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출발해 평창올림픽과 두 차례에 걸친 남북회담, 북미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장정이 거친 풍랑 속에서도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는 70여년 간 허리잘린 DMZ(비무장지대)를 머리에 이고 살아온 최북단 접경지를 탐방, 남북 공동 번영과 평화를 염원하는 현지 목소리를 전하는 르포르타주를 기획했다. 철도 상행선이 멈춘 제진역(강원 고성 현내면)과 백마고지역(강원 철원 대마리), 도라산역(파주 장단면) 등 세 곳과 인근지역, 2010년 11월에 포격을 당한 연평도(인천 옹진 연평면) 등지를 둘러본다. 이번 르포는 6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목차]
① 동해: 금강산 관문에 부는 변화의 바람
② 동해: 제진항, 남북경협의 전진기지 될까?
③ 동해: 김일성의 고려연방제와 2018년의 한반도 정세
④ 내륙: 철원의 백마는 달리고 싶다
⑤ 내륙: 한탄강과 임진강의 합수머리
⑥ 서해: ‘눈물의 섬’ 연평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

배봉리 입구를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내려오자 탱크가 지나가도 끄떡없을 것 같아 보이는 다리가 나타났다.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민통선 마을,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의 초입이다.

구)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검문소가 빤히 바라다 보이는 명파 거리 끝에서 부동산 컨설팅 업체 ‘뉴금강산’을 운영 중인 양정운(56) 대표를 만났다.

“배봉리 명파리 합쳐서 부동산 하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저는 북한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습니다. 개성도 많이 오가곤 했어요. 여기 명파리는 GOP(General Outpost, 일반전초) 관광벨트의 시작점이자 끝점입니다.”

동해안 최북단 민통선 마을 명파리의 남쪽 초입 ⓒ스트레이트뉴스
동해안 최북단 민통선 마을 명파리의 남쪽 초입 ⓒ스트레이트뉴스

한반도 평화 분위기와 관련, 민통선 마을인 명파리를 규정해 달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었다. 현지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에 대해 물었다.

“시장이랄 것까지는 없고, 먼저 아셔야 하는 게요, 이 동네 민통선 안팎에 있는 땅은 거의 80%가 외지인 소유라는 겁니다. (1차)남북회담 후에 문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트럼프가 북미회담 안 한다니까 잠잠하더니, 어제 우리 대통령과 김정은이 통일각에서 또 만났잖아요. 오늘 또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 지금 땅값은 남북회담 전보다는 조금 높게 형성되어 있지만, 실거래로 이어지지는 않고 관망세라고 보시면 됩니다.”

민통선 내 부동산 가격에 대해서도 물었다. 양정운 대표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다시 만난 남북의 두 정상(자료:청와대)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다시 만난 남북의 두 정상(자료:청와대)

“민통선 안쪽 중에 가장 민감한 곳은 제진역 부근입니다. 한참 금강산 관광 하고 그럴 때, 평당 10만 원 하던 제진역 부근 땅값이 30~40만 원 정도로 올랐어요. 역에서 가까운 땅을 50만 원까지 부른 기획부동산도 있었고. 근데 박왕자 사건 나고 곧바로 원상회복되더니 이전 가격보다 더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50만 원 하던 물건은 20만 원으로, 20만 원 하던 물건은 7~8만 원으로, 10만 원 하던 물건은 4~5만 원으로 떨어진 거죠. 지금은 박왕자 사건 이전 가격의 70% 정도까지 회복된 상탭니다.”

설명을 보태자면, 금강산 관광이 진행 중일 때 평당 10만 원에 거래되던 땅이 박왕자 사건 이후 4~5만 원까지 추락했는데, 지금은 호가가 7만 원 정도로 올랐다는 뜻이다.

“제진역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언론에는 많이 안 나왔지만, 제진역 정말 중요하죠. 제진역은 지금 민통선 안에 있는데, 민통선 검문소를 제진역 북쪽으로 더 올린다는 지자체 발표가 있었거든요. 그렇게 되면 제진역은 민통선 밖이 되고, 출입신고 같은 거 안 해도 일반인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잖습니까. 발표 날 때 제진역 코앞에 있는 땅이 평당 100만 원에 실제로 거래가 이루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땐 정말 대단했죠.”

“제진역은 지금도 민통선 안쪽이잖아요. 그럼...?”

폐쇄된 제진역 화물 출입 구역 ⓒ스트레이트뉴스
폐쇄된 제진역 화물 출입 구역 ⓒ스트레이트뉴스

“예, 여긴 22사단 구역인데, 22사단과 고성군, 강원도가 협의를 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어요. 민통선 안쪽 땅은요, 현지인들은 농사를 지으려고 사지만, 외지인들은 투자 목적으로 사거든요. 근데 100만 원짜리 땅을 샀어. 그 사람 완전 쪽박 찬 셈이죠, 지금까지는. 그렇지만 차츰 땅값 좋아질 겁니다.”

제진역 부근 땅값이 좋아질 거라고 판단한 근거를 묻자, 양 대표는 사견임을 전제로 그동안 자신이 분석해 두었던 제진역의 입지조건에 대해 다양한 서류들을 제시해가며 설명했다.

“지금 돌아가는 거 보니까 북미회담도 별 문제 없을 것 같고, (1차)남북회담이 열린 다음에 파주와 고성에서 철도가 연결될 거라는 보도가 나왔죠? 언젠가는 남북경협이 될 거고, 빠르면 좋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면 물류항이나 전진기지가 필요하겠죠. 그런데 원산부터 강릉까지 동해안 해안선을 훑어보면 할 만한 곳이 제진항뿐입니다. 제진역은 제진항으로 오는 화물의 종착지잖습니까.”

