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르포-DMZ①동해] 전쟁놀이 접고 오가며 살았으면...
[ST르포-DMZ①동해] 전쟁놀이 접고 오가며 살았으면...
  • 김태현 선임기자 (bizlink@hanmail.net)
  • 승인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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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출발해 평창올림픽과 두 차례에 걸친 남북회담, 북미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장정이 거친 풍랑 속에서도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70여년 간 허리잘린 DMZ(비무장지대)를 머리에 이고 살아온 최북단 접경지를 탐방, 남북 공동 번영과 평화를 염원하는 현지 목소리를 전하는 르포르타주를 기획했다. 철도 상행선이 멈춘 제진역(강원 고성 현내면), 백마고지역(강원 철원 대마리), 도라산역(파주 장단면) 등 세 곳과 인근지역, 2010년 11월에 포격을 당한 연평도(인천 옹진 연평면) 등 자유한국당의 전통적인 텃밭들을 둘러본다. 이번 르포르타주는 6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목차]
① 동해: 금강산 관문에 부는 변화의 바람
② 동해: 제진항, 남북경협의 전진기지 될까?
③ 동해: 김일성의 고려연방제와 2018년의 한반도 정세
④ 내륙: 철원의 백마는 달리고 싶다
⑤ 내륙: 한탄강과 임진강의 합수머리
⑥ 서해: ‘눈물의 섬’ 연평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리다 동홍천IC에서 내려 인제와 원통,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체포를 피해 잠시 의탁했던 백담사를 지나면 진부령이 나온다. 금강산 가는 길이다.

휴일을 맞아 아이들과 진부령미술관을 찾았다는 고성 주민 배윤희(37)씨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수 있을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 생각에는 될 거 같아요. TV보니까 파주랑 고성에서 철도가 연결된다고 그러던데, 그전에 금강산 관광부터 다시 하지 않을까요? 개성공단도 다시 열리고요.”

금강산 관광의 관문 진부령 ⓒ스트레이트뉴스
금강산 관광의 관문 진부령 ⓒ스트레이트뉴스

마차진리 중간쯤에 자리 잡은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출입신고소는 통일전망대로 가려는 차량들로 북적였다. 관리요원 김양석(54)씨에게 남북회담 전후 분위기를 물었다.

“글쎄요,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남북회담 이후에 방문객이 많아진 건 사실입니다. 한 20% 정도? 그 정도요. 땅값은 금강산 관광 시작될 때 급등했다가 이후에 떨어졌는데, 지금 또 들썩인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어요. 물건 나온 게 없다고. 이 위로 배봉리, 명파리, 이렇게 두 마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민통선 안쪽이었는데, 지금은 밖이 됐죠. 명파리에 151가구가 사니까 거기 가서 한번 얘기 들어보세요.”

곁에 앉아 있던 대대리 주민 유한근(63)씨도 끼어들었다.

“금강산 다시 가야죠. 금강산 관광 할 때는 여기 마차진리 해안도로 경기가 참 좋았는데, 지금은 엉망이잖아요. 박왕자 사건이 2008년에 났으니까 이게 벌써 몇 년이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동네는 그대로야. 죽 쑤고 있는 거지.”

잃어버린 10년에 정체된 마차진리 ⓒ스트레이트뉴스
잃어버린 10년에 정체된 마차진리 ⓒ스트레이트뉴스

민통선을 7km가량 남겨놓은 마차진리 해안도로로 들어서자, 오징어 등 건어물과 젓갈을 파는 상점들이 도로가에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영업 중인 상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빛바랜 소파에 앉아 우두커니 철망 너머 바다를 바라보던 김막례(84)씨와 대화를 나눴다.

“그때 장사를 한참 잘 했지. 오징어도 많이 나고 젓갈도 맛있고. 하루에 100만 원어치도 팔고 그랬는데. 버스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여그 이 도로에 차가 막히고 그랬어. 버스 댈 데가 없어서. 그라고는 차가 뚝 끊기고 땅값이 떨어지고 다 망해 버렸다고. 지금은 다들 그냥 들어앉아서 사는 거여. 저기 휴게소도 봐봐.”

마차진리에서 관광버스를 가장 많이 유치했다는 휴게소 ⓒ스트레이트뉴스
마차진리에서 관광버스를 가장 많이 유치했다는 휴게소 ⓒ스트레이트뉴스

남북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묻자, 김막례씨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이고, 금강산이 다시 되면 좋지. 안 그래도 우리 이장님이 사람들캉 모여서 그 얘기를 많이 해. 대통령이 잘한다고. 인자 세월이 이렇게 변했는데 전쟁놀이 하면 뭐해.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살지. 철도 놓으면 지들 통행세도 받고 좋잖아.”

어느 정당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김막례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하이고... 전에는 박근혜당 거기를 좋아했지. 글치만 요새는 안 그렇다고 하도 그러니까 잘 모르겠어. 요기 고개 너머에 배봉리캉 명파리가 있어. 배봉리는 안쪽에 있어서 잘 모르고, 명파리 가서 물어봐.”

