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담 취소 소동의 진짜 원인은 ‘파국 비즈니스’
| 주변의 모든 인물과 상황을 협상 소재로 활용하는 트럼프 대통령
| 예정대로 싱가폴로 향하는 북 비핵화

온 세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파국 비즈니스’에 놀아나는 데는 딱 하루면 충분했다.

“거의 조립된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허물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회담을 취소했다.” -워싱턴포스트WP-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로이터Reuter-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선수를 칠 것을 우려하면서 북한보다 먼저 회담을 취소하기를 원했다.” -엔비씨NBC-

회담 취소 소식을 긴급 타전한 해외 언론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회담 취소 소식을 긴급 타전한 해외 언론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북미회담 전격 취소를 두고 나온 미국 언론들의 보도다. 그러나 이 보도들은 시쳇말로 ‘꽝’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번복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 하루 동안 온 세상 기자들을 물 먹였고, 국제정치 전문가들과 비평가들의 논평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워싱턴 정가의 엘리트들 역시 물을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정은은 애초부터 미국과 합의할 생각이 없었다. 미국이 책임을 뒤집어쓰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지난 2주 동안 의도적으로 방해공작을 펼쳤다. 회담 취소는 100% 올바른 결정이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 의원-

심지어 회담의 물밑 조율을 진두지휘한 두 당사자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마저 “다 만들어진 과정을 볼턴이 망쳤다”느니, “북한은 약속은 하겠지만 거둬들일 것”이라느니 하면서 심각한 의견 충돌까지 빚었다는 CNN의 보도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국 비즈니스’에 물 먹은 한미 정가의 엘리트들(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마르코 루비오 미 상원 의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트럼프 대통령의 ‘파국 비즈니스’에 물 먹은 한미 정가의 엘리트들(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마르코 루비오 미 상원 의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우리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야당, 특히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어떤 힘도 보태지 않았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마치 그것 보라는 듯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지난 6개월 동안 김정은의 한바탕 사기쇼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놀아났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운전대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조율했나? 한미동맹이 정상이 아니라고 본다. 정확한 소통의 역할을 다한 결과가 회담 취소인가?”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회담 취소의 진짜 원인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펜스 부통령을 향해 ‘아둔한 얼뜨기’라고 했던 비난과 북한의 소통 단절, ‘극도의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낸 (북한의) 성명’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겁먹은 듯한 제스처 등 드러난 명분들은 그야말로 내세운 명분일 뿐이었다.

팍스 뉴스의 한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해 장난치는 트럼프 대통령(유튜브 화면 갈무리)
팍스 뉴스의 한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해 장난치는 트럼프 대통령(유튜브 화면 갈무리)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회담 취소를 발표하게 만든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말 그대로 북한과 회담 준비에 대해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강경 모드를 예상했느냐는 워싱턴포스트(WP)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그는 북한과의 회담 준비를 정치적 ‘밀당’이 아닌 ‘거래’로 보고 있다. 필자는 이전 칼럼에서 이미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파국’ 또는 ‘배수의 진’ 협상 전략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비즈니스맨 트럼프에게는 협상 테이블 주변의 인물과 벌어지는 상황 등 모든 것이 협상의 소재일 수 있다. 심지어 엘리트 정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적 명분 역시 협상의 훌륭한 소재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것들을 이용하는 데 탁월하다.

“진짜 재미는 게임을 한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중략) 비난도 나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좋은 평판은 나쁜 평판보다 낫고, 나쁜 평판은 아예 평판이 없는 것보다 낫다.”

트럼프 대통령이 토니 슈워츠와 공동 저술한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는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대통령이 된 지금도 하고 있다. “단지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Only time will tell.)”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파국 비즈니스’의 소재로 전락한 각국 정상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파국 비즈니스’의 소재로 전락한 각국 정상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트럼프 대통령의 소재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분석하고, 한미 간 대화부터 정상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시점에 북미회담 취소 소식을 접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국 비즈니스’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뿐 아니라, 관련 주요국 정상들마저 협상의 소재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소식을 접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이해한다”고 했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회담 개최를 촉구했다. 중국은 회담 취소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백악관 내 대표적 대북 매파(강경파)로 통하는 존 볼턴 안보보좌관과 비둘기파(온건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북한의 김계관과 최선희, 심지어 40여 일 간격을 두고 김정은 위원장을 두 번이나 만났던 중국의 시진핑 주석 역시 협상의 소재에 지나지 않았다. 로이터, CNN, WP 등 언론을 통해 반발을 드러냈던 워싱턴 정가의 엘리트들 역시 그랬다.

북미회담 개최, 변동 가능성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파국 비즈니스를 여러 차례 선보였다. 대선 공약이었던 ‘남쪽 국경장벽’ 건설비용을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거부하자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례, 중국과의 무역 분쟁 당시 철강 등의 품목에 총 500억 달러 규모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힘겨루기를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재 북미회담 조율의 가장 큰 관건은 미국의 ‘선 핵포기, 후 보상’과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의 접점 찾기이며, 북한과 미국이 이미 어느 정도 절충점에 근접한 것으로 판단된다. 근거로는 회담 취소를 발표하기 몇 시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물리적으로 단계적 접근법이 조금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것과 북한의 호의적인 반응을 들 수 있다.

오는 11월에 열릴 미국 중간선거 이전에 북한의 핵무기를 미국으로 이전하고 임기 내에 비핵화를 완료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일정도 북미회담의 정상적인 개최 가능성(6월 12일)을 높이는 요인이다.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높인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자료: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화면 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높인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자료: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화면 갈무리)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회담 취소에 대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장의 반응이 나온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좋은 뉴스를 받았다”,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을 무척 원하고 있다. 우리도 그것을 하고 싶다. 심지어 6월 12일일 수도 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그리고 파국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발언도 잊지 않았다.

“단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Only time will tell.)”

북핵호가 싱가폴로 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찌감치 중재안으로 제시한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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