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페미렌즈] 어쩌다 이토록 성공적으로 길들여졌을까 
[편집자의 페미렌즈] 어쩌다 이토록 성공적으로 길들여졌을까 
  • 정정은(출판기획자) (straightnews@gmail.com)
  • 승인 2018.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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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열풍에 페미니즘이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사전을 찾아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스트레이트뉴스는 페미니즘 이해를 돕는 책을 연이어 추천한다.

한국 사회, 아니 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여성은 살면서 다양한 성폭력과 여성혐오 공격의 피해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여성을 향한 갖가지 폭력이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끈질기게 있어 왔다는 증거는 사실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안에는 공격성, 지배욕, 약자에 대한 차별, 권력의 독점과 남용 같은 가부장제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들어 있다.

다행히 세상은 보편적 인권과 평등을 향해 느리게나마 움직여왔고, 어느 장소들에선 여성 폭력을 문제시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문제는 내면에 축적된 황폐함이 어떤 촉발 요인과 예고 없이 마주칠 때 여러 불편과 고통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들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에너지 소모가 크고, 부당하게 많은 피로를 감내한다. ‘생존자’인 우리들의 내면 풍경을 어떻게 하면 편안한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생존자의 진짜 안녕이 달려 있다. 

아마 미디어 소비자인 대부분의 사람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다수의 미디어에서 성폭력 설정은 관습적으로 사용된다. 그 속에서 젠더 감수성은커녕, 인격이 이미 파괴된 듯한 인물들이 설정된다. 등급 심사에 참여하는 위원들 중에 ‘성평등, 차별,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중년 남성들’이 대다수라는 건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 그들이 참고하는 운영 지침이나 매뉴얼은 낡은 가부장적 가치관을 답습하고 있다. 아무런 성찰 없이 성폭력을 묘사하는 영상물을 만들고 역시나 그것을 아무 자각 없이 배포하는 것은 성폭력이다. 아울러 그런 영상을 소비하는 것은 심리적, 언어적, 정서적 성폭력 경험이 될 수 있다.

길들여진 반응은 사회를 문제없이 흘러가도록 하고, 그렇게 비판과 성찰 없이 굴러가는 사회에서 길들여진 반응은 자연스러운 행동 양식으로 통용된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성공적으로 길들였을까. 우리가 청소년기에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학교 물론 개개인이 속한 크고 작은 집단에서의 길들여짐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직접적이든 간적접이든 겪는 정서적, 신체적 성차별(폭력)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또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거부 또는 회피 반응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어릴 적 경비 아저씨와 사촌오빠로부터, 또 무수한 타인으로부터 당한 성폭력 사건으로 마음이 황폐해진 저자는 독일에서 심리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저자가 받은 진단명은 성폭력 트라우마와 통증 회피 악순환을 겪는 ’성기능 장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받은 치료는 EMDR(안구 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이다.

이 요법은 다른 트라우마 치료법에 비해 효과가 빠르고 과정이 융통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몸과 마음을 연결해서 다룬다. EMDR 치료 이후, 저자는 길들여진 반응에서 많이 벗어나게 됐으며,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기반한 언어적, 신체적 대응이 빨라졌다고 한다. 8단계 프로토콜의 EMDR 요법과 여러 자기조절기법을 충분히 익혔다면 자가 치료도 시도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마음속의 황폐한 풍경은 몸도 함께 겪은 것이고, 길들여진 반응도 결국 몸을 거쳐, 몸 어딘가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결국 마음뿐 아니라 몸의 치유와 회복도 필요하다. ‘부드러운 말씨’와 ‘조신한 태도’ 그리고 ‘여자다운 행동’ 등 여자다움을 수행하는 피로와 제약은 사회에서 지정받은 성별에 크게 좌우된다.

다수의 남성이 원하는 몸가짐과 생김새에 구현하는 것이 여성의 핵심적인 사회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태도나 분위기는 결국 그 사람의 생김새와 꾸밈새, 몸의 움직임을 통해 나타난다. 구체적인 행동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무수한 비언어적인 신호를 포함하는 말하기 역시 몸을 통한 행위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여자 몸에는 공통된 억압이 있어 왔다. 자기검열은 덜하고 자기주장에는 힘을 더 싣는 것. 내 몸을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굴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고 만들고 움직이는 것. 걸음걸이와 제스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더 크고 다양해지는 것. 바로 이러한 변화들을 통해 자유로운 몸을 누릴 필요가 있다. 

