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열풍에 페미니즘이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사전을 찾아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스트레이트뉴스는 페미니즘 이해를 돕는 책을 연이어 추천한다.

최근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로 대두하면서, 모녀 관계를 포함한 여성들의 삶이 어딘가 잘못됐음을 깨달아버린 여성들의 답답함과 불안함에 대한 호소는 점점 더 커졌다. 

<나는 엄마가 힘들다>는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비평가인 사이토 다마키와 일본의 유명 문인들이 대담 형식으로 모녀 갈등의 양상과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모녀 관계의 회복을 고민한 일종의 ‘모녀 관계 보고서’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모여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모녀 관계를 둘러싼 현실과 여성의 삶을 깊이 있게 토론하며 많은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냈다. 

쇼핑부터 여행까지 모든 일상을 함께하는 단짝 친구 같은 모녀가 있는가 하면, 소위 ‘전쟁’을 겪고 있는 모녀도 있을 것이다. 모녀 관계는 사랑과 연민, 원망, 애증, 동정, 질투, 죄책감 등이 섞여 저마다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지나치게 억압적인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딸이 있는가 하면, 엄마와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 의존도를 낮추지 못해 갈등을 겪는 모녀도 있다. 언뜻 보기에 이 갈등은 개인과 개별 가정의 내밀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갈등의 원인과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차별과 여성 혐오, 가부장제, 세대 갈등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가부장적인 가족관이 여전히 당연시되는 환경에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착취, 감정 노동은 필연적으로 ‘아빠 소외’를 비롯해 엄마와 자녀 간의 밀착 관계를 낳을 수밖에 없고, 여기에 성 편견의 무의식적 수용에서 비롯된 육아 방식까지 더해지면 모녀는 필연적으로 과도하게 밀착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이러한 모녀 관계의 특수성에 주목한 이 책은 대담자들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사적 체험이 녹아든 자기 고백으로 공감과 정서적 울림을 안기는 동시에 모녀간의 갈등이 시대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성찰한다.

바로 지금 갈등하고 있는 엄마와 딸은 물론 갈등하는 모녀 사이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주변의 가족, 어린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새내기 부모까지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유의미한 분석과 조언을 제공하는 한편,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모녀 갈등이 가진 의미와 모녀 관계를 둘러싼 고정관념, 사회 분위기를 돌아보게 해준다.

사이토 박사가 모녀 문제의 근원으로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여성의 몸을 통한 동일시’와 ‘성 편견’이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일상적으로 매 순간 자신의 몸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다움’이 여전히 존재하는 지금의 환경에서 엄마는 결국 딸의 몸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함으로써 여성다운 몸을 기르는 훈육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딸들의 몸에는 엄마의 말이 주입되고 새겨지며, 딸들은 자신에게 내재된 엄마의 말을 평생 지우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이른바 ‘일란성 모녀’가 탄생하는 것이다. 

첫 번째 인터뷰 상대인 만화가 다부사 에이코가 그 전형적인 예다. 최근 만화 에세이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다부사 에이코는 기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거의 평생을 엄마와 치열하게 다투며 지냈다. 그야말로 삶 자체가 ‘딸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딸’의 치열한 분투기였던 셈이다.

「나는 엄마가 힘들다」 사이토 다마키 外 지음·전경아 옮김(책세상·2017)
「나는 엄마가 힘들다」 사이토 다마키 外 지음·전경아 옮김(책세상·2017)

그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무엇보다 죄책감이었다. 사이토 다마키 박사 역시 딸들이 엄마에게 가지는 죄책감을 지적하며 ‘서로를 불쌍해하고 관계를 질질 끌면서 상호의존적이 되는 관계’를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모녀 갈등을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끊임없이 고민해온 다부사 에이코의 솔직한 고백과 조언은 마음 깊이 와 닿는다. 

다부사 에이코가 직접 경험한 투쟁의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주며 실질적 조언을 제공한다면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와 만화가 하기오 모토는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모녀 관계를 조망한다.

두 사람 모두 여성 작가로서 엄마와 딸, 모성, 가족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기에 자신이 관찰해온 가족이라는 공동체와 그중에서도 엄마와 딸만이 공유하는 독특한 감정 등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특히 <마더 콤플렉스>, <8일째 매미>, <언덕 중간의 집> 등 모성과 엄마라는 테마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창작 활동을 이어온 가쿠타 미쓰요의 “화목한 가족은 미디어가 강요해온 이미지에 불과하며 모성 본능은 신화일 뿐”이라는 해석과 “엄마도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깨달음이 모녀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해준다.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공저) 등의 저서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가족 심리상담 전문가 노부타 사요코는 자신이 상담 현장에서 접한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여성이라는 몸을 공유하는 모녀, 자신 안에 내재한 여성 혐오를 딸에게 투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딸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심리를 냉철하게 분석한다.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로 오랫동안 가족사회학을 연구해온 미나시타 기류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가족관의 변화와 가족 내 엄마의 역할 변화를 짚어나간다. 그러면서 사회의 변화에도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보수적인 가족관을 지적한다.

특히 육아를 개인적인 문제, 각 가정의 사적인 영역으로 보는 인식과 그로 인해 여성이 떠안는 책임감과 부담감, 여성의 사회적 고립, 경력 단절 등 엄마를 피할 수 없는 낭떠러지로 내모는 사회적 환경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아울러 전근대적 가족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갈등 분석까지 더해 논의를 더욱 풍성하게 펼쳐나간다. 

모녀 갈등은 당사자들의 문제인 동시에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라 말해온, ‘이래서 집에는 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온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조장하고 방관해온 문제다.

사이토 다마키 박사와 인터뷰이들이 엄마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딸은 엄마로부터, 엄마는 딸로부터 각각 독립해 ‘자기만의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뼈저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여성과 모성을 향한 사회적 인식에 대한 고민과 반성, 이른바 ‘독박 육아’를 강요하는 정책 기조의 변화 없이는 모녀 갈등을 포함한 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 입을 모아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남녀 동수 내각을, 사라지는 유리 천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알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우리 사회의 절반은 아직도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받아온 엄마와 그런 엄마의 피난처 역할을 강요받는 딸들로 이뤄져 있다. 나아가 그들은 다시 경력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엄마로, ‘맘충’이라 불리며 사회에서 고립돼가고 있다.

이 책은 모녀 갈등을 경험해본, 그리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여성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다른 많은 이들에게는 무의식적,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왔던 가족관과 성 편견을 돌아보게 해준다. ‘엄마의 친구 같은 딸’을 강요하는 대신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누군가의 엄마나 딸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조언할 때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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