자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해양 플랜트 발주 감소도 더해졌다.

경남 거제시의 최근 3년 동안 조선업 근로자 추이 (자료 : 거제시, 그래픽 : 스트레이트뉴스)
경남 거제시의 최근 3년 동안 조선업 근로자 추이 (자료 : 거제시, 그래픽 : 스트레이트뉴스)

저렴한 인건비를 내세운 중국 조선업의 부상도 국내 조선업 불황을 부채질한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2015년까지 LNG 운반선,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등 총 16척의 선박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했던 대한해운이 중국으로 옮겨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달 거제시 일자리지원센터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 직영, 사내, 사외 업체를 포함한 조선업 관련 근로자 수는 370여 업체 총 92,000여 명에 달했지만, 2017년 12월에는 270여 업체 51,0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같은 기간 외국인 근로자 수 역시 15,000여 명에서 지난 2월말 현재 8,000여 명으로 줄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하반기 시군별 주요 고용지표’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거제시 실업률이 전국 평균인 3.5%를 두 배 가까이 상회하는 6.6%로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것.

거제 삼성중공업 인근에 아파트 임대사업자를 구하는 현수막 @스트레이트뉴스
거제 삼성중공업 인근에 아파트 임대사업자를 구하는 현수막 @스트레이트뉴스

금융위기 이후 침체 조짐의 국내 조선업은 2014년부터 본격화, 2016년에 저점을 찍은 듯이 보이나 여전히 진행형이다.

군산 닮아가는 삼성중공업 조선소

신거제대교를 건너 고현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왼쪽에 펼쳐진 해안가 풍경 사이로 거대한 타워 크레인들이 솟구쳐 있다. 삼성중공업 조선소다. 장평오거리에서 해안 방향으로 길게 뻗은 직선도로 끝에 정문이 위치해 있지만, 오가는 차량은 없다.

2014년 이전만 해도 퇴근시간이면 장평오거리 근방은 자전거 부대로 활기를 띠었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수주 받은 선박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건조하는 대형 선박은 없는 탓이다.

멈춰 선 삼성중공업 조선소의 보조 생산라인 ⓒ스트레이트뉴스
멈춰 선 삼성중공업 조선소의 보조 생산라인 ⓒ스트레이트뉴스

외환과 금융 등 양대 위기에도 조선 건조로 불야성을 이뤘던 장평동 삼성중공업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다. 당시 왁자지껄로 북적였던 술집과 식당은 지금 정적이 감돈다.

불꺼진 곳은 비단 상점만이 아니다. 입주 단지에 불꺼진 아파트는 수두룩하다. 지난 3월 말 현재 거제시의 미분양 아파트는 모두 16개 단지에 모두 1,700여 채. 전고점인 지난해 9월 1,800여 채에 비해 100가구가 줄었으나 완공 후 미분양은 늘어만 간다.

4년 전에 청약 경쟁률이 수십 대 1로 분양받으면 1억 가량 웃돈이 붙던 분양 열기는 싸늘했다. 오션파크자이와 문동동 센트럴푸르지오, 상동동 힐스테이트거제, 양정동 아이파크 등 입주를 마치거나 앞둔 유명 브랜드 단지도 미분양이 100채가 넘는다. 이른바 ‘불꺼진’ 아파트로서 악성 미분양이다.

분양가를 낮추며 판촉에 안간힘이나 구매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 데다 기존 아파트의 집값이 폭락, 분양가를 밑도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입주한 고현동 ‘e편한세상’의 전용 84㎡의 지난 4월 실거래가는 2억4000만 원대. 입주 당시 3억5000만원 안팎보다 1억 원 떨어졌다. 금융비용을 감안하면 당초 분양가를 밑도는 매매가다.

세계 조선해양산업 중심도시 거제시는 경기 불황 장기화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일로다. 연도별 아파트매매량 (그래픽/스트레이트뉴스)
세계 조선해양산업 중심도시 거제시는 경기 불황 장기화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일로다. 연도별 아파트매매량 (그래픽/스트레이트뉴스)

장평오거리 공인중개사 박 씨의 하소연은 거제시의 각종 부동산 지표에도 나타나 있다.

2015년 6월의 전국과 거제시 매매계약 지수를 100으로 볼 때, 2018년 3월 현재 전국의 아파트 매매계약 지수는 104.7로 소폭 상승한 반면, 거제시는 78.2로 급락했다. 전세가격 지수 역시 전국 평균인 105.7에 한참 못 미치는 78.7로 조사됐다.

아파트 거래 건수도 급감했다. 2015년에 4,300여 건을 상회했던 아파트 거래는 지난해 2,600여 건으로 쪼그라들었다. 토지 거래 또한 2015년 19,500여 건에서 2017년 5,500여 건으로 급감했다. 경매 낙찰가율 역시 향후 기대가치가 낮아 줄곧 하향세를 그리다 지난해 9월 이후 60%대에 머물러 있다. 침체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아파트와 상가가 언제 활력을 되찾을지….” 불황의 끝이 보이지 않으면서 시장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거제시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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