국가나 지역, 문화권을 막론하고 여전히 남성중심인 대부분의 사회에선 여성의 몸에 대한 가차 없는 품평과 성적 대상화가 삶의 모든 면에서 깊이 뿌리내려 있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성적 시선과 언어라는 폭력은 여성들 스스로도 몸매와 꾸밈에 대한 검열기제를 내면화하도록 만든다.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 하리타 지음·아니카 겜라우 그림(동녘·2017)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 하리타 지음·아니카 겜라우 그림(동녘·2017)

그 가운데 ‘젖가슴’은 특히나 극도로 성애화되는 신체 부위로,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온갖 모순과 억압이 집중 공격을 받는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과 금기, 비뚤어진 욕망에 반대하고 여성들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과 존중감을 회복하길 바라는 의미로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하는 페미니즘 캠페인인 ‘Free the nipple(젖꼭지를 자유롭게)’이 행해진다.

일상에서의 쉽게 할 수 있는 가슴 해방 전략으로는 노브라가 있다. 이것은 ‘다 같이 브라를 하지 말자’가 아니라 여성들 개개인이 온전한 선택권을 가지는 데 있다. 

월경은 40여 년간 거의 쉬지 않고 여성의 몸에서 되풀이되는 현상임에도, 남자들이 주도하는 이 사회에 태어나 살기 때문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고, 무지하도록 사회화된다. 하루 열두 시간 가까이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여학생들은 막 시작된 몸의 변화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진통제를 삼키고 견딘다.

교복 치마 밑에 나일론 스타킹, 쫀쫀한 속바지까지 입어 혈액 순환과 통풍은 잘 안 되고, 운동 부족에 만성 피로를 달고 사는 게 한국 여학생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생리대의 표백 합성 섬유 재질 때문에 생리가 끝날 무렵엔 회음부에 피부 발진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도 ‘건강한 월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별로 없다. 생활 리듬은 각자의 몸 상태나 특성이 아니라 산업화된 사회의 다양한 규칙, 특히 학교와 직장의 시간표에 따라 구성된다. 월경통에 일시적으로 무감해지는 진통제에 카페인을 ‘끼워 파는’ 관행은 여성을 은근슬쩍 각성까지 시켜 평소와 똑같이 기능하게 하는 강요처럼 느껴진다.

생리 중이라고 힘든 티를 내는 여성을 원하지 않는 이 사회 집단 무의식의 산물이다. 이렇듯 서로 어울리지 않는 월경과 생활 습관을 어떻게 공존하도록 할 것인가. 우리는 월경을 삶의 중심에 놓고, 몸과 마음을 서로 잘 튜닝하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할 필요가 있다. 

섹슈얼리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 말은 곧바로 그 의미가 파악되지는 않는 개념어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쉽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때 먼저 사회적인 억압에 의해 형성된 섹슈얼리티를 돌아보고 이를 해체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창조, 구성, 표현, 추구함에 있어 얼마나 자유롭고 주체적인지, 지금 느끼는 성적 욕망과 환상은 온전히 여성의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여성으로 하여금 갖기를 바라는 것인지 등등. 섹슈얼리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는 단연 성적 실천, 특히 성행위가 있다.

섹스에 대한 금기가 많이 사라진 오늘날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섹스를 하고 있을까. 아직도 많은 (이성애자) 여성들은 이성 파트너(남자)가 원하는 섹스를 한다. 게다가 그것이 자신도 원하는 섹스라고 믿도록 길들여져 있다.

소통 안 된 강박 관념과 미묘한 권력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섹스에서는 ‘내 몸 탐구 생활’은 더딜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몸과 마음이 서로 긴밀하게 호응하는 가운데 자유롭고 건강한 나만의 고유한 섹슈얼리티 탐구가 절실하다. 

또한 이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문화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안에 뿌리 깊은 이성애 중심 사고방식. 이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비이성애자들, 심지어 여러 성적 지향과 젠더가 뒤섞인 퀴어 커뮤니티에서도 아직 유효하다.

성별은 불변의 진리가 아닌 사회적 구성물이다. 성별은 어떤 사람을 판별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가장 확실하게, 빈번하게 쓰이는 기준으로 통한다. 인종과 나이, 출신 지역이나 국가는 그 뒤를 따른다. 하지만 사실 사람이란 모두 아주 다층적이고 복잡한 존재다. 때문에 모두를 위한 성별 이분법 해체가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제작 과정까지 윤리적인 대안 포르노, 소수자의 판타지도 숨김없이 드러내는 퀴어 포르노에 대한 문제의식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실천, 행위를 상세히 기술했다.

이제 촘촘한 시선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저자의 날카롭고도 따뜻한 언어가 독자들의 마음을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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