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구본무 회장, 책임경영으로 매출 5배 성장
'전자-화학-통신서비스' 핵심 사업군 경쟁력 갖춰
대기업 첫 순환출자구조 해소, 지주사체제 전환

구본무 LG회장이 우수혁신사례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고인이 된 구본무 LG회장이 생전 사내 한 행사에서 우수혁신사례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온화하면서도 소탈한 성품에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으로 정도경영과 글로벌 LG를 위해 헌신해온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구 회장은 와병 중이던 서울대병원에서 이날 오전 9시 52분 별세했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을 발견해 수술과 치료에 전념했지만 경영 복귀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LG그룹 측은 "구 회장은 1년간 투병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며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1945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구자경 명예회장(93)의 4남 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4년 연세대 상학과에 입학한 구 회장은 병역 만기제대 후 유학을 떠나 1972년 미국 애슐랜드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75년 LG화학(구 럭키)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하며 LG그룹에 첫 발을 내딛였다. 

1989년 그룹 부회장에 올라 본격적인 책임경영을 시작한 뒤 1995년 2월22일 50세에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하며 LG의 제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럭키금성'에서 'LG'로 CI 변경을 주도하며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구 회장은 23년간 LG그룹을 이끌면서 LG 사업군을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으로 구축해 경쟁력을 높였다. 도전과 혁신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등 자동차부품,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도 발굴했다.

회장 취임 당시 매출액은 30조원 규모(1994년 말) GS, LS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160조원 규모(2017년 말)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다섯 배 이상 성장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인 'LG 글로벌챌린저' 발대식에 참석해 수상자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구본무 LG 회장이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인 'LG 글로벌챌린저' 발대식에 참석해 수상자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국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약 10만명에서 약 21만명으로 2배가량 늘어났다. 이 가운데 약 8만여 명이 200여 개의 해외 현지 법인과 70여 개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 중이다.

구 회장은 특히 ‘영속기업 LG’의 해답은 R&D와 인재라는 신념과 의지로 서울 마곡지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 사이언스파크'를 완성시키는 등 아낌없는 투자와 육성에 열과 성을 기울였다. 

아울러 선진적 지배구조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로 국내 대기업 최초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결단하는 등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의 토대를 쌓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김영식 여사와 장남 구광모 LG전자 상무(ID사업부장), 장녀 구연경씨, 차녀 구연수씨 등이다. 

구 회장의 경영권은 LG가문의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40)가 물려받게 된다. LG의 지주사인 (주)LG는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구 상무를 사내이사로 추천하고, 다음달 29일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해 이를 확정할 예정이다. 

이는 향후 승계 구도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구 상무는 (주)LG의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그룹 내에서 경험을 쌓으며 후계자로서의 역량을 다지는데 힘써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