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욱의 마이동풍 @스트레이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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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농원에 울타리를 쳤습니다. 밭둑을 따라 5 미터 간격으로 90여 개의 쇠파이프를 땅에 박고 그물을 빙 둘렀습니다. 파이프와 파이프 사이마다 고추 지지대를 한두 개씩 박아서 보강하였죠.

작년에 농사 동무가 메주콩을 심었는데, 동네 고라니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준 꼴이 되었습니다. 바리깡으로 머리 밀듯 밑동에서부터 깨끗이도 먹어치웠더군요.

올해는 옥수수, 고구마, 야콘, 토란을 심습니다. 감자는 이미 심었고요. 고라니보다 더 무서운 놈이 멧돼지입니다. 숲속의 미식가인 멧돼지가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이 옥수수와 고구마라는군요. 둬 마리만 들어와도 일 년 농사가 하룻밤에 결딴난다고 합니다.

멧돼지가 얼마나 영리한지 아세요? 개가 밭을 지키면 고라니는 막을 수 있지만 멧돼지에겐 소용없습니다. 멧돼지가 개의 행동반경에서 30 cm 밖으로 유유히 돌아가더라는 목격자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튼튼하게 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건달 농사라지만 오아시스의 이웃님들에게 수확물을 조금씩이라도 보내 드리려면 멧돼지와 고라니의 분탕질은 막아야 하니까요.

까치의 집적거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새총을 들고 번까지 설 수는 없잖아요. 울타리 치는 일을 도와준 친구가 있습니다. 알고 보니 대학 후배더군요. 과묵하고 침착하고 영민한 사람입니다. 일머리가 좋아서 무슨 일이든 야무지게 해냅니다.

사람 다음으로 산을 좋아하는 산 사나이, 올해 산삼 한 뿌리쯤 캘 듯싶습니다.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아니지만 등나무 그늘에서 봄바람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며 달농원의 새 식구이자 농사 동무가 되기로 약조하였습니다.

​오미자덩굴은 새순을 쭉쭉 벋고 있습니다. 거름도 충분하고 비도 알맞게 왔습니다. 예보대로 주초에 비가 한 번 더 내리면 그물망을 부여잡고 힘차게 솟아오를 겁니다.

야성이 강한 오미자 덩쿨
야성이 강한 오미자 덩쿨

포도는 인간이 재배한 지 2,000 년이 넘었습니다. 오미자는 30 년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오미자는 야성(野性)이 살아있습니다. 병충해에 강해서 농약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햇볕을 고루 받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가지치기만 잘 해주면 됩니다. 제 전정 솜씨 어떻습니까?

오미자 농사는 처음이지만 저는 가지를 치면서 오미자와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 받았습니다. 사진에는 두 개의 순만 보이지만 전정하기 전에는 대여섯 개의 줄기와 순이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보자, 올해 쑥쑥 자라서 내년에 꽃 피우고 열매 맺을 가지로 누가 좋을꼬?”

“저요 저요.” “그래, 네가 좋겠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봄여름 두 계절을 네 것으로 만들어 보렴.”

오미자 전정은 본줄기로 키울 두 개의 순만 남겨두고 과감하게 자르는 것이 요령입니다. 한 순은 왼쪽으로, 다른 한 순은 오른쪽으로 벋도록 유도합니다. 여름이 지나면 오미자 밭은 숲으로 보일 만큼 울창해질 것입니다.

감자도 싹을 틔웠습니다. 잎 색깔을 보면 한눈에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자 잎이 두텁고 거무튀튀합니다. ‘됐어, 이제 암탉이 알을 품듯 감자알 품을 일만 남았네.’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가 감자 잎을 갉아먹든 말든 우리 건달 농부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감자 알이 굵으면 굵은 대로, 잘면 잔 대로 자연(自然, 절로 그러함)이 준 그대로 배달해 드릴 생각입니다.

옥수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잘생긴 모양과 빛깔을 뽑으려고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당신의 것이듯 달농원은 이웃 님들의 땅이고, 건달 농부는 여러분의 머슴이니까요.

오늘은 모처럼 집에서 쉬었습니다. 빨래하고, 목욕하고, 면도하고, 장작 패고, ​마당의 풀을 뽑았습니다.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저는 어머니라고 부릅니다-로부터 뜻밖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아따, 겁나게 깨끗하네. 집이 주인 잘 만났어." 제가 얼른 고쳐 드렸죠.

"아닙니다. 제가 집을 잘 만난 것이죠."

아무리 봐도 저는 세월을 잘못 만난 것 같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이웃을 잘 만났고, 오로지 이웃 님들 덕에 살아갑니다.

감자와 옥수수가 ​비와 바람과 햇볕에 의지하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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