막힘없는 그의 설명에 대북경협 전문가와 인터뷰하는 느낌이었다. 원산부터 강릉까지 항구가 많은데 왜 하필 제진항을 꼽느냐는 질문에, 그는 북한쪽 사정부터 설명했다.

동해안 민통선 마을 최북단에서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운영 중인 양정운 대표 ⓒ스트레이트뉴스
동해안 민통선 마을 최북단에서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운영 중인 양정운 대표 ⓒ스트레이트뉴스

“개성공단 꼴 안 나려면 물류항은 무조건 남쪽에 있어야 합니다. 일단 북한쪽을 보면 항구로 쓸 만한 곳이 원산밖에 없어요. 그런데 원산은 지금 갈마지구가 해안관광지구로 개발되고 있거든요. 아마 원산항과 금강산은 앞으로도 국제관광특구로 개발될 겁니다. 그런데 도로가 닦이고 나면 원산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밖에 안 걸리는 곳이 있어요. 거기가 바로 여기 제진항입니다. 철도 있겠다, 러시아 가스관까지 들어온다면 컨테이너 하역시설에다가 가스 저장시설까지 갖춘 복합물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쪽에는 일단 제진과 강릉 사이에 철도부터 연결해야 됩니다. 근데 그게 땅 보상 문제 때문에 만만치 않을 겁니다. 토지를 수용하려면 공람 공고를 내고 보상을 하는 데만 보통 3년 정도 걸리거든요. 제 생각에 여기는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철도 연결하는 것만 해도 그런데 항구까지 만들어야 하잖습니까. 훨씬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제진항 보세요. 민간인 땅이 없잖아요. 국토부랑 국방부가 합의만 하면 바로 착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쉬워요.”

오는 6・13지방선거와 관련한 질문에, 양 대표는 “과거 같지 않다”던 여타 지역주민들에 비해 민주당에 훨씬 후한 점수를 매겼다.

“예를 들어서 인구가 150명이라면 예전에는 민주당 지지자는 2명뿐이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70~80명으로 역전할 겁니다. 이 동네는 여태 속고만 살아왔는데 이젠 그렇지 않아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그럴까요...”

2019년 4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2차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현장을 시찰 중인 김정은 위원장(2018.05.26)(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2019년 4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2차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현장을 시찰 중인 김정은 위원장(2018.05.25)(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다시 그렇게 생각한 근거를 물었다. 의외로 명쾌한 대답이 나왔다.

“예비후보들 경선 보면 딱 알잖아요. 예전에는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경선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 경선이 정말로 치열했어요. 자유한국당은 오면 그냥 공천 줬다던데요 뭐. 여기 명파리랑 배봉리는 아직도 6대4 정도 보는 것 같은데, 자유한국당이 6요, 근데 고성이나 거진 쪽은 거꾸로 6대4라고들 합디다. 민주당이 우세하다는 거죠. 아마 이번 선거에서 강원도가 가장 뜨거운 지역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내면도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으로 이 지역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꽤 많은 분들이 카페나 숙박업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옵니다. 하지만 이 동네는 22사단의 허가를 먼저 득한 후에 서류를 시에 제출하는 구조라서 건축허가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지금 평화 무드가 좋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잖습니까.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 되면 실제로 진행이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빨리 진행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고위험 고수익을 노린다면 지금 투자를 고려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지켜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어느 쪽이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고요.”

세 시간가량 걸린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박왕자 사건 난 후에 부동산업자들이 모두 철수했다고 들었는데, 대표님은 왜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계십니까?”

“허헛, 회자정리고 거자필반이라, 만날 사람들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남북이 반드시 저 길을 뚫어낼 거라고 믿었거든요.”

동이 터오기 직전의 금강산 가는 길 ⓒ스트레이트뉴스
동이 터오기 직전의 금강산 가는 길 ⓒ스트레이트뉴스

양 대표의 말대로 제진항은 남북경협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꼭 한 달 만에 다시 만나 꺼져가던 북미회담의 불씨를 되살렸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양 정상의 회담 결과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양 대표의 바람이 아직은 멀게 느껴지지만 현실이 될 가능성은 차츰 높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개최된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여러 차례 논평을 연기한 끝에 “남북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을 구해주기 위한 김정은의 배려”라는 홍준표 대표의 기자간담회로 갈음했다.

같은 당 김진태 의원 역시 2차 남북정상회담을 “2차 정상회담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그냥 대북접촉”이라며 애써 깎아내렸다. 색깔론도 가세했다. 바른미래당의 중앙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언주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 최고의 선대본부장은 김정은인 것 같다. 이러다가 김정은 덕분에 여당이 압승하면 아예 지자체별로 북한지역이랑 자매결연을 맺고 퍼주기에 나설지도 모르겠다”며 색깔론을 폈다가 비난이 일자 글 게시 50여 분 만에 삭제하기도 했다.

지방선거와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북미회담을 앞둔 2018년 오늘, 대한민국에는 세계 및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 집단과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 집단, 이렇게 두 부류의 정치인 집단들이 존재한다. “남북이 반드시 저 길을 뚫어낼 거라고 믿었다”는 최북단 마을 주민의 표심은 어느 정치인 집단으로 향할까?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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