야트막한 고개 정상, ‘농촌건강장수마을’이라는 팻말과 전시 도로 봉쇄용 콘크리트 구조물이 불협화음처럼 배봉리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배봉리 마을 입구에 설치된 도로 봉쇄용 콘크리트 구조물 ⓒ스트레이트뉴스
배봉리 마을 입구에 설치된 도로 봉쇄용 콘크리트 구조물 ⓒ스트레이트뉴스

배봉리를 지나 명파리로 접어들자 깔끔하게 정리된 간판들이 길가에 빼곡했다. 농사일로 바쁜 탓인지 30여 분을 서성인 끝에 겨우 주민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당연히 홍준표 당이지. 대통령이 아무리 잘 한다 그래도 나라는 지켜야지. 저것들이 또 깽판을 놓고 있잖아. 진즉에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저늠(김정은 위원장)은 깽판 놓는 핏줄을 타고 나서 안 돼. 금강산이나 다시 열리는 정도면 모를까, 안 돼, 속지 마. 안 돼.”

북측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상황을 취재할 남측 기자단 명단을 접수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명파리 토박이라는 박인돌(79)씨는 정치 이야기에 손사래를 치며 멀어져갔다. 다시 텅 비어버린 명파리 거리.

간판이 깔끔하게 정리된 명파리 ⓒ스트레이트뉴스
간판이 깔끔하게 정리된 명파리 ⓒ스트레이트뉴스

구)민통선 검문소가 빤히 바라다 보이는 명파 거리 끝, 이앙기(논에 모를 옮겨 심는 기계)를 손보던 토박이 김경환(75)씨를 만났다. 지역 주민들 중 그나마 젊은 축에 든다는 그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때 ‘수협지정 89호 수산물 직매장’을 열었다고 했다.

“허허허. 장사하던 사람이 지금은 농사꾼이 됐어요. 잘 아시겠지만, 박왕자 사건이 나기 전에 여긴 정말로 북적북적했습니다. 이제는 금강산이 다시 되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기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큰 변화는 없지 않을까요. 도로도 새로 났고.”

그는 마을길 저편에 새로 난 4차선 도로를 가리켰다.

“여기야 예전부터 90% 이상, 거의 100% 가까이 자유한국당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동네사람들 모여서 이야기 나눌 때 보면, 아, 지금 대통령이 잘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한국당이 6, 민주당이 4 정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함께 거론했다.

“잘하는 건 잘한다고 해야 하고, 못할 때는 또 야단도 쳐야죠. 그런데 홍준표는 대통령이 잘하나 못하나 야단만 치잖아요. 말도 좀 점잖게 하고 그래야 되는데. 박근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또 태극기를 들고 다니면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10년째 방치된 김경환씨의 영업장 ⓒ스트레이트뉴스
10년째 방치된 김경환씨의 영업장 ⓒ스트레이트뉴스

땅값은 어떤지, 주변에 부동산 중개소는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말했다.

“여기 명파리에 ‘뉴금강산’이라는 부동산이 있습니다. 바로 저 집입니다. 거기 사장이 지금 군청 근처에 있으니 오시라 그러네요. 그 사람이 이 동네 땅값 같은 거, 정치나 선거 같은 거 사정이 밝으니까 물어 보면 자세한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모내기가 한창인 구)민통선 검문소와 새 검문소 사이 논 ⓒ스트레이트뉴스
모내기가 한창인 구)민통선 검문소와 새 검문소 사이 논 ⓒ스트레이트뉴스

김경환씨와 인사를 나누고 구)민통선 검문소로 향했다. 검문소 입구에서 근무 중이던 중위와 위병이 달려왔다.

“검문소가 큰길로 옮겨간 지는 2년 정도 됐습니다. 이쪽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일반인 통행이 없습니다. 새로 생긴 검문소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충성!”

폐쇄된 구)민통선 검문소 ⓒ스트레이트뉴스
폐쇄된 구)민통선 검문소 ⓒ스트레이트뉴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주민들은 남북경협과 상관없이 북미회담이 성사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북한과 미국의 실무자들이 벌이는 북미회담 조율이 원만히 이뤄져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을까? 북미회담에 이은 평화 분위기가 금강산 관광 재개로 연결되어 현내면, 특히 명파리 주민들의 살림살이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맥스선더 훈련 일정이 하루 앞당겨 종료되고 태영호 전 영국공사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직을 내려놓은 가운데,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장에 이어 최선희 외무성 부상까지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며 반발하고 나선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 역시 판을 깰 의도가 아닌, 북미회담 조율 과정 중 일부로 보고 있다. 힘겨루기 도중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나온 전술적 발언이라는 것이다.

지방선거 및 선호 정당과 관련한 질문에, 현내면 주민들 대부분은 “과거 같지 않다”는 시각을 보였다. 7대3이든 6대4든, 아니면 역전된 6대4든 정도가 문제일 뿐, 안보를 최우선시 하던 민심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이번 6・13지방선거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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